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길어진 밤은 갑작스레 찾아오고 있었다. 그냥 숙였던 고개를 들었을뿐인데 한해가 절반넘어 흐르듯 지나간것처럼 어둠은 삽시간에 거리를 덮어버렸다.
병원에서 낮에 진찰을 받고 중약을 맡겼던지라 달여져 나온 따끈따끈한 중약을 받아들었다.
병원문에 들어갈때만해도 어슬어슬하던 거리는 어느새 어두워지고 있었다. 뻐스를 기다려 제일 뒤자석에 자리잡고 앉았다. 붐비는 거리에 비하면 생각밖으로 뻐스안은 한적했다.
이어폰을 귀에 끼고 핸드폰으로 내가 좋아하는 노래를 찾아 듣는다. 불시에 차거워진 날씨때문에 기온차이로 차창에 맿힌 물방울을 손으로 훔치고 어둠이 깔린 창밖을 보았다. 가로등 불빛아래 비방울이 날리고 있었다.
허줄한 공공뻐스 뒤자석에서도 귀가에 음악이 흐르면 어슴프레한 창밖풍경도 꿈같이 느껴진다. 비방울이 그림을 그리는 창밖을 보고 있으려니 묵혀 놓았던 감성이나 쌓아 놓았던 꿈을 뒤적여 보기 좋은 날씨인것 같다.
뻐스가 어느새 고급중학교와 초급중학교가 밀집해 있는 거리에 들어선다. 창밖엔 학원이 끝나 집에 가는, 혹은 대강 저녁밥을 먹고 또 다른 학원으로 가는듯한 학생들이 보인다. 걸어가는 그들의 옆건물에는 여러가지 이름으로 된 학원들이 불빛 휘황하다. 올해 고급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애도 여러 학원을 거쳐 지금쯤 댄스학원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춤에 땀을 흘릴것이다.
고중입시시험준비에 힘들던 시기를 거쳐 끝내 자기가 소원하던 고급중학교에 입학한 아들애는 ”엄마 나 댄스학원에 다니고 싶습니다.”
하고 말 붙여왔다. 다른애들은 방학부터 여러 공부학원에 다니는데 엉뚱하다싶이 초급학교, 초급중학교때에도 배우지 않던 댄스를 배우겠단다.
지금 안배우면 2학년, 3학년에 올라갈수록 배울 시간이 더 없어질거라 생각해서 그래, 그렇게 배우고 싶으면 한번 배워봐. 하고 시원히 허락해줬다. 그 취미는 이제 수개월째 이어지고 있다.
롱구동아리에 가고, 수학학원에 가고, 화학학원에 가고, 또 자기가 좋아하는 댄스학원에 가고, 아들애의 하루하루는 알차게 흘러간다.
“엄마, 이제 한달후에 댄스학원에서 XX광장에서 무대하나 한답니다. 그때가 너무 기대됩니다. 가슴이 두근거려요.”
두근거릴수 있는 너의 청춘이 흐뭇하다.
잠시 생각에 잠겨본다 .내 어린 시절은 어떠했던가고.
소학교때 하학해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서점을 지나치게 된다.
책을 좋아하는 부모님 덕분에 먹을것도 부족하던 그때 세월에도 나도 그림책들을 드문드문 살수 있었는데 “심청전””미래를 유람한 령돌이”등 책이였다. 그런데 어느날 서점에 두터운 이야기책이 왔다. 교과서 몇개 합친것만큼 두터운 그 이야기책의 제목은 “꽃치마 입은 승냥이”였다.
그 책이 갖고 싶었다. 허나 일반 그림책은 10몇전하던때 그 책은 61전이란 “거금”의 가격이였다. 어린 나이에도 빠듯한 살림을 알아서 엄마한테 청들지는 못하고 어느날 내게 돈이 생겨 그 읽고 싶은 이야기책을 살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가하고 바라고 바랐다. 하학하면 그 책을 구경할수 있다는 마음에 두근거렸고 서점을 지나며 창문안에 진렬뒤여 있는 그책을 보는것은 일종의 향수였다.
