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시작한 "육아"라는 일은 트레이닝은커녕 이력서도 자격증도 요구하지 않았다. 그냥 나는 그렇게 "엄마"가 되었고, 어찌하다 보니 육아라는 "장기 프로젝트"의 총괄 "담당자"이자 "실무자"였다. 

신생아일 때 24시간 안고 키우던 일이 어제 같은데, 딸아이는 어느덧 유치원생이 되었고 친구들과 노는 것이 즐거운 나이가 되었다. 그동안 내가 겪은 육아라는 일은 직장에서 다뤘던 그 어떤 프로젝트보다 계획적이면서도 즉흥적이어야 했고, 이성과 감성이 잘 어우러져야 가능한 일이었다. 

아이가 혹시 천사 같기만 한가? 그렇다면 당신은 잘 때만 아이와 함께 했을 확률이 높다. 초보 엄마에게 어쩌면 토들러(2~6세 정도의 아이를 일컫는 말)를 키운다는 건 난감한 상황들의 연속을 의미할지도 모른다. 우리말에서는 미운 네 살이라고 하고 영어에서는 terrible two라고 하지 않는가. 한국 나이 4세가 만으로 두 살인 것을 감안하면 어쩌면 "밉게 노는"건 토들러들의 공통적인 발달단계라고 보는 게 맞을지도 모른다. 가끔씩 아이들은 엄마의 인내심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테스트" 하는 특정된 행동들을 한다. 도전이라고 해야 할지 도발이라고 해야 할지 엄마로서는 답답할 때도 많고 속 터질 때도 있고 화가 치밀어 오를 때도 적지 않다.  오죽하면 하루 종일 아이들과 있어도 화를 한번 안내는 유치원 선생님이라도 퇴근하여 집에 가면 자신의 아이한테는 화를 내게 된다고 할까. 

직장에서도 일 자체보다는 인간관계가 더 힘들다고 직장인들은 말한다. 육아도 마찬가지였다. 먹이고 재우는 일은 상대적으로 쉬웠다. 힘든 건 역시 "관계"였다. 육아를 하면서 나 스스로에게 가장 많이 던졌던 질문이 "이런 상황에서는 엄마로서 도대체 어떻게 하는 것이 맞는 걸까?" 였던 것 같다. 정답을 찾기란 쉽지 않았다. 정해진 수학공식처럼 명쾌한 답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선배"의 조언을 구하려고 해도, 아이마다 다르고 특별하다는 것과 아이는 엄마가 가장 잘 안다는 전제를 깔면, 결국 "그래서?"라는 원점으로 돌아오는 느낌이었다. 답을 찾으려고 육아도서를 찾아 읽고, 실전을 하면서 애랑 부딪히고 나 자신과 부딪히고, 반성하고 또 시도해보고 하는 일을 나는 반복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사소한 감정 하나하나를 느끼고 어른들의 눈빛 하나에, 말 한마디에도 반응을 한다. 가끔은, 어른들만 모를 뿐이다.  내가 낳은 딸이긴 하지만, 나와는 다른 독립적인 인격체가, 나의 행동 하나에 말 한마디에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영향을 받는다고 생각을 하면, 엄마로서의 나는 늘 깨어있어야 했다. 스스로 토닥이는 일을 반복하지 않으면, 버거워서 견딜 수 없는 무게감이었다. 회사의 프로젝트는 망하면 기껏해야 금전적인 손실이거나 잘리면 그만일 테지만, 육아라는 "프로젝트"는 망하면 안 되는 일이었다. 

내가 경험한 육아라는 "일"은 행복할 때는 시간이 멈췄으면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 순간이 소중하다가도, 힘든 순간들이 어김없이 찾아왔다. 그건 꼭 마치 끊임없이 관문을 통과해야 하는, 그렇다고 힘들다고 중도에 포기할 수도 없는, 반드시 버티고 살아남아야 하는 서바이벌 게임 같았다. 정말 게임이었다면 공략이라도 찾아볼 수 있었으련만…

육아를 하면서 겪는 복잡 미묘한 감정들을 타인에게 정확하게 전달하고, 공감을 얻어내기란 쉽지 않았다. 남편도 예외는 아니었다. 남편은 그 나름대로의 직장에서의 고민이 있었고 하루하루가 나 못지않게 치열했다. 무작정 내 힘든 얘기만 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가끔씩 정말 버거울 때면 그런 생각도 들었다. 이렇게 힘들면서까지 육아라는 일을 해야 하나. 혹시 육아라는 일은 신이 인간에게 준 벌이 아닐까. 육아가 축복이라는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버티기 힘든 순간까지도 축복이었음을 깨닫는데 는 시간이 꽤 걸렸다. 

