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벨이 없는 문,  백색의 길고 어색한 복도, 그리고 끝이 없는 계단은 아무데도 연결되지 않았다. 어쩌다 발견되는 엘리베이터 옆에는, 건물구조를 그려놓은 지도가 비스틈히 붙어 있었다.  건축 전공이나 디자인 전공이 아닌 이상 원하는 곳을 찾기 힘들게 표시되어 있는, 계시된 방향은 수학방정식을 풀 듯 목적지를 찾기 위해  X를 풀어야 했다. 

손님이 목적지를 찾도록 도와주는 직원은 단 한명도 없었다. 아니, 그냥 주변엔 아무 사람이 없다. 심지어, 사람이 나올만한 문도 없었다. 무한히 반복되는 똑같은 하얗고 하얀 터널만 코너에서 순환적으로 무질서하게 반복된다.

이곳을 탐색하는 것은 절대적으로 우스광스러운 일이다. 이 여정을 시작하기전에, 카운터에서 준 지도를 손에 들고 가방을 끌고 가야하는 곳으로 가다가 좌절하고 패배한 방랑자들은 모를거다. 앞으로 3박4일 세미나를 진행하게 될 이곳이 바로 음산한 미궁이라는 것을. 나는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드디어, 우리가 묵을 방을 찾았고(40분 소요), 거긴 이상한 공기가 나를 불쾌하게 했지만, 나는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기 위해 여기에 있는 것이 아니므로 별 다른 걱정은 하지 않았다. 

방은 작고 어두침침했으며 샤워기 위치는 이상하게 높게 매달려 있고 화장실은 좀 체격이 있는 성인이 들락거리기 엔 좁게 만들어져 있었다. 그렇다, 우리 일행 열몇명은 세미나땜에 이 National Conference Center을 찾았다. 그리고 앞으로 이 거대한 공간, 이 숨막히는 방에서 3박을 머물 예정이다.

협소하고 축축한  작은 기숙사 스타일로 된 이 방은, 일부 창문은 거미줄로 덮여있었다. 방에는 눅눅한 냄새가 났고 기분이 찝찝했다. 방을 바꾸고 싶었지만 호텔내부구조가 너무 복잡하게 배치되어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동료들과 가까이 나란히 있고 싶었다.

 첫날은 미로에서 길을 잃은 상태로 빠르게 전락한 패배자 같았다. 충분하지 않은 방향표시와 끝도 없이 나오는 똑같은 복도들, 밀페된 공간에 갖힌듯한 숨막힘은 일층 대형 미팅룸에서 방까지 도착하는 내내 동반된다. 

장소는 거대했고 회의실은 엉망이었다. 객실은 내가 가본 곳 중 최악이었으며 여러 건물은 모두 터널같은 복도를 통해 지하로 연결된다. 천장은 비효률적으로 미치게 높고 소리를 지르면 메아리친다. 

텅 빈 버려진 상자속에 덩그러니 서 있는 기분이 든다. 거의 천개에 달하는 작고 큰 방들로 구성된 이 공간적으로 감이 오지 않는 큰 부피의 건물은 마치 정신병원을 연상시킨다. 

너무 방대한데 또 너무 고요하다. 거기엔 아무것도 없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것이 너무 커서 우린 다 그속에 매몰된 것처럼 보인다. 

와이파이는 잘 작동하지 않았고 에어콘 소음은 나를 매시간 깨어있게 한다. 나는 하루 평균 3-4시간을 그나마 짧게 잘수 있었고 낮에는 어지러워 세미나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어떻게 이렇게 삼박을 더 보낼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길을 잃지 않고 이곳저곳을 이동하는 것은 어려웠고 공중화장실에서 나오면 예고 없이 3-4인치 높이의 계단이 불쑥불쑥 나온다. 발목이 휠 뻔 했다. 

나는 이곳이 음산하면서도 궁금했다. 여기가 호텔이라는 게 믿기지가 않는다. 여긴 분명 예전에 정신병원이었을거라는 확신이 강하게 든다. 나의 생각을 공감하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내가 상상을 잘 한다며 아무렇지 않은 척 하거나 일부러 화제를 피하는 동료들이 대부분이었다. 나는 그들을 설득하고 싶었다. 그리고, 같이 디테일을 살피면서 탐구하고 싶었다. 

나는 이 호텔안에서 이동할 때마다 어떤 외딴 시설에 포로가 된 것 처럼 내 온몸이 묶여있는 느낌을 받았다. 그 느낌은 무서웠고 또 굴복할 수가 없었다. 

