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틀전 조선족연합회 신년회에 갔다 왔습니다. 

가장 큰 수확은 역시 꽃 한다발 들고와서 가족에게 선물했다는 것, 애들과 집사람이 제일 기뻐했던것 같습니다. 이 꽃들은 누군가가 행사장에 장식하기 위해 선물한 것인데, 연회가 끝나고 돌아갈 때 그냥 놔두면 호텔에서 버리니깐 다들 필요한 만큼 집으로 가져가라고 해서 저도 보기 좋은 꽃들을 골라서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큰애보고 하나 가장 맘에드는 것을 골라라 하고 나머지는 물병에 담아 테이블에 장식해 놓았답니다. 매 번 술모임 참가할 때마다 이렇게 꽃을 들고 온다면 아마 금후에는 집사람한데 지지를 받으며 술모임에 참가할 수 있을것 같습니다. ㅋㅋㅋ  

참가한 활동은 2024년2월3일(토요일) 닛보리 랑그웃도에서 열린 전일본중국조선족연합회 신년회 및 회장단 이취임식이었습니다.  

저는 연합회의 이사가 아니라서 원래는 참가할 자격이 없었는데, 연합회 소속 30개 단체의 집행부 임원들도 참가할 수 있다 해서, 월드옥타 치바지회의 집행부 맴버로서 참가신청을 하게 된 것이랍니다. 

이취임식 절차가 순서적으로 진행되었고, 마홍철 제2대 회장으로부터 서성일 제3대 회장으로 기치바꿈이 진행되고, 중국 영사관, 중국 화인화교연합회, 조선중학교, 월드옥타 등 귀빈들의 발언이 이어지고, 새로운 회장단 임원들이 발표되고,  참가자 전원의 단체사진을 찍고 드디어 즐거운 식사시간이 시작되었답니다. 

이 문장을 쓰기로 나의 마음을 움직였던 것든 이취임식 절차가 아니었습니다. 주의깊게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제2대회장 제3대회장의 발언과 래빈들의 발언을 귀기울여 들은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연합회 자체가 나와는 거리가 먼 존재로 인식하고 있었기에 어디까지나 방관자의 마음으로 구경만 했던것입니다. 

하지만 식사시간이 시작되고, 문예공연이 시작되면서, 한창 테이블에 나와 있는 エビチリソース였던지 아니면 다른 어떤 요리였던지를 공용 접시에서 자기 개인접시로 담아 먹으려고 했을 때, 무대에서 흘러나오는 가사에 갑자기 한순간 가슴이 뭉클해지면서 눈물이 펑펑 솓아질번 했답니다. 


나라 잃고 봄도 없는 우리들에게
언제가면 마음속에 꽃이 피려나
… 

그날 동영상 링크: https://youtu.be/SnfPmSk8dp0?si=Ac07R4gtkMrwOwjv

이 노래는 우리가 어릴적에 아무 생각없이 즐겁게 불렀던 노래가 아닌가? 왜 지금 이 노래가 이렇게도 마음을 울리는 거지? 핸드폰으로 노래의 한장면을 찍으면서 머리속에 나타난 의문이었답니다. 

그후에도 여러가지 조선족 무용을 포함한 절목들이 잇달아 진행되었고, 같은 테이블에 앉아 있는 친구들과 술도 마시고 잡담도 했으며, 또 건배하러 온 연합회 영도들과 잔을 비우기도 하고, 한동안은 테이블을 떠나 밖에서 어떤 분과 같이 긴시간 잡담을 나누기도 하고, 연회가 끝나서 주최측에서 우정 가져가라고 밖에 놓은 꽃다발 속에서 애와 집사람한데 선물할 생각으로  좋아하는 꽃을 뽑아 포장하고, 연회에 참가했던 분들과 빠이빠이 하면서 집으로 향하는 전철역으로 가면서, 머리속에 순간순간 떠오르는 것이 바로 “꽃파는 처녀”의 노래 선율이었답니다. 

꽃파는 처녀라는 영화를 본 적도 없고, 노래 가사 전체를 다 읽어본 적도 없지만, 그 순간 그 가사의 그 구절이 가장 마음에 메아리 쳤던 것은, 조선족으로 일본에서 살고 있는 나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그 가사로 표현이 되지 않았나 싶었습니다. 

