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풍에 걸리신 엄마랑 함께 하는 산책길, 남편이나 딸애랑 함께 할땐 그 길이 그렇게 짧게만 느껴지더니 오늘 심하게 절뚝거리는 엄마랑 하니 웬지 하염없이 점점 길게만 느껴진다. 엄마가 돌부리에 채워 뒤우뚱거린다. 젊었을때 아빠는 엄마의 키가 훤칠하다고 자랑이 대단했고 나도 함께 공연히 뿌듯해진적도 있었지만 그게 지금은 둔한 행동과 함께 더 둔중해지면서 다 부담으로 다가온다.
“체구나 아담하시면 부축하기나 쉽지…”
엄마를 힘겹게 부축하느라 체력이 딸린 나는 한탄이 나갔다. 나의 이런 말엔 상관이 없이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사시는 엄마가 어눌한 혀놀림으로 습관처럼 하시는 말을 또 되뇌인다.
“너를 낳길 잘했지… 네가 없으면 어쩔뻔 했어.”
그 말에 마음속에 쌓였던 원망들이 폭팔하며 불같은 화가 치민다.
“나를 낳길 잘했다구? 왜 날 낳았어? 이렇게 날 고생 시킬거면 왜 낳았냐구? ”
눈물이 앞을 가린다. 며칠전, 절룩거리는 엄마랑 걸음마를 금방 뗀 딸애를 데리고 병원 가는 십자로에서 엄마는 또 뒤우뚱하고 넘어지시고 그 옆에 딸애도 제김에 놀라서 넘어져 날카로운 울음을 터뜨렸다. 엄마를 부축하기에는 엄마가 너무 무거웠고 딸애는 부추켜 세우면 또 넘어진다. 사면에서 빵빵하고 울리는 무정한 경적소리와 그 사이에도 속도를 내서 지나가는 수많은 차와 사람들사이에서 나는 초긴장상태에 빠졌고 그 사이에서 나는 나에게 너무 잔인하게 느껴지는 초조한 고민을 해야만 했다.
도대체 누구를 먼저 부축해야지? 내 딸? 내 엄마?
누구도 알려줄수 없는 이 문제의 해답을 찾지도 못한채 나는 그 뒤로부턴 딸을 뒤에 업고 엄마를 휠채어에 앉히고 딸애와 엄마의 기저귀를 사러 다니게 되였다.
나는 답을 알수 없었다. 내 인생에 무엇이 먼저지? 엄마? 아니면 내 가정?
나는 아직 졸업도 못했고 금방 사업에서 제자리를 찾기 시작한 남편과 돈을 모아 딸애를 키워야 되는 이런 햇가정에 엄마는 왜 그렇게 자기 건강관리를 안하시고 중풍에 걸려 이렇게 돌덩이같은 부담을 우리에게 주시는걸까?
“날 낳길 잘했다고 ? 왜? 엄마를 잘 모셔줘서? 그럼 내 인생은 어떻게 되는거야? 내 딸은? 내 가정은…엄마, 정말 몇년만 더 기다려 주시지…이렇게 젊은 나이에 이게 뭐야?”
나의 이런 한탄에 엄마의 얼굴은 심하게 찌그러지시고 비뚤어진 입에서 침을 흘리며 정말 추하게 우신다. 누가 로인은 인자하고 자애롭다고 했던가… 그런 새빨간 거짓말이 어디 있나? 이 세상인간의 모든 비참함과 추악함을 다 알려주는게 사람이 늙어가는 과정이 아니던가?
집에 돌아와 엄마를 겨우 휠체어에 앉혀 놓았는데 그 휠체어로부터 뚝뚝 노란 액체가 흘러내린다. 그 노란액체가 바닥에 흘러나와 또 다른 작은 면적의 노란 액체와 만난다. 딸애가 짜개바지를 입고 웃으며 엉덩이를 살살 흔들거린다. 엄마의 실수에 한없이 짜증나던 마음은 딸애의 웃는 얼굴에 사르르 다 풀리며 나는 딸애 엉덩이를 톡톡 쳐주며 칭찬을 해준다.