일련의 터널과 학습모듈처럼 만들어진 여긴 도대체 원래 무슨 용도르 쓰인 건물인가?  왜 굽이굽이 깊숙이 혼자 이렇게 세상과 동떨어진 곳에 위치해있는가? 복도는 왜 사면이 꽉 막히고 다른 액지트가 없이 이상하게 만들어졌는가? 이 건물에는 그동안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 

난 밤이면 잠이 오지 않았고 낮이면 졸렸다. 난 밤이면 같은 방을 쓰는 동료한테 내 생각을 들어보면 어떻냐고 말을 걸었고, 낮이면 다른 동료들한테 어젯밤의 내 수많은 헛상상들을 들어보라고 먼저 말을 꺼냈다. 신기하게도, 나랑 한 방을 쓰는 동료는 내가 말을 하고 있을 때면 늘 피곤한지 자고 있었고, 이튿날 다른 동료들은 내가 얘기를 먼저 꺼내면 어젯밤에 잠을 제대로 못잤다면서 세미나 데스크에 엎뎌서 졸고 있었다. 

이들은 마치 똑같은 수면제를 흡입한 사람이나, 어떤 것에 홀린 사람들처럼 내 말을 들으려 하지 않는건 지 아니면 진짜 내말을 우습게 아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여긴 기업단체세미나, 혹은 행사협력세미나 등 다양한 세미나들이 진행되고 있고 사무실 직업훈련 및 학습 개발공간으로도 많이 이용되는 거로 보인다. 낮은 테이블과 의자는 조정되지 않아 불편했고, 신기하게 여기 묵은 3박4일은 길게만 느껴졌다. 

후진 대학교 기숙사처럼 느껴지는 구석구석의 모든 공간들은 밀실 공포증을 불러일으킨다. 나는 세날 연속 매일 한번씩 홀 미팅센터에서 우리방까지 가보려고 시도한다. 같이 갈 사람이 필요했지만, 동료들은 너무 미궁같아서 한번 갓다오기 귀찮으니 가지 말라고 한다. 아침저녁으로 그냥 같이 무리져서 다니자고 나를 타이른다. 

나는 너무 궁금하다. 그리고 어딘가 마음속 깊숙한 곳에서 그 무서움을 즐기고 싶어하는 거 같았다. 나는 연속 세날 세번의 시도를 하면서 심장이 튀어나올 거 같은 경험을 하게 된다. 

추워서 가디건을 가지러 가던 두번째 날에 나는 그 고요한, 내 힐의 발자국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백색의 복도를 혼자 걷고 있었다. 걸어도 걸어도 나오는 그 반복속에서 난 갑자기 길을 잃었다. 좀 심하게 긴장한 탓인 거 같다.  다음번 턴이 어느방향인지 도저히 기억이 나지 않았다. 만에 하나, 틀린 방향으로 간다면 난 그 틀린 방향에서 또 틀린 선택을 하게 되면서 미로에서 영원히 빠져나올수 없을거 같다는 공포를 느낀다. 복도를 따라 쭉 가다보면 진짜 긴 복도가 하나 나오는데, 그 중에 엄청 큰 세탁기가 한 열대정도 작동하는 같은  대형 세탁방이 두개 나온다. 량쪽으로. 

거기서 어떤 작업복을 입은, 키가 173센치정도, 무난한 얼굴의 30대후반으로 보이는, 아시아 얼굴의 백인남자가 걸어 나온다. 얼굴은 뽀얗고 피부는 그토록 맑았다. 좋은 사람인지는 몰겠지만, 확실히 내가 길을 물어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나는 무작정 그한테로 걸어갔고 우리사이 거리는 점점 좁혀졌다. 나는 그 사람 앞에 멈췄다. 내가 방 키를 보여주면서 여기로 가려면 앞에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하냐고 물어봤다. 

근데,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그는 분명 내 말을 다 들었지만, 모른 척 마치 내가 투명인간인 마냥 나를 스쳐지나갔다. 순간, 너무 어이없고 저새끼 뭐지 싶었다. 사람 말을 개방귀로 듣나, 모른다면 그냥 모른다고 하지 왜 무시를 하냐고. 내 영어가 너무 알아듣기 힘들었나? 아니지, 그래도 방 키를 보여줬으니 내 의사를 이해하는덴 무리가 없을텐데 왜 저렇게 시큰둥하게 나를 내버려두지? 몇초사이에 여러가지 생각들이 오가면서 갈피를 못잡고 있을 찰나, 난 재수없어서 다시 한번 뒤를 돌아봤다. 

하지만, 그 남자는 이미 없었다. 

어디론가 바람처럼 사라진건지 아니면 그 긴 복도를 달아서 턴을 했는지 나는 도저히  알수가 없었다. 순간 공포감이 엄습했고 나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싶었다. 

원래 길로 다시 돌아가고 싶었지만, 거긴 웬지 그 남자가 코너에 서서 날 기다릴것만 같은 불안감이 들어 냅다 앞으로 뛰었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 맞기를 기도하면서. 나는 드디어 방에 들어왔고 식은 땀이 내 옷깃을 적셨다. 나는 숨을 좀 돌리고, 다시 방에서 홀까지 리턴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나는 무서워서 핸드폰을 꺼내고 내 동료한테 전화를 걸었다. 

