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머니의 죽음 이후
1977년 10월 25일 어머니가 사망한다. 어머니가 돌아간 이튿날부터 롤랑 바르트는 어머니에 대한 추모일기를 쓰기 시작했다. 그의 책상 위에는 공책을 4등분한 쪽지들이 담긴 케이스가 항상 놓여 있었다. 이 쪽지 위에 바르트는 주로 잉크로, 때로는 연필로 어머니에 관한 단상들을 적어나갔다. 이 단상들은 그가 죽기 전까지 2년 넘게 지속되었고, 이 단상집은 사후 29년이 지난 2009년에 『애도일기』라는 제목으로 출간된다. 애도일기라는 제목은 롤랑 바르트가 애초에 이 작업을 시작하면서 붙인 제목이었다.
애도일기를 집필하던 중, 바르트는 어머니의 어린시절 사진(그는 그것을 겨울정원사진이라고 불렀다)을 발견하였고, 그 사진을 통해 어머니의 상실과 부재를 재확인하고 나아가 어머니와 재회(재현re-presentation이라고 말하는 편이 더 적절하다)의 환희를 맛보는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된다. 이 체험을 현상학적 관점에서 서술하고 있는 책이 훗날 사진미학서의 바이블로 군림한 『밝은방』이다.
어머니의 죽음(1977) 이후 자신이 생을 마감(1980)하기까지의 기간 동안에 쓰인 바르트의 글들은 모두 어머니를 상실한 비통으로부터 촉발된 것들이며 어머니의 죽음을 기표로 하는 것들이다. 이 시기 글쓰기 스타일 또한 큰 변화가 일어난다. 바르트가 일찍 시도하려 했던 비평적 글쓰기와 생산적 글쓰기(소설) 사이의 '사이 글쓰기' 스타일로 이행한다. (언어와 세계와의 관계, 그리고 이 양자 사이를 매개하고 있는 문학적 글쓰기의 역할에 대한 탐색이다.)
2. 애도는 부재하고 망각만이 강요되는 시대
오늘날, 사람들 사이에 못할 얘기는 거의 없다. 대통령을 욕하는 것도, 신을 저주하는 것도, 바람핀 무용담을 늘여놓는 것도, 동성 간의 사랑에 대해 얘기하는 것도 금기가 아니다. 그럼에도 안되는 게 있다면 죽은자(죽음)에 대해서 말하기다. 만일 당신이 누구한테 '죽을 놈'이라고 말한다면 대화는 곧 중단되고 침묵이 흐를 것이다. 우리는 죽는다는 평범한 진리를, 대단한 비밀인양 서로 누설하지 않는다. 누설하면 안된다. 죽음은 사회로부터 추방당한 터부이니깐(그렇다.) 사회적으로 죽음이나 망자에 대해 말하는 것은 교양과 예의가 없는 것으로 여겨지며, 상실의 슬픔을 떨쳐내지 못하고 오랜 기간 품고있는 것 역시 심각한 병으로 간주된다. 결국 우리에게 요구되는 태도는 비통을 감추고 아무렇지 않은 듯 일상생활을 하되 되도록이면 슬픔은 빨리 잊어야 한다는 강박이다. 이렇듯 사회에서 추방된 애도는 개인의 내밀한 공간에 숨어들어, 내면에서 홀로 해결해야만 하는 과제로 남는다.
롤랑 바르트가 엄마의 죽음 앞에서 보이는 태도 역시 다르지 않다. 바르트는 슬픔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은 채, 사람들을 만나고 회식을 하고 강의를 나간다. 이렇게 추방된 애도의 슬픔은 결국엔 내밀한 공간인 그의 아파트, 서재, 연구실, 공원 벤치, 산책로 그리고 남들이 깊이 잠든 밤 등 절대적 고독 속에 스며든다. 내면에 침잠한 채 탈출구를 못찾는 슬픔들이 갈 곳은 그곳들뿐이다. 엄마가 죽은 다음 날 바로 메모지를 4등분으로 잘라 책상 위에 쌓아두는 바르트의 행동은 애도를 드러내지 않으면서(아니, 드러내지 못하면서) 애도를 해야 하기 위함이다.
