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새벽인데 잠이 안와. 온갖 생각들로 머리가 복잡해서 잠이 안와. 

그래서 또 글 쓰러 왔어. 

오늘은 교육과 스승에 대해 이야기 한다고 했었지. 

이 부분은 나의 확고한 신념에 관한 내용이라서 문장의 마무리를 –다로 맺으려 해.

나는 손과 발에 습진이 있다. 중국에 있을 땐 심한 줄 모르고 살았지만 한국에 오니 습진이 사라지는 날이 손에 꼽힐 정도로 계속 나를 괴롭히고 있다. 

나는 손가락에 잡힌 작고 따닥따닥한 물집을 보면 가끔 옛 소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그때에는 맨손으로 걸레질을 했다. 상대적으로 깨끗한 창틀도 닦아야 했지만 복도 층계의 아래부분에 이음새로 된 빨간 벽도 닦아야 했다. 그 부분은 걸레질 할 때 항상 바닥과 닿아서 걸레를 짜면 시꺼먼 물과 모래가 있었다. 걸레를 만질 때 그 모래의 질감이 아직도 소름끼치는 기억으로 남아있다. 겨울이 되면 물이 너무 차가워 손이 꽁꽁 얼어 새빨개졌고, 원래 피부가 약한 나는 손가락에 껍질이 벗겨지기 일수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왜 고무장갑을 낄 생각을 못했는지 모르겠다. 정말 손이 너무 시리고 아팠었는데 말이다. 

학창시절 나는 말을 잘 듣는 모범생이였다. 선생님이 무얼하라고 하면 곧이곧대로 했었다. 그래서 고무장갑 같은 건 생각도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 생각하면 안타깝기 그지 없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와 선생님의 역할이다. 

지금이야 다들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아 육아와 교육에 대해 많이들 알고 있지만 예전에는 학교에 보내면 그게 교육인줄 알았을 것이다. 

부모의 역할에 대해서는 많이 얘기하지 않겠다. 아직 내가 부모가 되어보지 않았기에. 

하지만 원칙은 있다. 사람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품성이 다 다를 것이다. 매 가족마다 존재하는 가훈도 다 다르다. 그런 것들에 맞게 키우면 된다. 하지만, 만약, 내가 자라온 가정환경이 나에게 상처를 주었던 것이라면, 그리고 나에게 아이가 있다면. 내가 노력하지 않는 한 그 불행은 대물림된다. 그 노력에는 스스로 애쓰는 것도 있겠지만 배움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리고 수없는 실천이 동반된다. 

아이를 사랑하지 않는 부모는 극히 드물다. 그러나 사랑한다는 마음과 그 표현이 언제나 맞물리는 것은 아니다. 사랑하지만 상처주는 부모도 많다. 사랑하지만 상처주는 표현방식이 대물림 되지 않게 미연에 스스로 노력할 필요가 있다. 

무의식의 힘을 무시하지 마라. 어릴 때 보고 배운 것은 상상 그 이상으로 당신에게 큰 영향을 끼친다. 

이제 스승의 이야기를 하겠다. 

학창시절엔 단 한번도 떠오르지 않았던 나의 과오가 대학교 2학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간간이 떠오른다. 그리고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소학교 4, 5학년 때 우리 반주임은 우리들에게 방과후 남아서 학습능력이 뒤처지는 아이들에게 보도해줄 것을 요구했다. 내 기억엔 6개 조(각 조에 약 8명)가 있었고 조장들이 각 조원을 책임졌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보면 학습능력이 뒤처지는 아이들 중에는 발달장애도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아이들은 그들에게 맞는 수준만 요구하면 되는데, 그 시절 락후한 교육환경에서 어디 그럴 수 있었겠는가. 

빨리 집에 가고 싶은데, 교실에는 나와 다른 몇몇 안되는 조장들과 공부가 차한 아이들이 남아있었다. 아무리 설명해줘도 이해하지 못했다. 그 답답한 마음은 정말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리라. 게다가 그 당시 나는 겨우 초등학생,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린 나이다. 불같이 화도 내보고 천천히 다시 설명해줘보아도 소용이 없다. 그냥 모르겠다고 한다. … 울화통이 치밀어서 결국 나는 하면 안될 짓을 하고야 만다. 

때렸다. 

