여니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이사야 41:10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은 나라는 패망하고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가 있는 상황이라 많이 두려워하고 있었을때거든, 그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사야 선지자가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는 부분이야. “…

늘 나한테 “하루한줄”처럼 만날 때마다 성경의 좋은 구절 한 줄씩 읽어주시는 분이 있다. 이 분은 장로교회(근처 교회이름)  장로님이다. 

2018년 중순-2020년 코로나 터지기 직전까지 조그마한 비지니스(화장품가게)를 한 적이 있는데, 그때 옆 가게가 서점이었다. 이름은 교포서점. 그 서점의 주인장 아저씨가 바로 장로교회 장로님. 

출근이 지루하다고 비지니스를 함부로 도전하면 안 된다는 걸 난 그 시절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럼에도 그때의 나에겐 수확이 엄청난 일이 하나 있었다. 그때의 나를 추억했을 때 나는 비지니스보다 서점에 처박혀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 그렇다고 책을 많이 읽은 건 아니고 서점을 제집 드나들 듯, 밥 먹듯, 하루 필수 일과처럼 종종 들리곤 했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그냥 길 가다가 들린 손님인 줄 알았다가 너무 자주 드나드니, 어느날 서점아저씨가 나보고 “하는 일이 뭣이냐?”고 물었다.  그때 확실히, 하루중 유일하게 “하는 일이 뭐냐”는 물음에 걸맞게 대답할수 있었던 건 어쩌면 “서점에 들리는 일”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난 하는게 없었다. 화장품 가게를 운영(더 정확히 말하자면 친한 언니 가게 코너를 임대함) 한다고는 하지만, 대부분은 온라인으로 매출을 띄우고 오프라인은 거의 손님이 없었다. 

가끔 가다가 몇명씩 있긴 한데, 서비스하고 나면 머리가 아파서 곧장 서점에  뛰어가서 시간을 보내다가 (주 업무는 아저씨랑 수다떨기) 쉬고 오곤 했다. 서점 주인장 아저씨랑 수다를 떠는 건, 내가 하루중 가장 제멋대로인 시간이다. 부담스러울 정도로 열심히 경청할때도 있고 듣는둥 마는둥 지멋에 홀싹거릴때도 많다. 서점은 너무 가까이 있었고 서점 주인장은 나를 그저 가끔 답답해하고 가끔 귀여워했다. (아들이랑 딸이 각각 한명씩 있었는데 내 또래였 던 같다. 그래서 자식들과 못 푼 회포를 나랑 푸는 것으로 어림 짐작된다. )

시간이 흐르면서, 서점주인장 아저씨는 내가 옆집가게에서 소소하게 화장품 비지니스를 하는 걸 눈치챘고, 내가 매일 출근하다싶이 서점을 들락거리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나는 그저, 우리가 가까이 있다는 게 신났다. 옛날에는 교포서점 한번 가서 책을 살려면, 뻐스를 타고 와야 하거나 남편이 차로 뎃다주고 픽업을 했어야 가능했는데, 바로 옆집이라니, 나한텐 서프라이즈 그 자체였다. 

나는 교포서점을 들락거리기 전까지 별로 읽은 책이 없었다. 특히, 소설이란 쟝르는 거의 제대로 몇권 읽어본 기억이 없다. 문학을 전공했다고는 하지만, 문학에 대해 문외한이었고 대학교때는 공부보다 연애나 동아리활동에 더 목숨을 건 편이었다. (살면서 내가 얼마나 무지하다는 걸 새삼 느끼며 늘 챙피했었다.) 

화장품을 팔면 그 돈으로 가서 책을 샀고, 손님이 없는 날은 온종일 책을 들여다보거나, 책을 보다가 눈이 아프면 언니랑 수다를 떠는 게 하루 전부 일과였다. 그 시절의 매일은 그야말로 한가롭고 여유로웠던 나날들이었다. (각양각색의 진상들과 제품홍보 및 광고홍보 책임자들도 여러분야로 골고루 만나 뵐 수 있는 기회기도 했다.) 