통화하면서 가고 싶다고 고백했다. 중도에 통화가 끊기거나 내가 다시 연락 안된다면 호텔 일층 직원에게 알려라고 얘기했다. 

사실 난 방문을 다시 열고 나갈 용기가 없었다. 하지만 그 방안에 혼자 있는 것 또한 너무 아쓸했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뛰어갈 준비를 했다. 그 길은 마치 꿈속처럼 머리가 하얗게 비워졌다. 나는 두려움을 몰아내려고 머릿속으로 가장 미워하던 사람을 상기시켰다. 그 사람에 대한 분노와 화를 다 끌어모아서,  중도에 가다가 귀신이 나오더라도 용감히 그 울분을 거기에 풀겠다는 결심 같은 것을 하면서 말이다. 갑자기 생각해 낸 이상한 방법이지만, 나름 효률적으로 날 일층로비까지 보내준 것도 사실이다. 

나는 제정신이 아닌게 분명하다. 나는 이 과정을 즐기고 있었다. 그럼 난 왜 이 과정을 즐기고 싶어 하는가? 왜냐? 사람들이 다 관심이 없는지, 아니면 세미나에 집중해서 그런지, 아니면 나만 혼자 오두방정인지, 도저히 이해할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내눈엔 너무나 정신병원인데, 그리고 그 세월속 수많은 이 건물에서 발생했던 일들이 눈앞에 슥슥 지나가는데, 이 기분을 충분히 감각적으로 온전히 느끼지 않는다면 아쉬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 호텔에 들면 또 이런 경험을 할수 있을까 하면서.

세미나가 끝나는 날, 나는 차에서 멀어지는 이 건물을 백미러로 보면서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글로 적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이 4년뒤의 오늘일줄은 생각도 못했지만. 

사람은 외적타격으로 인한 아픔이나, 마음의 상처로 인한 아픔은 크게 두려워하지 않는다. 두렵다 해도 아는 아픔이여서 얼마간의 심리적방어체계가 무마작용을 해준다. 하지만,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그 여운이 강렬하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미스테리하기에 거기에 신경이 쓰일수 밖에 없다. 

미래가 보이지 않아서 더 괴로울 때, 혹은 알수가 없는 무기력함이나 우울증이 날 찾아올 때 난 종종 이날의 느낌을 되살려 본다. 그러면 신기하게 내가 살아있다는 게 더 생생히 느껴지면서 우울이 좀 해소되는 감을 받는다. 사실, 그 호텔이나 예고도 없이 찾아오는 깊은 슬픔이나 난 비슷한 거라고 생각된다

막연하다. 그리고,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 

공포는 지루하지 않다. 이것이 반드시 나쁜 공포는 아니다. 즐거운 공포일수도 있다. 놀이공원의 귀신의 집과 무서운 호러영화는 인기가 많다.

 우리는 공포가 매력의 일부임을 안다. 사실, 호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싫어하는 사람들 만큼이나 무서움을 느낀다고 한다. 믿기지 않겠지만 설문조사 결과이다. 이 사람들은 모두 사물이나 환경에 둔감하지 않으며 실제로 그런 공포속에서 미묘한 쾌락을 느낀다. 나는 우울한 영화를 보면 이상하게 해탈되는 기분이 든다. 오르가즘을 느낄때도 사람은 천국으로 날아갈 것 같지만 표정은 고통스러워 보이지 않는가? 이게 뭔가 연관성이 없어 보이는 같지만 어떠한 면에선 같은 맥락이 아닐까 의심이 든다…

인간은 이러한 공포나 슬픔, 죽음 이런 감정들을 피할려고 무진장 애를 쓴다. 행복하고 무탈한 삶을 살아가길 갈망한다. 고난과 고통은 그 본래의 성격때문에 의식적으로 피하게 된다. 하지만 육체적 감정적 고통, 난관과 실패와 상실이 바로 우리가 찾아 헤매는 것이다. 

고통이 삶에서 필수인 것 처럼, 권태감을 치유하는 건 자극이다. 지금 생각해도, 저 세미나는 좋은 경험이었고 짜릿한 추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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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난 김에 사는 여니

별거아닌 생각, 소소히 적기연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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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아아아 여니 이 호텔 글 썼네요!!! 너무 특별한 경험이라 다른 장르로 보고싶슴니당! 여니작가님! 스릴러물 단편소설 하나 나와야지 않겟슴니깡! 하얀 복도,미궁,기억 삭제, 순간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들…나는 누구? 왜 여기? 여기는 어디? 탈출은 가능할까! 영화 가스라이트 여주 생각남다에!!! ^^ ㅋㅋㅋㅋ 팬으로서 작가님 스릴러 소설이야기 기다리겠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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