예전에는 필기장을 검은 뚜껑으로 앞뒤면에 덧대여서 사용했었다. 알 사람은 알 것이다, 그 뚜껑이 꽤 두껍고 단단하다는 것을. 필기장 혹은 교과서로 등짝이며 어깨며 머리며 있는 힘껏 내리쳤던 것 같다. 얼마나 아팠을까… 그나마 모서리로 찍지 않았다는 것에 구제불능 악질은 아닐 것이라 스스로 위로한다. 그냥 분풀이었다. 화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랬었다. 선생님이 알았는지 몰랐는지는 모르겠다. 집에 돌아가서 미주알 고주알 다 얘기했었는지도 기억이 안난다. 다만 내가 그러고 있을 동안 그 누구도 그런 행동은 절대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알려주지 않았다. 

다 큰 어른이 되어서야 그 행동이 학교폭력이고 얼마나 심한지 깨닫게 되었다. 

그 아이들은 트라우마가 남았을까. 아니면 너무 싫어서 기억조차 못하고 있을까. 아니면 너무 당연해서 기억도 안하고 있을까. 

그 당시 초등교사의 폭력은 정말로 비일비재했다. 특히 한어선생님은 지금으로 놓고 보면 구속감이다. 나는 한어선생님을 특히 무서워 했는데 지명을 당해 발표할 때는 머리가 하얘졌던 기억이 난다. 그 선생님을 무서워한 데는 폭력이 큰 비중을 차지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일 것이다. 한번은 수업시간에 숙제를 해오지 않고, 대답도 잘 안하는 남학생을 앞에 불러내어, 애들이 보는 앞에서 욕하면서 하이힐로 다리를 찼던 기억이 난다. 그 분위기는 정말 도살장이었다. 너무 싫고 무섭고 무기력했다. 나의 행위를 굳이 분석하자면 그런 상황을 보면서 배웠던 것 같다. 공부 못하는 애는 맞아도 가만히 있는다는 걸. 왜냐하면 그 선생님은 그 일로 어떠한 처분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의 사회를 만만히 보지 말라. 다시 생각해보아도 초등학생 시절만큼 야생 정글인 분위기는 없었다. 아니면 우리 반이 특히 그러했는지도 모르겠다. 인도의 신분 계급처럼, 힘 있거나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삼삼오오 잘 어울려 지냈는데, 공부를 지독하게 못하고 지능도 좀 떨어져보이는 아이는 제일 하대받았다. 친구들이 같이 놀려고 하지도 않았고 선생님도 그 아이들을 챙겨주지 않았다. 나는 지금도 내가 때렸던 아이들의 이름과 얼굴이 기억이 난다. 그 중에서 한 남자아이는 내가 화내도 실실, 때려도 실실 웃기만 했었는데 나를 많이 놀려주었었다. 그런 웃고 놀리는 모습이 더 화를 돋구어서 그 애 한테는 항상 화났던 기억만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나랑 놀고 싶어서 그랬던 것 같은데.

그 아이들에게 정말 너무 미안하다. 가끔은 너무 미안해서 본인을 찾아 사과하고 싶은데 그 아이들은 졸업 이후 한번도 못 보았을뿐만 아니라 연락할 방법도 없다. 혹시라도 만나게 된다면, 이런 말들을 하고 싶다. 

"그때는 내가 어려서 정말 철이 없고 멍청했어. 내가 나빴어. 얼마나 아팠니. 트라우마로 남지는 않았니. 지금은 잘못을 뉘우치고 뼈저리게 후회하고 있어. 지나간 일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지만 그래도 진심으로 사과할께. 용서해줄래?"

아마 이 사건들은 평생 내 마음 속 한구석에 불편함과 미안함으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건을 똑바로 들여다 보면, 이 일들이 발생하게 된 원흉은 선생님이다. 

폭력을 시범해 보인것도 선생이고, 애초에 어린 학생이었던 내가 겪지 않아도 될 일이었다, 선생이 똑바로 자기가 할 일을 자기가 책임지고 했다면. 방과후 지도는 학생이 아니라 선생이 해야 할 일 아닌가. (내가 이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내가 폭력성을 보인 경우는 살면서 딱 그때뿐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이렇게 생각한다고 해서 내가 한 행동의 면죄부가 되진 않는다고 본다. 사람은 누구나 본인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하니까. 

하지만 이러한 일들이 다시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교사는 똑바로 처신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교사의 의무는 지식 전달이 우선이 아니다. 사람 됨됨이를 만드는 것에 일조하는 것이다. 

지식은 혼자서라도 충분히 배울 수 있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이다. 아인슈타인은 훌륭한 스승이 있어 그에게 양자역학을 배워줬다던가?

하지만 사람 됨됨이는 혼자서 배울 수 없다. 사람들 속에서 치이며 겪거나 타인이 가르쳐줘야만 한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말은 ' 할 거 없으면 선생이나 하지 뭐' 이다. 