우리는 누구나 나름대로 치열하게 산다. 이 세상이 결코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나만 힘들다고 느끼는 생각이 위험했다. 서로 힘든 것 만 상대방에게 어필을 하다 보면 정작 상대는 내 마음을 모르는 것 같아서 섭섭하기 마련이었다. 지친 하루를 보내고 나면 "나 오늘 정말 힘들었다. 오늘은 정말 긴 하루였다."라는 결론은 쉽게 나와도, "어쩌면 상대방도 나처럼 힘들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도출 하기에는 디자인상 오류가 존재하는 것 같았다. 그런 기대는 자아 중심적인 인간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서로의 위로와 공감을 그렇게 원하면서도, "너도 나 못지않게 힘들었겠구나"라는 한마디를 그렇게 아껴둔다.

인간은 어쩌면 "나"라는 소용돌이에서 벗어나기 힘든 존재일지도 모른다. 아이를 키워보면 "나"로 꽉 차있는 그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 좀 더 직관적으로 느낄 수 있다. 삐뽀를 좋아하는 네 살 아이가 아빠가 다쳐서 구급차가 왔는데, 삐뽀가 왔다고 그렇게 좋아하더라는 친구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네 살이 된 아이한테 도덕적인 비난은 적합하지 않다. 그 아이의 세상에서는 "아빠가 다쳤구나", "그래서 구급차가 왔구나", "아빠가 빨리 병원에 가야 하는 위급한 상황이구나", "아빠가 걱정된다"라는 논리적인 추리를 할 만큼 대뇌가 발달되지 못했을 뿐이다. 그 아이의 세상에선 삐뽀삐뽀 소리를 내면서 다니는 구급차가 정말 멋졌을 뿐이고, 그날에는 운 좋게 구급차가 우리 집까지 와서 내가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그냥 신나고 좋았을 뿐이었다. 

가끔은 "나"로 가득 차 있는 어른들의 시각도 네 살 아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해본다. 아이가 커서 어른이 된다는 것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공감능력도 꼭 같이 커 간다는 보장은 없다. 타인의 아픔에 잘 공감하고 배려하는, 괜찮은 어른으로 크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서른 즈음되고 나니 타인의 공감을 얻으려고 하는 것보다, 스스로 내 마음을 공감해주고 다독여 주는 일이 훨씬 더 쉬움을 나는 알게 되었다. 나 스스로에게 리액션도 해주고, 셀프 토닥도 해주고 쓰담쓰담도 해주고 말이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셀프 공감과 위로는 치열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처방 같은 것이라고 할까. 그러고 나니 신기하게도 상대방이 힘든 것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고, 그것은 지친 두 인간이 서로 기댈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엄마로서 이 난감한 상황에서 어떻게 해야 할까?"를 고민하던 내가 그동안 겪었던 감정들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많은 것들이 뒤섞여 있었다. 이 상황이 타인에게 민폐가 되는 것 같아서 당황하고, 불안하고, 미안하고, 창피하고, 그래서 화도 나고, 다칠 아이의 마음을 생각하면 속상하기도 하고, 안쓰럽고… 그래서 더 화가 나고…

울고 있는 아이를 다그치기도 해 보고, 꾸짖기도 하고, 어떻게든 그 상황을 통제하려고 큰 소리를 질러보기도 하고 화를 내보기도 했지만, 적어도 내 아이를 빨리 진정시키는 데 이것보다 효과적인 건 없었다. 그것은 아이를 꼭 안아주면서 어느 정도 진정을 하면 그 마음을 거울로 비춰주듯이 그대로 읽어주는 일이었다.

-이걸 하고 싶었는데 못해서 많이 속상했구나. 대신 이걸 해보는 건 어때?

-넘어져서 크게 다치지는 않았지만 많이  놀랬구나. 괜찮아. 놀면서 그럴 수도 있어.

-친구가 네가 놀던 것을 허락 없이 가져가서 많이 화가 났구나.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쩌면 아이는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엄마보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엄마가 지켜봐 주는 것이 필요했을 뿐이다. 아이의 감정을 읽어주는 일이 처음에는 너무 생소했고 힘들었고, 지금도 힘들지만 (아이를 다그치고 화내는 일이 훨씬 더 쉽다.)  결국 그건 내 마음을 달래주는 일이었고, 당황하고, 속상하고, 화가 난 내 마음속의 아이를 달래주는 일이었다. 

아이의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주는 일은, 못난 내 모습을 그대로 받아주는 일이었고, 育儿는 育己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아이와 나는 함께 커 가고 있었다. 그렇게 육아라는 일은 나에게 이 세상 그 어떤 일보다 더 큰 축복으로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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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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