“우리 공주 쉬했어? 우리 공주 얼마나 시원할까 …”
딸애는 까르르 웃으며 저쪽으로 도망간다. 엄마는 웃는지 우는지 알지 못할 표정으로 또 찌그러진 얼굴로 입에 침을 흘리며 눈물, 코물을 함께 짜신다. 같은 일에도 딸애하고 엄마한테 너무 정반대의 반응을 보이는 나한테 약간 자책의 마음이 들었다. 옷을 벗고 엄마도 옷을 다 벗기고 샤워실에 들어갔다. 딸애도 어른따라 옷을 홀라당 벗더니 샤워실에 들어온다.
샤워기의 물을 트니 샤워실에는 수증기가 가득 채워지고 그 속에서 나와 엄마, 그리고 딸애 이 삼세대가 함께 목욕을 시작했다. 그런데 금방 젖을 뗀 딸애는 목욕에 흥취가 없고 옆에 함께 쪼크리 앉아서 내 가슴만 만지작거리며 내 눈치를 보며 가슴에 얼굴을 대기도 하고 가만히 입술도 맞춰본다. 그리고는 “쭈쭈, 엄마 쭈쭈 맛있는거… ”하며 쉼없이 쫑알거린다.
나는 거품을 많이 풀어 엄마의 머리며 등이며 가슴이며 씻어주기 시작했다. 엄마의 살결의 촉감은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순간 내 마음은 어느새 애틋한 감정으로 차오르기 시작했다. 엄마의 가슴에 있는 거품을 씻어주려고 그 축 늘어진 엄마 가슴을 어루만지는 그 순간, 어릴적 엄마품에서 느꼈던 그 부드럽고 포근하고 친근한 촉감이 내 가슴과 심장에 말못할 사랑의 전률로 전해진다.
아, 그래, 내가 어릴적 얼마나 엄마를 사랑했던가? 엄마팔에 얼굴을 부비며 잠들었던 시절, 엄마와 떨어지는게 세상에서 젤 싫었던 시절, 그걸 왜 다 잊어버리고 엄마를 이렇게 원망했을가? 엄마의 가슴을 파고 들며 젖을 먹는 나를 내려다보는 엄마의 그 흐뭇한 얼굴을 그 흉하게 쭈그러든 얼굴에서 환하게 보는듯 싶었다.
그게 그 신비한 모성의 사랑이였음을.. 마치 내 딸애가 내 품에 파고 들듯이 나도 엄마품을 얼마나 파고 들었고 나에게 엄마는 얼마나 크고 든든한 존재였고 나는 그런 엄마를 나는 얼마나 살가워하고 사랑했던가? 내가 지금 내 딸한테 주는 이 본능적이고 그 무엇보다도 진실한 모든 사랑을 내가 어릴적 기억도 없을때부터 지금은 병들어 있는 이 엄마한테서 똑같이 받았다는 사실… 내가 가장 어린 시절, 가장 약하고 힘이 없어서 보호가 필요할때 지금 이렇게 병들어 있는 이 나약한 늙은 녀인이 그의 젊음을 바쳐 온몸과 정성을 다하여 나를 사랑하고 보호해주고 키워줬다는 그 사실을 내가 정녕 기억하지 않고 있었다는게 말이나 되는가?
가장 추악함과 비참함은 늙어가는 로인에게 있는것이 아니라 이 젊은이의 사랑에 대한 망각에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쳐졌다.
엄마는 샤워를 하니 시원하신지 또 그 말씀을 하신다.
“내가 널 낳길 잘했지..낳지 않았더면 어쩔뻔 했어!”
함께 맞장구를 쳤다.
“나 엄마딸로 태여나길 잘했어!”
엄마, 날 낳길 정말 잘했어. 그래서 난 엄마한테서 너무 사랑을 많이 받았지, 그거면 이미 충분해… 엄마, 나 엄마같은 녀자라는게 너무 자랑스러워…그 강한 사랑으로 엄마도, 내 딸도, 우리 모든 가족 다 사랑할거야!
정말 팍팍하고 힘든 현실이지만 나는 엄마의 사랑을 되새기며 사랑의 어마어마한 힘이 믿어졌다. 사랑이 우리를 구해줄것이다!
2015년 “장백산” 3월호에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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