지금부터는 현재의 교육 시스템을 신랄하게 비판하겠다. 

아이가 어릴수록 아이를 교육하는 교육자는 우수해야 한다. 

도덕과 지식을 겸비한 인재여야 한다. 

그런데 실상은 어떠한가. 

초중고 중에서 공부를 가장 못하는 사람이 초등학교 교육을 한다. 대학  관련 전공 입학 자격, 교사자격증 기준이 그러하다.

위에서 말한 공부는 지식 수준이 낮은 것을 말하고, 지식 수준이 낮은 이는 통상적으로 공부에 관심이 없다. 이 공부는 지식과 도덕 수준에서의 자아 증진을 말한다. 공부에 관심이 있는 자는 통상적으로 지식 수준도 높아질 수 밖에 없다. 배움을 즐기니까. 

소질. 소질이 차하다. 

(여기에서 예외를 논하지 마라. 어디에나 예외는 존재한다. 深圳의 사립초등학교는 중국의 최고 교육 대학의 석사생들을 선생으로 모집한다. )

중국의 초등학생 교사들은 보편적으로 소질이 차할 수 밖에 없는 시스템이다. 국가에서 정한 자격부터가 그러하니. 

내가 본 선생 중에는 정말 아이들을 마음으로 사랑하는 선생도 있었고, 가정이 불행해 많이 어긋난 아이는 눈엣가시로 어떻게든 치우고 싶어하는 선생도 있었다. 

나는 교사들의 下线이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上线이야 높으면 좋겠지만 적어도 일정한 下线이하는 내려가지 말아야지. 학교가 사업장도 아니고, 어떻게 희생이 불가피한 직종에 종사하면서 본인의 리익을 그렇게 알뜰히 챙길 생각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사명감을 가지고 교사직에 종사하면 좋으련만. 

학부모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한국을 오기 전까지만 해도 고향에 있는 학부모들 사이에는 이상한 바람이 불었다. 한국에서 건너온 부모 교육을 조금 다니고는 학교에 있는 선생들에게 이것 저것 불합리한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우리 아이는 자존감을 길러줄 필요가 있으니 학교에서는 꾸지람 하지 말아주세요. ' 등과 같은 것들이다. 

"우리 영어 선생님은 잇재, 영 얼빤하다."

초등학교 아이가 이런 말을 학원에 가서 한다. 이 말을 누가 했겠는가. 당연히 그 애의 부모이다. 그 엄마가 몰래 말한 건지 대놓고 말한 건지는 알 수 없지만, 아이는 부모의 말을 귀신같이 듣는다. 부모가 교사를 존중하지 않으면 아이도 교사를 존중하지 않는다. 그러면 교권은 무너지고 더이상 아이를 교육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이 없어진다. 부모의 교육이 아무리 중요하다 하더라도 아이는 하루의 대부분을 부모가 아닌 선생님과 지낸다. 한국의 교권이 무너진 생생한 사례가 있는데 멍청한 부모들은 그 행동이 자신의 아이를 망치는 줄도 모르고 본인이 선생보다 더 똑똑한 척 행동한다. 정말 교사보다 더 똑똑한 부모라면 절대 아이 앞에서 선생의 험담을 하지 않을 것이다. 절대 교사에게 시비를 걸지 않을 것이다. 그 업이 그대로 자기 아이에게 갈 것을 알기 때문에. 

이렇게 물을 사람도 있을 것 같다. 교사가 정말로 너무 형편없이 행동하는데 그럼 어떻게 하란 말인교? 맹모삼천지교다. 이사하라. 아이가 속해 있는 집단에서 분란을 피우는 것은 하나도 도움이 안된다. 


두시간이 금세 지났네. 

휴,,, 속이 너무 시원해.

어디가서 이런 얘기를 하면 본인의 처지가 있어 듣는 이가 편해하지 않거나 본인의 처지가 아니라 관심이 없던데 여기에선 보고 싶은 사람들만 보니 그럴 걱정이 없네. 


이 글은 몇 주 전에 썼었는데, 정말 온갖 답답함이 머릿속을 꽉 채워 잠이 안와서 벌떡 일어나 새벽 5-6시까지 썼는데, 그때는 더 할 말이 있다 생각되어 발표하지 않았었는데,, ㅎㅎ 사실 더 할말도 없는거더라. 

글은 막 뭔가가 막 올라올때 잘 써지는 것 같아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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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노

그 누구와도 맘놓고 얘기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여기에 끄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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