머리아프던 출근업무를 그만두고 자유로운 개인사업을 한다고 생각하니 첨엔 너무 들떠있었다. 이게 내가 바라던 라이프 스타일 같기도 했고, 묶여있지 않아서 시간적자유가 상당히 많았었다. 여러가지 일도(인슈런스 라이센스/ 드라이브 라이센스  다 이 시점에서 완성했던 거 같다.)  겸해서 같이 할수 있었고 휴가없이 여행도 맘만 먹으면 갑자기 떠날수 있었으며, 특히 매일 반복되는 업무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날아갈것만 같았다. (하지만, 꼬박꼬박 월급처럼 나오지 않는 경제적인 부분들과 렌트비, 화장품손상 리스크와 같은 일들은 날 골머리를 앓게 했다. 그럴때마다 내가 찾아간 곳은 옆집 교포서점. )

그 날것같은 시간의 연장속에서, 지금도 나에게 많이 남아있는 것들은 그 시절 읽었던 책들과(몇권 안되지만) 주인장 아저씨랑 나눴던 시시콜콜한 수다였다. 뭐 다른 것도 시도한 건 다 훗날 살아가는데 있어서 피와 살이 되었고, 여행 추억도 다 사진으로 행복한 순간을 박제해서 간직됐지만, 그래도 집중적으로 책에 관심을 가지면서 택스트로 많은 다양한 걸 접하게 된 계기는 이 시점이었다. 

대학교때 조선족중관촌 교회라고 사람들이 너무 좋고 활동 같은 게 재밌어서 가끔 참가한 적 있었지만, 나는 솔직히 확고한 신앙이 있는 사람은 아니다. 그렇다고, 신앙 같은 걸 배척하는 사람도 아니다. 비트게인슈타인 말처럼 ” 말할수 없는 것에 대해 침묵하라”는 것에 깊은 공감을 표할 뿐이다. 

난, 무신론자이고 과학을 존중하고 우주/천체 같은데도 관심이 많지만, 또 과학으로 증명할 수 없는 영역에 경외심을 가지고 있다. 하여, 서점에 들어갈 때마다 주인장 아저씨가 성경을 펼치고, “여니야”로 시작해서 알아도 못듣는 언어를 한가득 읽어준다한들 그냥 행복하게 들었던 이유가 거기에 있었던 거 같다. 그 많은 구절들이 가끔 진짜 힘이 들 때, 신기하게 도 불쑥불쑥 생각난다. 

그건, 내가 익숙히 알고 있는 사실이나 자주 접하는 무의식적인 환기가 아니라 분명 내가 주의깊게 관찰하거나 지식체계를 파악하고 있는 부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머릿속에 상기되는 신비한 현상이다. 

그 모든 건, 

서점주인장 아저씨의 진심어린 충고였고 내가 진짜 행복하길 바라는 기도들이었다. 

2020년 초반에 코로나 타격을 입어 우리 가게는 클로즈 하게 되었고, 살고있는 집도 계약이 끝나 다른 곳으로 이사가게 되었지만, 나는 늘 교포서점이 그립고 거기 주인장 아저씨도 종종 보고싶다. 지금도, 오다가다 사고 싶은 책이 있어서 들리면 늘 웃으면서 “여니 이뻐졌네, 요즘 얼굴이 더 좋아보여, 잘 지내고는 있지?”하면서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이다. 

“아니요, 날로 못생겨지고 얼굴은 푸석하고 잘 지내지 못해요.”나는 늘 같은 대답을 한다. 

그냥 그 사람앞에서라면 어떤식으로 투덜대도 다 받아줄거 같았고, 온갖 밉상을 부려도 허허 하고 지나갈거 같다는 생각에, 잠깐의 삶의 스트레스를 나는 번마다 교포서점에 내려놓고 가곤 했다. 

코로나가 창궐해도 교포서점은 늘 그 자리에  그대로 날 기다려줌에 감사하고, 물가가 폭등하고 모든 가격이 더블로 올라가도 책값은 여전히 비슷함에 천만다행이다. 

교포서점에서의 모든 책 구매는 VVIP대우로 늘 25% 디시를 받아왔다. 간혹가다가 없는 책이 있으면 오더를 당일 바로 넣어주셨고, 혹은 교포서점엔 없지만 다른 지점에 있는 책이면 이튿날 당장 구해줬다. 뭔가 교포서점 문을 열고 들어가는 매 순간순간들이, 환하게 불을 켜고 맛있는 밥상이 기다리고 있는 고향의 집 같았다. 

거긴 책도 있었고, 온정도 있었다. 교포서점은 또 다른 고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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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오랜만에 우리나무 들어왔다가
    섬세하게 가슴을 파고 드는 글 한편 찡(찐)하게잘 읽었습니다.

    최근, 메마른 생각만하고
    건조한 글만 써야 하는 일상에서
    덕분에 풍부한 (대리)감정경험을 하게 됐습니다.

  2. 여니에겐 사람을 끌어당기는 기운이 있는것 같아요.
    나이 들면서 한겹두겹 쌓이는 보호막이 나중에는 방어벽처럼 되기도 하는데
    여니한테서는 그런 밀어냄이 느껴지지 않아요.
    그러다보니 진심으로 대해주는 좋은 분들을 더 많이 만날수 있지 않았을가 라는 생각도 떠오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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