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애랑 함께 려행을 떠났을 때의 어느 날이였다. 발 아프도록 돌아다니다가 늦어서야 호텔로 돌아가려고 지하철에 올랐다. 그리고이 늦은 밤 귀가하는 농민공과 만났다. 그들은 우리 맞은켠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한 사람은 보통키에 뼈가 굵었고 다부지게 생겼다. 다른 한 사람은 가냘프다 싶이 여위여서 두 볼이 홀쪽했다. 그들의 얼굴은 오랜 세월 해볕에 그을리고 찬바람을 맞고 비에 젖고 눈에 얼어서 검붉은 색갈을 띠고 있었고 깊이 패인 주름투성이였다. 듬성듬성흰 머리카락이 섞인 머리는 하루의 먼지와땀으로엉겨붙은 것을 두손으로 꾹꾹 눌러놓아서 꼭 마치 가발을 쓴듯 어색하게 얹혀져 있었다. 웃옷의 목깃과 팔소매는 늘어나 후줄근히 처지고 실밥이 몇곳 터져있었고보무래기들이 잔뜩 일어있었다. 입은 옷과 바지에는 공사장의 세멘트가루거나 각종 흙먼지들을 툭툭 털어낸희부연 얼룩이 져있었다. 한 사람은 여기저기 둘러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다른 한 사람은 고개를 꺾어 잠이 들어있었다. 힘겨운 로동의 그늘이 적라라하게 내비쳐져 있었다. 누군가의 “가난이야 한낱 람루에 지나지 않는다.”던 시구가 떠오른 순간이였다. 아무리 로동을 신성한 것이라고 미화하더라도 지긋지긋한 초라함이며 더욱이 절박한 생존을 위한 것이라면 감당할 수 없는 고역일 뿐이다.

온하루 부지런했고 상처입었을 두손을 가만히 바라본다. 그  손에는 어떤 흉터가 있으며 어떤 굳은 살들이 박혔을가? 어쩌다 가을철에 부모님을 도와 일한 내 손에도 벼가을을 하다가 낫에 베이거나 콩꼬투리에 찔리거나 말라서 버석거리는 옥수수잎사귀에 베이거나 감자를 파다가 돌멩이에 찧기거나 하여서 별의별 아주 작아서 눈에 띄지도 않는 허물들이 가득하다. 그러할 진대 저들의 손이야 더 말해 무엇하랴.

한참을 바라보며 온하루 그들이 흘렸을 땀을 생각한다. 몸에서 흘러나와 미끈거리고 끈적거리는 땀, 폭양과 먼지가 내려앉아 반죽이되고 삐걱이는 뼈와 말라버리고 쭈그러든 육신에서 진액처럼 흘러나온 고통과 한숨이 버무려진 땀, 이 도시의 구정물처럼 넘치는 고상하거나 화려한 자들의 동정과 적선이 기생하는 땀…땀방울이 땅에 떨어질 때마다 그들은 절망을 죽여버리 듯 꾹꾹 밟으며 나아갔을 것이다. 그 땀이 땅바닥에 떨어지고 거기에 해살이 비출 때마다 죽은 물고기의 비늘처럼 희멀겋게 번쩍였을 것이다. 그곳에서 진정 희망 같은 것이 자라날 수 있었을가.

한뉘 농사일에 지쳐온 부모님이 떠오른다. 흙이 끼이고 풀물이 든 손으로 억척스레 그리고 그악스레 살아온 삶, 일하고 또 일해도 가난만 서러웠던 삶이였다.  그래서 그들의 삶은 아무것도 아니게 초라했다. 나는 그런 부모님에게 사상이 없는걸 부끄러워했다. 참으로 오만했고 철없던 시절이다. 그러나 지금 돌이켜보면 사상이란 어쩌면 몸을 부려 일에 지쳐야 하는 사람들의 고단한 하품끝에 두눈에서 배여나오는 눈물방울 만큼이나 싱겁고 쓸모없는 것이 아니였을가 생각한다.