어느 만화가는 자기는 봄을 좋아하기에 겨울을 좋아한다고 말했었다 봄을 좋아한 나머지 그 봄을 기다리는 그 겨울까지도 좋단다. 나는 그책을 좋아하고 동경했기에 그 책을 갖지 못학고 설레며 바라던 그 순간까지도 사랑했었던것 같다.
초중시절, 나는 잠시 그림에 빠진적이 있었다. 하학하고 시골학교 어둠컴컴한 계단을 따라 이층에 올라간다.
이층은 교실도 없고 아마 교무실과 그 옆에 우리가 그림을 그리는 화실이 있었던것 같다.
계단을 돌아 이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설렘 그 자체였다. 조심조심 올라가 화실 문을 열면 그림의 향기가 쏟아져 나온다.
대학에 금방 입학한 언니가 국경절에 집으로 오며 바이올린을 가지고 왔다. 대학 건교일을 맞아서 출연준비를 해야 한다는것이다. 소학교때 바이올린을 켰던 언니는 자신의 특장을 살려 바이올린연주를 준비했던것이다.
언니한테서 도레미를 배워 음을 익혀서 그 바이올린현이 내 손끝에서 미숙하게나마 멜로디를 만들어낼때 내 마음은 신기로 감탄으로 두근거렸던것 같다.
뻐스밖은 더 어두워지고 귀에 건 이어폰에서는 어느 아이돌그룹이 부른 노래가 들려온다. 아들애가
”엄마, 요즘 이 곡에 맞춰 춤 배웁니다.”
해서 찾아 들었던 곡이다.
컴퓨터화면에 나오는 그 아이돌들의 모습은 갖 건져올린 생선만큼이나 싱싱하게 퍼덕이는 모습이였다. 그 위치까지 간 그들의 피, 땀, 눈물은 우리의 상상이외일수 있을것이다. 다시 돌아가고 싶은 어제는 없지만 그들의 건강과 희망이 부럽다는 생각을 해본다.
40대에 들어서면서 몸이 예전같지 않다. 드디여 오늘 병원에 가서 중약을 지어오는 정도에 이르렀다. 가슴이 시도 때도 없이 두근거리기 때문이다. 커피를 마셔서도 아니고 주체못할 꿈과 희망때문도 아니다. 내 몸에 이상신호가 와서였다.
창밖의 풍경은 꿈처럼 흘러가고 무릎우에 놓인 따끈따끈한 중약봉투만이 가장 현실성있게 느껴진다.
내 꿈은 이젠 저 창밖 풍경처럼  저렇게 흘러가 버리는건가.
되고 싶었다. 뭐든지.
되고 싶었다. 뭐라도.
그러다가 어느 순간 나는 나를 놓았다. 내 손을 떠난 나는 시골집 마당 저 한 귀퉁이에서 겨울을 지새는 벼짚더미처럼 바람과 눈발에 젖어 곰삭아 갔다.
삐걱거리기 시작하는 몸, 말라가기 시작하는 감성, 다시 꿈꿀수 있을가, 다시 설렐수 있을가.
아픔이 아닌 희망으로 두근거리고 싶다.
좋은 노래를 발견하면 저장해두고 자꾸자꾸 반복해 듣는 나는, 길가다가 눈꽃이 나리면 멈춰 손 한번 눈꽃에 줘보는 나는 아직 설렐 마음이 남아 있은지도 모르겠다. 아직 떨릴 마음이 준비되여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제 누구 손을 잡으면 다시 설렐수 있을가, 다시 떨릴수 있을가.
나무가지가 바람에 일렁이는 거리에 밤이 밀려오듯 덤덤한 내 삶에 꿈이 밀려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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