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나의 다행이 새로운 걱정과 고민을 가져올 것이라는 예상은 못했다. 성공할 가능성이 미약한 수술이 잘 마무리가 되었고 예후도 기대치보다 높으면 좋은 징조라는 섣부른 판단을 했다. 하지만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우리는 육안으로 보이는 것에만 근거하여 결론을 내렸고 그저 눈으로 보았을 때 혈색도 좋아지고 몸의 균형도 잘 잡혀가고 있었기 때문에 점점 더 좋아질 것이고 좋아져야 한다는 욕심이 생겼다. 겉으로 보이는 것보다 내부 속성에 대한 검진을 통해 훨씬 명확한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항상 마음은 조급함을 감출 수 없어 이성의 끈을 놓치게 된다. 완전한 회복이 가능하여 다시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은 기대로 좋은 것만 찾아보게 된다. 

수술을 받은 지 18개월이 되었다. 수술을 한 뒤로 건강회복에 신경을 썼고 더욱이 큰 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던 사유로 몸을 무리하게 사용하는 일을 할 수 없었고 단순한 노동을 하는 것도 어려워졌다. 아버지는 자기 스스로 건강을 지키는 일도 버거워진 상태이기 때문에 집에서 쉬는 일과 주기적으로 주치의를 만나는 일이 가장 큰 과제였다. 

1년 반이라는 시간을 흘렀고 퇴원할 때에 비해 눈에 띄게 회복이 잘 된 것처럼 보였다. 근력이라곤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마른 몸으로 퇴원을 했으나 이제는 걸을 때 곧잘 균형을 잘 잡고 비틀거리지 않으며 육안으로 확인 가능한 건장해 보이는 몸의 형태를 갖추었기 때문에 더 이상 걱정할 필요가 없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인체구조의 한 부분으로 자리 잡고 있는 뇌라는 조직은 참으로 신비스러운 존재였다. 하고 싶은 말이나 행동은 뇌의 신호를 받고 실현하는 것이라는 어릴 적 배웠던 얕은 지식을 새삼 떠올리게 한다. 

생각을 조합하고 기억을 하고 사고를 하고 언어를 구현하고 의식이 생성되는 등의 복잡한 일들은 뇌가 수행하는 기능을 통해 실현된다. 더불어 동작, 반사, 몸의 평행기능 역시 뇌의 신경세포에 의해 진행된다. 뇌출혈로 중환자실에 누워 계시다가 눈을 뜨고 겉보기에는 정신을 차린 듯해 보이지만 아무런 말씀이 없으셨고 어느 정도 시간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간단한 어휘 몇 가지만 어눌하게 발음을 하시다가 종이와 펜을 달라고 요구하시는 것이 가능하기까지 우리는 늘 마음을 조이고 있었다. 뇌에 입력되는 지시어와 그것을 몸의 각 신경으로 전달하는 과정에 뇌의 신경세포가 신호를 적절하게 운반하지 못한 이유로 어휘를 구사할 때 한 글자씩 오류가 나거나 손으로 적은 어휘도 한 획씩 틀리게 쓸 때가 있었다. 누구보다도 올바른 맞춤법과 문법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분이셨는데 뇌의 손상으로 오작동 된 기계마냥 잘못된 표현을 반복하는 상황이 믿어지지 않았다. 과연 다시 회복이 가능한지에 대한 희망보다 절망스러운 마음이 더 크다가도 아직 단정 짓기에 너무 이르니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봐야 되는 게 아닐까라는 생각을 수없이 번복했다. 조급해하지 않고 한걸음씩 천천히 재활치료를 하는 것이 올바르다고 생각하고 변화하는 병세에 따라 의사선생님의 의견에 맞춰 적합한 치료를 해왔다. 물리치료, 작업치료, 도수치료 등의 재활치료를 수개월간 진행했고 보행과 언어 기능이 일상이 가능할 만큼 크게 좋아졌지만 웃픈 새로운 “취미”가 생겼다. 

그것은 집에 있는 물건 가운데 사용 빈도가 낮으면서 그것이 사용이 빈번하지 않기 때문에 소용없는 물건으로 판단하고 물건 주인한테 묻지도 않고 말없이 갖다 버리는 일이다. 덕분에 나름의 의도하지 않은 미니멀라이프가 실현되는 듯하지만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나의 물건들이 하나 둘씩 사라지는 것이 참 싫었고 화가 났다. 소중하게 여겼던 책이 사라지는 경우도 있었고 애착템인 고가의 선글라스도 언제부턴가 있어야 할 그 자리에 보이지 않았다. 심지어 과거에 비해 체형이 많이 달라져 예전에 입었던 옷을 입을 수가 없다고 본인의 옷을 갖다 버리기도 했다. 하루에 세 번씩 일 년 반을 넘게 병원에서 처방해준 약을 계속 복용했고 따라서 식욕이 늘면서 몸이 부푸는 바람에 예전의 옷 사이즈가 작아 불편할 만하기도 했다. 아프면서 과거에 비해 많이 달라진 자기 스스로의 모습과 할 수 있는 것이 제한되어 몸이 마음을 따라주지 못하는 상황, 그리고 긴 시간동안의 재활치료와 코로나로 인해 부쩍 줄어든 지인과의 만남 등의 요인으로 본인은 더욱 괴로울 것이라 입장을 바꿔 생각하기로 했다. 때문에 계속 이해하고 늘 아버지의 뜻을 따라주고 변론하고 싶은 말도 항상 혀끝까지 맴돌았다가 아픈 몸이니 참고 좋게 넘기자는 생각으로 당황스럽고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웃으면서 “달래고 수긍”하기만 했다. 

그래서였을까 …… 아버지는 물건을 함부로 버리는 일이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어 지금까지도 헌 것이든 새 것이든 오로지 본인의 판단에 맡겨버린 채 순간 필요 없는 것이라 생각되면 내다 버린다. 엄마는 농담 식으로 “나까지 갖다 버리지, 우리도 갖다 버리지 않고 쯧쯧 ……” 말씀하시면 아버지는 멋쩍게 웃기만 하신다. 내가 화가 나는 건 소중한 물건을 버리는 일보다도 아버지의 몸이 아프기 시작하면서 이러한 새로운 습관이 생겨버렸다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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