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바람속에 나섰다. 그때부터 한 목숨으로서 짊어져야 하는 것들이 있었고 그것을 다 잊거나 털어버리고 무심하고 홀가분하게 훨훨 날 수는 없었다. 모두 무겁게 짊어졌다. 삶에 어느 하나 쉽고 가벼운 것 있겠는가. 어느 한끼의 밥이 가벼운가? 어느 사랑이 가벼운가? 어느 눈물이 가벼운가? 또한 아무리 보잘것없는 존재라도 근심, 걱정, 번뇌같은 것이 없을 수 없다. 그것은 욕심 때문도 아니고 집착 때문도 아니다. 다만 우리의 생존이 무거운 탓이다.

       날개는 외롭다. 함께했던 날개들을 잃어버리고 놓쳐버리고 빼앗기고 고독하게 남았다. 외로움은 벗어날 수도 구제될 수도 없다. 어쩌다 곁에서 숨결이 위로처럼 닿아오는 때도 있지만 결국 혼자의 힘에 기대일 수밖에 없다. 망망한 허공속에서 홀로 헐떡이며 떠돌고 혼자 울고 웃어야 한다.

      저 산너머, 저 바다너머, 저 어둠너머에 무엇이 있을가? 또 무엇을 바라는가? 가닿을 수는 있으며 가닿으려는 욕망은 있는가? 우리는 모른다. 땅이 있고 하늘이 있고 그 사이 넘치는 바람이 있고 무조건 그속을 경과할 뿐이다. 모르기 때문에 오히려 희망이 되여버리는 경우일가? 아니면 현실이 너무 가열해서 눈길을 먼곳에 두는 것일가? 

       사면팔방에서 바람은 불어온다. 또 시간마다 다른 바람이 불어온다. 영롱하게 빛나거나 달콤할 때도 있고 뢰성병력이 치는 미친듯한 바람일 때도 있고 혹독한 열기로 뜨겁거나 비나 눈으로 차겁기도 했고 음울한 뒤골목의 축축하고 더러운 먼지가 섞이기도 했고 온갖 들짐승의 냄새가 배이기도 했고… 

      그 숱한 바람은 몸뚱이를 그냥 스쳐가지 않는다. 고요하고 평화롭게 다가와 어루쓸어주기도 하지만 날카롭게 찔러오기도 하고 끈적하게 달라붙기도 하고 으르렁거리며 물어뜯고 할퀴고 했다. 보드랍고 반짝이던 아름다운 깃털은 먼지 오르거나 젖거나 얼기도 하고 찢기거나 꺾이기도 했다. 상처나고 람루해진 날개를 만지며 아프고 힘들 때면 차라리 날개를 뽑아버리고 추락하여 흙먼지속에 뒹굴다 사라져가고 싶었다. 

      그러나 바람을 거부하지도 피해가지도 않았다. 어떠한 바람이든 모두 마주했고 받아들여 품었으며 인내하고 삭여냈다. 불가사의한 삶의 의지였다. 세상의 바람과 화해하며 바람속에 담긴 모든 것들의 생명을 느끼며 그 생명에 깃든 사랑의 빛을 빌려서 다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켜냈다. 충분히 깨끗하고 향기롭고 높지 않더라도 진실된 감정을 담았다. 그것이 생의 힘차고 완전한 아름다움이다. 그 바람결에 눈을 씻고 부리를 갈고 가슴을 비볐다. 숨을 토하며 날개를 실었다. 날개가 날개다워지고 그에 의해 폭풍우속을 뚫었고 절벽을 날아올랐고 사막을 지났고 빙하를 날아넘었고… 눈물도 더러 쏟았고 피방울도 더러 떨구었다. 그렇게 현재를 날았고 현실을 날았다. 밝거나 어두운 날개짓 그 사이로 세상을 사랑하려고 노력했다.

      바람이 온다. 날개를 믿어 나아갈 뿐이다. 날개는 온갖 바람을 안아들이는 가슴과 령혼을 믿는다. 

      세월과 더불어 가지만 세월이 남겨주는 것은 없다. 부여해주는 의미도 없고 아무 신비도 없다. 날개치는 소리만 여전히 하늘 가득히 차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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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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