몸으로 세상과 직접 부딪쳐야 하는 사람들의 삶은 고달프고 고통스럽다. 다만 묵묵히 견뎌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또다시 그 울혈 가득한 삶을 등에 지고 살아내야 할 뿐이다. 일을 놓으면 당장 사라질듯한 그들, 일이 만들어낸 그들은 아무리 버티고 버티여도 무너질 일은 얼마든지 생겼다. 봄 여름 내내 아무리 고생스레 엎드려 일해도 시퍼렇게 여물지 않은 벼밭과 마주하거나 들짐승이 휩쓸고간 밭에서 이삭주이를 하거나 갑자기 믿고 의지하던 소가 아프거나…

그러나 그 모두를 이겨낼 수 있는 날들도 가끔은 있었다. 이랑이랑마다 무성하게 자라나 넘실거리고 익어가는 곡식들을  바라볼 때이다. 그래서 그들은 결코 자신과 자신의 맨 주먹과 땀방울로만 살아있은 것이 아니였다. 이 땅과 이 푸르름이 항상 생과 함께 해주었던 것이다. 몸으로 살아내며 뜯기고 무너지고 다시 일어서느라 허약해진 몸으로 지탱하는 고달픈 삶속에도 가끔 해빛 한줄기처럼 락은 비쳐들었다. 꼭 때맞추어 내리던 비에 괜히 기분이 좋아서 비물을 주르르 흘리며 들어서서 미소짓던 날, 탈곡을 마치고 뽀얀 먼지를 쓴 얼굴들끼리 손으로 벅벅 문지르며 올해의 풍작을 이야기하며 함께 밥을 먹고 기분좋게 술 몇잔 마시던 날, 자식이 공부를 잘해서 붉은 꽃을 앞가슴에 달아보던 날… 쓰라리고 가슴 저미는 일도 많았지만 그때만큼은 이 세상 부러울 것 없는 행복한 시간이였다.

지하철이 한참을 달리고 문득 잠든 이를 향해 툭툭 치며 한 사람이 말했다.
“이제 한개 정거장 남았어. 3분이면 집에 도착해. 집에 도착해. 이제 3분이야”
이제 3분이면 집에 도착한다며 두번이나 반복하는 그 말이 나마저 안도하게 만들었다. 돌아가 또 하루를 지탱해오느라 지친 몸을 편히 쉴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 반복과 그 어조와 그 표정에서 나는 그들에게 있어서 그 집은 얼마나 따스한 삶의위안이 되는지를 깨달으며 그에 또한번 다행스러워하며 전률하듯 감동했다.

역에 도착했다. 그들은 지하철에서 내렸다. 이제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 안해가 만들어준 밥을 먹을 것이다. 어쩌면 허겁지겁 배를 채울지도 모르겠다. 식사로서 즐길 시간이 없을 것이다. 이미 하루의 고된 로동은 그들을  허기지게 만들었을 것이다. 다만 목숨을 연명하기 위해서 그들은 입안에 밥을 밀어넣고 있을 것이다.

안해는 오늘 벌이가 어떠하였는지를 온 몸으로 묻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애써 참으며 밥을 떠넣어 그 물음들을 막아낼 것이다. 그 또한 그런 안해를 느끼면서도 짐짓 모르는 척 아이의 이야기를 나누며 히뭇이 웃으며 밥을 떠넣을 것이다. 그리고 캄캄한  어둠속에서 서로서로 안쓰러워 팔을 뻗어 껴안을 것이다.

아버지와 엄마도 늘 그랬었다. 가뭄에 땅이 쩍쩍 갈라질 때 엄마는 아버지가 들어오는 기색부터 살피셨다. 그러나 입을 열어 곡식들이 어떠한지를 묻지는 않았다. 아버지 또한 엄마의 그런 눈길을 피했다. 랭수 한사발 떠 마시고 부모를 흘깃거리면서도 짐짓 아닌척 하며 책을 손에 들고 있는 내게 숙제를 다했는지를 물으셨을 뿐이다. 그리고 우리는 저녁을 먹기에 서둘러 집중했다. 뜨거운 밥을 찬물에 말아 후룩후룩 먹으며 요란하게 소리를 냈다. 그것으로 다른 무엇을 막아보려고 했다. 그 서로 모르려고 했던 감히 투명하게 터칠 수 없어 허겁지겁 피하려고 했던 안쓰러운 몸짓들이 눈물겹다.

얼마후 그들은 잠속으로 빠져들 것이다. 억척스레 사느라 몸마저 돌볼 시간이 없었지만 그 로동속에서 그들은 어쩌면 누구보다 몸 사리지 않고 일했고 그 틈으로 소박한 행복을  만들어 누구보다 절실하게 향수하며 생활을 더 넓게 더 깊게 살아냈는지도 모른다.

이 밤 그들의 잠속으로 고운 꿈이 날아와 얹히길 바란다. 그래서 허물어지더라도 수없이 다시 일어나 살아서 몸부림치게 만들어주길 바란다. 그것이 어느만큼 파괴적이면서도 유혹적이고 끔찍하면서도 아름다운 형벌임을 잘 알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들이 그 생을 누구보다 사랑함을  잘 아는 까닭이다.

아프고 쓸쓸한 자리마다에
고운 꿈이 피여라
꽃처럼 피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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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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