센스메이킹과 아비투스: 《알고 있다는 착각》을 읽고
어쩌다 보니 인류학자가 쓴 책을 몇 권 읽게 되었다. 어쩌면 그들의 연구가 일상적인 것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내가 읽었던 몇 권 안 되는 인류학 연구의 저자가 모두 시작 부분에서 인류학자와 인류학의 연구방법, 인류학적 사고방식 등에 대해 어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국화와 칼》의 저자 루스 베네딕트는 "인류학자는 그가 받은 훈련 덕택에 몇 가지 특별한 자질을 가지고 있으므로"라는 표현을 사용했고, 《알고 있다는 착각》의 저자 질리언 테트는 인류학의 연구가 오늘의 세계에 꼭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딱딱한 경제 모형과 같은 20세기의 도구만으로 21세기를 탐색하는 것은 한밤중에 나침반의 눈금만 읽으면서 어두운 숲을 지나가는 격이며, 주변을 둘러볼 줄 모르는 이런 터널 시야는 치명적이므로 인류학 시야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아, 인류학이란 이런 거였구나. 이렇게 세상을 볼 수도 있는 거였네. 오, 이런 건 처음 알았네.” 등 생각을 했지만 이런 식의 표현을 두세 번 정도 접하게 되자 갑자기 내가 “이런 식으로 글을 쓴다면 독자들은 어떻게 반응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전문학 연구자들은 사전적 지식을 특별히 중시하므로 멋진 글을 읽었을 때도 직관적인 느낌보다는 그것의 사실관계부터 살피는 버릇이 있으며”라든지, “고전문학 연구자들은 사건의 원류를 거슬러 올라가는 것을 중시하고 특정 자료에서 보이는 것 외에 함부로 추정을 하지 않으며”라든지 하는 말을 내가 책에 써 놓는다면 독자는 어떤 반응일까?사실 잘 모르겠다. 나 스스로도 어색하고 부자연스러운 걸 보니 말이다. 어쩌면 독자들이 “고전문학 연구자만 그런 것은 아니거든!”이라고 하면서 콧방귀를 뀔지도 모르겠다.
물론 이는 지향하는 바일 뿐이며, 모든 고전문학 연구자가 다 그렇다는 것도, 다른 분야의 연구자는 그렇지 않다는 의미도 아니다. 하지만 각 분야의 연구자 모두 그 분야의 연구 방식에 맞춰 훈련을 받는 것은 사실이다. 각 분야의 연구방법의 특징을 각자 모두 반복해서 이야기하고 강조하고, 뒤에서 정말 그 원칙과 방법에 근거해서 멋진 연구를 수행할 수 있다면 해당 분야의 연구와 연구결과의 전파에 매우 효과적일 수도 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이 원칙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계속 독려할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의 콧방귀에 날려가지 않으려면 말이다.
개인적으로 볼 때 《알고 있다는 착각》을 읽은 것은 꽤 소득이 있었던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일단 책 자체가 어렵지 않았고 비교적 흥미롭게 읽혔으며, 그 속에서 얻은 지식이 있었고, 깨달음도 몇 가지 있었다. 아래 내가 얻은 것들을 정리해 보고자 한다.
흥미로웠던 점
내가 연구하는 고전문학은 기본적으로 ‘내’가 끼어들 틈이 없다. 나와 연구대상과의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항상 자료에 근거해서 말을 해야 하고 근거없는 영감이나 깨달음 같은 것에 함부로 기대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 또 해당 분야에서의 나의 기본기가 연구대상보다 턱없이 약하다는 것을 수시로 의식해야 되기 때문에 항상 동시대 사람 또는 후세 사람들의 기록과 평가를 참조하면서 헛소리를 치지 않도록 경계해야 한다. 나의 판단은 항상 틀릴 수 있으며, 아는 것보다 모르는 것이 더 많기 때문에 내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없이 논리를 만들어 가는 것은 위험하다. 다른 분야가 그렇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비교적 개인적인 깨달음을 중시하는 문학의 영역에서 볼 때는 조금 이질적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알고 있다는 착각은 달랐다. 이 책은 항상 자신을 연구 속에 끌어들이며, 자신의 이야기와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로 글을 끌고 나간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서전이나 소설 비슷하게 이야기를 풀어 나가다가 적절한 때에 이르러 논의나 분석을 진행하는 식이다. 저자는 이 책이 본인의 이야기로 시작해서 본인의 이야기로 끝맺지만, 본인의 회고록이 아니며 이는 인류학자가 무슨 일을 하는지 소개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본인이 책 속에서 사건을 끌고 나가며 사건을 바라보는 시야와 해결 방법을 자연히 알 수 있게 한다. 이런 글쓰기가 가독성을 높이고 진입 장벽을 낮춰서 저자의 분석을 독자에게 납득시키는 데 도움이 됨은 물론이다.