1976년 바르트는 환갑이 넘는 나이에 대학 교수로 임용된다. 교수 취임식날 어머니를 강당 맨 앞줄 정중앙에 모시고 했던 취임연설이 아름다운 일화로 남아 있다.
그로부터 1년 뒤 어머니는 돌아간다. 어머니 나이 84세.
또 그로부터 2년 뒤 바르트가 세상을 떠난다. 그의 나이 65세.
3. 애도와 멜랑콜리
애도와 멜랑콜리. 슬픔을 처리하는 두 가지 방식이다. 프로이드의 정신분석학에서 애도(Trauer)는 리비도(욕망)의 흐름으로 파악된다. 우리가 산다고 하는 것, 그리고 건강한 정신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은 리비도가 끊임없이 유동하기 때문이니라. 그러나 사랑하는 이의 상실로 인해 슬픔이 들이닥쳤을 때, 리비도는 갈곳을 잃고 정체된다. 욕망이 멈춘다. 하지만 살아가야 할 존재로서 우리는 리비도의 운동을 다시 회복해야 한다. 그 회복은 죽은 자를 나의 일상으로부터 밀어냄으로서, 망각함으로서 상실의 슬픔을 극복하는 과정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다고 가정해보자. ‘니가 없이 난 못살아. 나도 죽을 거야’ 처음엔 누구나 그렇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바뀐다. 자기합리화가 일어난다. '그래 내가 꿋꿋이 사는 것이야말로 그 사람을 위하는 것이야' 라는 식의 합리화 작업이 시작된다. 이것은 인간의 자기보존본능이다. 프로이드는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 슬퍼하는 시간을 가지고 그속에서 슬픔을 풀어내는 이러한 내면의 작업을 애도라고 불렀다.(더 정확히는 애도작업이다. 독일어에서 애도Trauer라는 단어는 애도작업이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결국 애도작업이라는 것은 슬픔으로 인해 정지된 리비도를 다시 운동시키는 정상적이고 건강한 정신활동이라 정신분석학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사람이 어찌 다 똑같겠는가. 그게 안되는 사람들이 있다. 슬픔의 시간을 가지지만, 그 슬픔이 정리(애도작업)가 안되는 부류가 있다. 리비도의 운동은 삶을 영위하고자 하는 본능임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유동을 거부하는 이들이다. 슬픔을 끝까지 움켜쥐고 망자를 기억 속에서 떠나보내려 하지 않는 이들이다. 이때 리비도는 갈 곳을 찾지 못하고 고이고 고여서 고착된다. 이러한 상태가 잉여에 이를 때, 회귀충동이 들어선다. 내가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려는 충동이다. (그것은 엄마의 자궁 – 자아myself가 없는 곳이다) 이는 곧 자아의 상실이며 곧 슬퍼하는 대상과 '함께 죽는 것’이다. 이것이 멜랑콜리(Melancholie)다. (간혹 우울이라고 번역되지만, 멜랑콜리와 우울은 다르다. 멜랑콜리는 살아가려는 욕구를 거부하는 정신활동이며 해결되지 않는 애통의 연속이다.)
어머니를 잃었을 때, 롤랑 바르트는 애도와 멜랑콜리라는 양자택일 앞에 선다. 사랑하는 사람이 가져다주는 슬픔을 추방시킬 것인가? 아니면 그 슬픔과 함께 갈 것인가? 바르트는 후자를 택한 것 으로 보인다. 『애도일기』가 제목으로 봐서는 애도라는 슬픔의 처리방식을 택한 듯 보이지만, 결국 바르트가 행한 것은 멜랑콜리였다는 그 점에서 엄마의 죽음 이후 시작된 일기쓰기는 망각에 저항하기 위한 몸짓이자, 어머니의 ‘흔적’을 잊지 않으려고 하는 절규이였다. (보편적 의미에서 일기쓰기는 내면적 자아를 찾아가는 글이지만, 『애도일기』는 자아가 붕괴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때문에 이 글은 일기적인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탈일기적이다.)
4. 바르트의 절규
애도일기의 첫구절이다.
