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모멘트에 이 글을 올린 날은 좀 울적한 날이었다. 절친 정도로 가까운 사이는 아니지만, 그래도 동창중에서 학교도 명문대를 졸업하고 그 발붙이기 힘든 상해에서 뿌리를 내리고 새 삶을 시작하려던 동창생 한명이  위암말기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원래 올해초부터 건강상황이 안 좋았고 항암치료를 시작했지만, 그 과정에서 상태가 점점 악화됐고 결국 서른이란 젊은나이에 서둘러 짧은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주변에서 지인의 지인들이 사고로, 병으로 돌아가는 일은 적지 않았으나, 고작 내 또래의 더군다나 이 친구는 내 동창이었으니 직접적인 지인인데, 나한테 이런 경우는 처음이었다. 

몇달전까지만 해도 메시지를 주고 받으며 응원을 해줬고 그도 나에게 미국은 코로나 괜찮냐면서 걱정해줬는데, 정작 사망소식을 들으니 많이 당황했고 허탈햇다. 심지어, 올해 초에 금방 결혼등기도 했는데, 남은 와이프랑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님들의 심정은 오죽했을가… 좋은 곳에 천국에 갔을거라 위로해보지만 결국 슬픔은 언제나 남은 사람 몫이다. 

오는데는 순서가 있어도 가는데는 순서가 없다는 말을 삶에서 느껴보는 나이가 됐다는 게 실감이 안난다. 환상의 도시 상해에서 떳떳하게 자리잡고, 이쁘고 똑같이 우수한 사랑하는 아내랑 결혼생활을 꿈 꿧을텐데, 생명이란, 산다는 것이란 가끔 이렇게 덧없기도 하다. 

인간은 이 우주의 작은 부분으로 존재한다. 그리고 언젠가는 우리를 태어나게 한 자연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사실, 우주적이고 뇌과학적 삶의 의미는 단 한가지, 산다는 그 자체이다. 

나는 살면도 수도없이 나의 존재이유와 삶의 본질, 인생의 의미와 가치를 되묻곤 했다. 철학적이나 종교적이나 과학적이나 파고들면 들수록 (此生)인생은 종국적으로 의미가 없었고 사람들은 삶의 동력을 얻기 위해 동기부여 차원에서 의미를 만들어갔다. 어쩌면 산다는 것은 시작이 우연이었고 죽으면 흙으로 가는 과정이다. 

이 과정에서 우린 많은 인연과 연을 맺고 서로 사랑하고 보살피면서 인생이란 여행을 하게 된다. 중도에 누가 내릴수도 있고 또 누군가 올라올수도 있고, 내가 먼저 내릴수도 있지만 그 자체로 웃고 울고 기쁘고 슬픈게 삶인거 같다. 인간성찰의 끝은 아무래도 <무>이니까. 

왠지 이유는 잘 몰루겠으나, 나는 어릴적부터 이상한 습관이 있었다. 아주 맛나는 음식이나, 신나는 일이나, 행복한 순간이 있으면 그걸 글로 쓰고 사진으로 찍는 일외에도, 내 맘속 판도라의 상자에 넣어놨다가 시도때도 없이 꺼내서 자꾸 들춰보는 습관이 있다. 뭔가 이게 내 마지막 음식이었어도, 이게 내 마지막 웃음이었어도, 이게 우리의 마지막 만남일지라도 … 후회없고 싶다는 생각? 같은거 일수도 있고 뭔가를 반복적으로 되뇌이면서 이별하는 독특한 방식일수도 있다. 

그래서 어렸을 때 종종 <난 부모님이 어느순간 내 곁에 안계신다 해도 혼자 잘 살아갈수 있어야 해>하고 일기를 썻던 기억이 있다. 당연히 우리집은 엄청 화목했고 부모님도 그 외국바람 불던 시절에,  두분 다 내 곁에 있었지만 말이다. 

산다는 것은 결국 이별에 익숙해져야 하는 일들이 수도없이 많다.  그리고 그 이별 준비는 늘 하지만, 우리는 정작 현실의 벽에 맞닥치면 상처받고 좌절한다. 그게 인간이다. 애쓰지 말고 편안하게, 냉담해지지 말고 다정하게, 우리는 대부분의 매 순간을 즐겁게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 

일본의 유명한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런 말을 했다. <나는 늘 사람은 천천히 늙어가는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가 틀렸다. 사람은 한순간에 늙는다.> 그렇다, 그래서 생각은 넓게 하되, 인생은 단순하게 살아야 한다. 

덜 허무하기 위해 의미를, 놀이를, 예술을, 생활을 하겠지만 낳음당한 이 세상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것보다 어쩌면 우리는 각자 처한 상황을 면밀히 파악하고 대처해나가는 것 외엔 딱히 할것이 없다. 

어느 책에서 봤는데, 강자는 삶의 의미따윈 찾을 필요도 이유도 없다고 한다. 왜냐면 그들은 그저 자신이 원하는것을 찾고 채운다고 한다. 삶의 의미란 약자가 내는 우는 소리이고 약한 마음의 소유자들이나 하는 핑게라 한다. 하지만…

의미없는 걸 알면서도 열심히 낭만을 찾는자, 그 또한 적자생존 현실사회에서 진정 성숙해질려 노력하는 사람이 아닐까도 싶다.

슬퍼도 웃을줄 알고, 뭔가를 보내도 다시 사랑할줄 아는 …

잔혹하지만, 그 슬픔의 무게를 어떤 한개 단어로 표현할순 없지만, 다시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그리고 남은 분들은 산다는 것의 명분하에 힘을 내기 바란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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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니

글로 내 생각과 내 마음을 표현할수 있는건 굉장히 행복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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