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내가 아빠 생일 선물로 블록 코딩을 이용한 축하 카드를 만든다고 하더니, 어느새 일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아빠만을 위한 생일 테마 게임을 만든다는 것이다. 블록이 이미 180개를 넘었는데도 “아직 시작”이라며 엄마더러 보라 한다.

게임 속 아빠는 집을 나서 케이크용 밀가루를 찾고, 버터를 찾고… 모든 재료를 다 찾은 뒤에 오븐에 구워서 양초까지 찾아서 켜야 비로소 케이크를 완성한다. 기획은 훌륭하지만, 복잡한 걸 질색하는 아빠 취향은 아닐 듯싶어 물었다.

“아빠가 좋아할까? 복잡한 거 싫어하잖아?”
“아유~ 뭐가 이렇게 길대?”

아이의 아빠 성대모사에 나는 웃어 버렸고 아이도 깔깔거린다. 

“너 벌써 아빠를 다 파악했구나?”
“그럼요. 제가 이 집에 온 지 11년이에요.”
“그래, 곧 11년이네! 그래서 아빠를 다 이해한 거야?”

그러자 아이는 뜻밖의 대답을 내놓았다.

“아뇨. 이해하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구나, 그러려니 해요.”

나는 노파심에 덧붙였다.

“아빠 반응이 신통치 않아도 그건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는 거, 알지?”
“네, 알아요. 그냥 아빠는 그렇구나 생각해요.”

다 이해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심리학에서 말하는 무조건적 긍정적 존중을 아이는 자신한테서 타자에게까지 확장한 것 같았다. 아빠는 이래야 한다는 기대를 중단하고, 아빠라는 존재를 해석이나 판단 없이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선입견과 판단을 멈추면 대상은 있는 그대로 드러난다. 이런 수용 태도가 어쩌면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 아닐까.

퇴근한 남편에게 아이와의 대화를 전하며 웃었다.

“나는 20년을 살아도 여전히 ‘남편은, 아빠는 이래야 돼.’라는 기대와 잣대를 못 놓겠는데, 우리 둘째는 이미 더 깊은 사랑의 지혜를 아는 것 같아.”

그런 것 같다며 둘이 함께 웃었다. 오늘도 아이 덕분에 배우고, 아이 덕분에 더 많이 웃는다.

이 글을 공유하기:

들레

우리의 말과 글을 배우고 가르치고 따져 보는 걸 좋아합니다.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좋아요 좋아요
7
좋아요
오~ 오~
0
오~
토닥토닥 토닥토닥
0
토닥토닥

댓글 남기기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