결혼 첫날 밤은 그렇다고 쳐도 애도의 첫날 밤은 뭘까? 어머니가 운명 한 첫날 밤이다. 왜 어머니가 돌아 간 첫날 밤에 결혼식 첫날밤을 이야기 할까? 결혼식 첫날 밤이 사랑하는 이와의 합일을 상징한다면, 애도의 첫날밤은 사랑하는 이와의 분리를 의미한다. 아버지가 없는 유복자로서, 결혼한 적이 없는 노총각으로서 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살아 온 환갑 넘은 노인 롤랑 바르트에게 있어 어머니의 죽음 즉 어머니와의 분리는 젖을 달라고 아무리 울부짖어도 달려오지 않는 엄마를 찾는 아이의 마음이였을 것이다.
나는 병들어서 죽어가는 내 어머니의 육체를 알고 있습니다."
애도일기의 두번 째 글귀다. 무슨 말인가? 바르트는 밝은방이란 책에서 이런 류의 말을 한 적이 있다. ' 나에게 어머니는 어머니였지만, 나의 부인이였으며 어머니는 나에게 딸이였다.' 60평생을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는 점을 생각해볼 때, 유년시절의 바르트에게 어머니는 그를 낳고 키워준 생물학적인 엄마가 틀림 없었을 것이고, 장년이 되어서는 집안대소사를 함께 의논하는 삶의 파트너(부인)랑 다르지 않았을 것이며, 임종의 침상에서는 바르트에게서 식사와 기저귀 착용을 도움받는 어머니는 딸이나 다름없었을 것이다. 이런 엄마와 평생을 분리된 적이 없었던 바르트가 엄마의 육체를 알았다는 것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자아의 분리가 가져다 준 충격의 절규이다.
그러면 결국 문학이 되고 말까 봐 두렵기 때문에. . "
자신의 무한한 슬픔이 문학작품이라는 '감상 되는 것'으로 될까바 바르트는 두렵다. 이 부분은 밝은방에서 엄마에 관한 것들이 공적인 담론의 대상이 될까 걱정하는 대목과 같은 맥락이다.
나는 슬픔 속에 있는 게 아니다. 나는 슬퍼하는 것이다."
바르트는 '슬픔 속'에 있는 수동적 상태가 아니라고 외친다. 그는 슬픔을 택한 것이다.. 슬픔에 '빠진' 것이 아니라 슬픔을 실현하는 능동적 주체이다.
아침부터 그녀의 사진들을 들여다보기 시작하다.
슬픔이 멈춘 것도 아닌데 또하나의 슬픔이 시작되다.
이 중단 없는 새로 시작하기. 시지포스. "
또는 (전화로) 지금 집에 와 있어요, 라고 말할 사람이 더는 없다는 것.:
여기서 언급되는 어머니의 사진이 바로 그의 유작 <밝은방>의 모티프가 되는 마망의 그 사진이다. 겨울정원사진.
5. 책을 덮으며
1976년 바르트는 환갑이 넘는 나이에 미셸 푸코의 추천으로 대학 교수로 임용된다. 교수 취임식날 어머니를 강당 맨 앞줄 정중앙에 모시고 했던 취임연설이 아름다운 일화로 남아 있다. 그러나 그의 행복은 그리 길지 않았다. 그로부터 1년 뒤 그는 어머니를 잃는다. 어머니 나이 84세.
또 그로부터 2년 뒤, 바르트는 점심 식사를 마치고 나오는 길에서 트럭에 치이는 사고를 당한다. 병원에 실려갔지만 다시 일어나려는 의지가 없었다고 한다. 주치의 말에 따르면 의지적 치료거부. 그렇게 바르트는 세상을 떠났다. 그의 나이 65세. 자신의 분신에 대한 슬픔을 중단시키고, 떠나보내는 게 아닌, 분신의 슬픔과 함께 동행을 택한 바르트, 그 슬픔을 기리기 위해 무덤을 지은 바르트, 바르트는 그 무덤을 글쓰기로 지었고 묘비명을 애도일기라 적었다.
P.S: 롤랑 바르트는 그의 마망을 생각하며 애도일기를 썻고, 나는 나의 마망(작고2년)과 나의 파파(작고2주)를 생각하며 그의 애도일기를 읽었다. 2024년 9월 28일 새벽 1시 35분. 꿈있는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