고향이 중국에 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조선족 마을도 사라지고 다니던 조선족 학교도 페허가 되어있어 더이상 어릴때의 화기애애한 고향이 아니고, 여기 일본에서 살아간다 하지만 애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일본어와 일본문화에 익숙해져 있어 우리처럼 조선말을 배우거나 사용할 기회도 없고, 나는 그래도 그나마 조선어 사용한다고 조선족 활동도 참가하고 하지만, 젊은 세대들이 뒤를 이어 나타나지 않는 이상 우리 이 세대들이 늙어가면서 조선족이라는 단어가 역사로 되는 것은 아닐가 라는 의문을 멈출수가 없었습니다. 

우수한 조선족 젊은이들이 학습능력도 강하고 적응능력도 강하기에 쉽게 한어를 배우고 익히고, 쉽게 낯선 일본땅에서도 일본사람 못지 않게 현지의 습관에 적응되면서, 사실은 우리의 조선족 문화도 더 빨리 포기하지 않는가 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렇게 보면, 오히려 나이들고 중국어에 익숙하지 못했던 선배들이 우리말과 우리문화를 고집하는데는 우리보다 더 강한 감정을 담았던것 같았습니다. 신년회의 임기교체식에서 , 제2대 회장도 그렇고 제3대 회장도 그렇고, 중국영사관의 영사가 바로 주석대 앞에 앉아 있는 곳에서, 첫 몇마디는 중국말로 환영인사를 하고나서, 중국말 잘 못하니깐 아래 내용은 조선말로 하겠습니다 하고 우리 말로 긴 연설을 한 것은, 어찌보면 이제 국내의 조선족소학교에서도 모두 중국말이 주요언어로 되어가는 시대의 변화속에서도 우리 언어를 지켜가고자 하는 최후의 “고집” 인것 같았습니다. 

고향에 있는 부모님과 마을 어른들이 생각났습니다. 중학교 다닐 때는 부모님과 고향의 어른들이 니디워디 밖에 못한다고 중국말 못한다고 웃었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는 그게 정상이었고, 그분들이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시대에 뒤떨어져 그랬는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이미 대학교도 나오고, 일본이라는 선진국가에 와서 살면서, 연회에 참가하고 돌아와서 “꽃파는 처녀”의 대목을 외우면서, 새벽에 일어나 조선말로 이렇게 글 쓰고 있는 자신을 돌아보니, 순간적으로 그때 내가 비웃었던 고향마을의 어른들의 “조선어에 대한 고집”을 이해할 수 있는것 같습니다. 

감개무량한김에 글은 적었지만 결론은 모르겠습니다. 우리들의 전통과 문화가 언제까지 이어질 수 있는지는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의 선택에 달려 있는것 같습니다. 몇억년이 지나면 지구도 사라지고 우주도 사라지겠지만, 우리가 조선족으로서 지구에서 살아왔던 삶은 기억으로 우주의 어느 구석에 영원히 기록되어 있을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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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사 두 줄 읽으니 머리속에 자동재생됐슴다. 쏘련이든 조선이든 어디든 사회주의 국가는 선전부가 쎄서 음악이나 영화 같은 예술이 발달함다, 인민 교육 목적으로. 그럼에도 저 선율이 정다운건 내가 어려서 젖어든 감수성 때문일테지요. / 니디워디로도 살수 있었던 그 시절의 공동체 커버력.

  2. 유튭에 올라온 2시간 50분짜리 2024년 음력설 야회를 10분도 안되는 사이에 훑어보면서 안에 콘텐틀르 본 바에 의하면 우리들의 전통과 문화가 “퓨전”으로 전해지다가 인차 사라질거 같습니다. 다르게 생각하면 나쁜것만은 아닌거 같아요, 적자생존이니… 이러지라도 않으면 곧바로 영영 도태될수도 있는 위험이 있으니…

  3. 해마다 봄이 오면 산과 들에는
    아름다운 꽃들이 피여나건만
    나라잃고 봄도 없는 우리들에게
    언제가면 가슴속에 꽃이 피려나.
    어릴때 영화도 두세번은 본거 같습니다. 번마다 펑펑 울었구요. 이 음악은 더구나 음악시간에도 배웠었고 무수히 들은거 같구요.
    이 글을 보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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