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 반오이디푸스>, AI협동작업, 2026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참으로 쉽고 어려운 일이다.

나는 사랑에 빠지기 매우 쉬운 체질이다.
사람들의 우수함이 너무나도 잘 보이기에 한두 가지 좋은 점만 보여도 이를 수십 배, 수백 배 확대해 보는경향이 있다.
따라서 나는 인간이 갖출 수 있는 좋은 성품에 대한 동경을 애정의 감각과 동일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바로 그렇기 때문에, 또 다른 의미에서 나는 사랑에 빠지기 매우 쉽지 않은 체질이다.
내가 동경해 온 그 우수한 성품들이 균열을 보이거나 지속적이지 못할 때 내가 느끼는 애정도 저하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어느 날, 나는 드디어 깨닫게 되었다. 한 사람에 대한 사랑은 그와 함께하든 아니든 여전히 지속될 수 있다는 것을.

나는 항상 연인에게 사적인 욕망을 투사하여 상대방이 나의 기준에 부합하는 인간이 되기를 바랐다. 그 기대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상대방이 나를 충분히 사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원망하거나, 더 나아가 자주 헤어짐의 발단이 되기도 했다.

하지만 이것이 어떻게 사랑인가?
오히려 이것이야말로 그 유명한 가스라이팅의 전형적인 패턴이 아니었던가?

실제로 사랑은 가스라이팅과 완전히 상극인 것이다.
가스라이팅은 사랑이 아닌 소유와 통제의 범주에 속한다.

이러한 구조는 자주 불안의 종결을 위해 절대적 통제권을 요구한다.
취약한 주체성을 지키기 위해 이의 제기를 배척한다.
자존감의 결핍을 일편단심에 대한 강박으로 채우려 하고, 절대적 복종으로 안전감을 취득하려 한다.

따라서 우리는 사랑이 없는 땅에서 사랑을 찾고 있다.

나는 항상 자유와 독립성을 강조해 왔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가부장주의적 사유에 철저하게 귀속되어 있고 이에 동조하고 있었음을 확인하였다.

정신분석학의 시선으로 볼 때,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심층적 사회구조를 분석하는 과정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소소한 증후들의 이면을 샅샅이 드러낸다.

만일 사랑을 프로이트의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식 심리적 결핍의 보완 형태로 해석한다면, 사랑하는 타자는 어느 순간 나의 결핍을 충족시켜야 하는 대상으로 변한다. 그 순간 사랑은 타자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결핍을 채우기 위해 타자에게 특정한 역할을 요구하는 관계로 변질될 수 있다. 이러한 구조는 가스라이팅을 위한 온상으로 악용되기 십상이다.

반면, 타자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으면서도 자아의 새로운 발견을 촉발하게 해주는 사랑은 ‘누가 누굴 위하여’라는 희생을 강요하지 않는다.
이러한 사랑을 경험할 수 있고, 자신을 온전히 내어 줌으로써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이미 그만큼 괜찮은 인생을 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랑받음으로써 나의 결핍을 없애려는 것이 아니라, 서로 결핍을 가진 채로도 각자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을 때 비로소 사랑은 소유와 통제의 관계에서 벗어날 수 있다.

나는 이제 나의 결핍을 채워줄 대상을 찾는 대신,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의 욕망을 넘어 서로의 자유를 지켜주는 사랑을 선택하고 싶다.

연재중(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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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ean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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