2. 얻은 지식들
1) 인류학의 핵심 원리
첫 번째 핵심 원리: 전 지구적 전염병 시대에 이방인과 다양한 가치를 이해하는 사고방식을 길러야 한다는 점이다. 두 번째 핵심 원리: 다른 사람의 관점이 아무리 ‘낯설어(이상해)’ 보여도 경청할 줄 알아야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한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을 키울 수 있을 뿐 아니라 자기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세 번째 핵심 원리: 낯섦과 낯익음이라는 개념을 수용하면 남들과 우리 자신의 맹점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 결국 본인의 관습에 매몰되지 말고 열린 시각으로 자신과 세상을 보아야 한다는 말이 아닌가 싶다. 다시 말하면 '꼰대'가 되지 말고 비교적 유연한 사유방식을 견지하라는 말과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2) 인류학의 유래
'인류학'이라는 말은 '인간 연구'를 뜻하는 그리스어 '안트로포스'에서 유래했다. 20세기에 지적 혁명이 일어나면서 인류학의 기반을 다졌다. 그리고 인류학은 기업의 회의실과 의회, 학교, 언론, 법정에서 벌어진 시민의 가치관과 관련된 21세기의 주요 논쟁에 대해 이론적 근거를 제공했다. 초기 인류학자들은 비서구 사회를 연구했다. 인류 학자들은 서구 문화를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경제학자와 지리학자와 사회학자가 지배하는 영역으로 진입했다. 그래서 이들 학문과 경쟁해야 할까, 협력해야 할까? 인류학자들이 이 질문의 답을 찾는 과정에서 인류학 안에 여러 하위 분야가 출현했다. 경제인류학, 페미니즘 인류학, 의료인류학, 법인류학, 디지털인류학 등.
3) 조사와 분석의 방식
저자는 “금융인들을 인터뷰하면서 구조화되지 않은 개방형 질문을 던지고, 그들이 내게 해주는 말과 함께 해주지 않는 말에도 주목하려 했다.”고 말했다. 구조화되지 않는 질문이라는 것은, 연구자가 예상된 답안만을 제시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나는 이해했다. 이런 질문은 예상치 못한 다양한 대답을 만나게 함으로써 연구자의 시야를 넓히고 새로운 발견을 얻을 수 있게 할 것이다. 또 자료에 나타나지 않는 것에 주목하는 것, 이것이야말로 매우 중요한 연구방법일 수도 있다.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를 경청할 뿐만 아니라, 무슨 말을 하지 않는지를 살펴보는 것, 이 또한 중요하다.
4) 센스메이킹
책의 해석: 사무실의 직원들(과 다른 모두)이 결정을 내릴 때 모형이나 지침이나 합리적이고 순차적인 논리만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상대하는 다양한 자원에서 집단으로 정보를 끌어낸다는 개념이다.
AI의 해석: 불확실한 상황에서 감지, 해석, 의미 부여를 통해 복잡한 현상을 이해하고 행동 지침을 찾는 인지 및 경영 전략 과정.
크리스티안 마두스베르그가 쓴 《센스메이킹》이란 책의 목차를 보면, 개인이 아니라 문화를 살핀다, 동물원이 아니라 초원으로 간다, 맥락을 통해 의미를 습득한다, 제조가 아니라 창조한다 등등 내용이 들어있다. 결국, 센스메이킹이란 고정된 틀을 부셔버리고 자유롭고 널린 시각에서 문제를 본다는 의미가 아닐까 싶다.
5) 아비투스
개인의 취향은 배경과 환경, 가치관, 분위기, 종교 사상, 권력이나 계층과 같은 사회문화적 환경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혹은 그런 것을 모두 포괄하는 용어. 가장 상위의 개념인 권력이 아비투스의 절정에 해당된다.
=> 그러니까 센스메이킹이란 아비투스를 깨는 것이 아닐까?
좀 부끄럽고 웃긴 에피소드를 하나 적자면, 대학원 시절 수업 시간에 처음 ‘아비투스’라는 용어를 듣고 메모한 적이 있다. 4자성어라고 생각해서 그 한자가 뭔지를 열심히 생각하고 뒤져 보았으나 찾지 못했다. 나중에 그 얘기를 했더니 친구들이 폭소를 터뜨렸다. 하지만 한문학 수업 시간에 4자성어를 닮은 영어 용어가 튀어나올 줄은 몰랐다는 게 내 솔직한 마음이다.
3. 깨달음
이 책의 제목이 《알고 있다는 착각》인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서 말하는 ‘알고 있다는 착각’은 무엇을 가리키는가? 아마도 저자가 제2장에서 이야기한, “우리가 사는 방식을 ‘정상’으로 여기고 다른 방식은 모두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것” 즉 저자가 말한 “인간의 본성”을 말하는 것 같다. 세상을 다른 사람의 눈으로 보고 자신을 더 객관적으로 돌아보면 위험과 기회를 포착할 수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즉 우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고정관념을 가지고 세상을 볼 때, 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종 권력과 권위에 기대어 세상을 볼 때 많은 것을 놓치게 된다. 경청이야말로, 질문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탐구일지도 모른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의 “현명한 사람은 정답을 말하지 않고 올바른 질문을 던진다.”는 말을 인용했다. 바야흐로 인공지능의 시대이다. 어떤 전문가들은 우리에게 이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은 중요하지 않다고까지 말한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질문하는 능력이라면서. 이 말을 주워듣고 외우자 누군가 말했다. “질문하는 능력은 옛날부터 중요했어.” 그렇다. 뭔가를 궁금해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탐구하는 것은 옛날부터 위인들이 해왔던 일이었다.
그리고 나이를 먹어가고 아는 것은 많아지고 있지만 기력도 호기심도 줄어들고 있는 지금, 알고 있는 것에 갇히고 함몰되지 않는 것, 모르는 것에 더 귀를 기울이고 새로운 질문을 던지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우리가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