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업무상 한달에 한두번은  서류 부치러 우체국에 가야 한다. 매번 갈때마다 꼭 마주하게 되는 풍경이 있다.바로 나이 지긋한 부부가 대도시에 있는 자식들한테 온갖 먹거리들을 캐리어 몇개의 분량으로 부치는 모습이다.

  종류도 다양하다. 김치는 기본이고 데친 나물부터 시작해서 소고기 말린 것,각종 떡,고추장,된장 등등..(내가아는 지인은 심지어 개고기를 한마리 삶아서 진공포장한 후 부쳤다고 한다.)

  엊그저께도 한창 수속하고 있는데 머리가 하얗게 센 조선족 노부부가 건장한 장정 둘이 들어야 할법한 무게의 택배박스를 힘겹게 저울에 올려놓고 있었다.

  노부부가 자리를 뜬후 나는 박스에 테이프를 붙이고있는 직원한테 저들이 부치려는게 뭐냐고 물었다.

  직원이 쌀이라고 알려주었다. 대도시에 있는 자식들한테 부치는거라면서.

  '쌀? 아니 대도시에 쌀이 없을까봐?'

  직원은 모르는 소리 말라고,남방의 쌀이 맛이 없어서 동북의 입쌀을 부치는 사람들이 꽤 많단다.하긴 나도 광주에 있을때 쌀때문에 꽤 고생을 했던 터라 한편으로 이해가 되기는 했다. 그리고 참…부모한테 자식이란 뭔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두분의 연세로 미루어보아 자식들이 족히 4,50대는 됐을텐데 말이다.

  몇년전부터 엄마의 몸상태가 점점 안좋아지는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기운도 없으시고 항상 입맛이 없다고 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식사량도 예전에 비해 확연히 줄었다. 내가 속이 덜컹하여 병원에 가자고 하면 '집에서 먹고 노는데 소화가 되겠니?' 라든지 ' 이젠 늙어서 그렇다.'고 웃으면서 얘기하신다. 그러면 난 또 왜 속상하게 벌써 그러냐고 타박한다.  

  그리고 내가 부모님 곁에 있는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젠 엄마 음식 먹을 날이 점점 줄어들겠구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때 그 시절 어머니들이 다 그랬는지는 몰라도 우리 엄마는 참으로 내 끼니를 정성스레 챙기셨다.내가 외지에서 학교를 다니기 전까지 밖에서 파는 인스턴트 음식을 한번도 사본적이 없다. 엄마는 남들 다 사먹는 김치나 밑반찬도 안사신다. 직장인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도시락 한번 안 들려 보내고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챙기셨다. 막말로 전쟁이 터져도 우리 집 냉장고에 있는 음식들로 반년은 버틸수 있다. 내가 그렇게 나이가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어제 위챗 방에 올라온 나물들이 낯설지가 않은 것은 그 중 대부분의 나물들이 다 우리집 냉장고 냉동실에 고이 모셔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냉장고에 있는 것들중 90퍼센트는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이다.그것도 손이 많이 가는 것만 골라서.(참 불효막심한 딸이다 ㅠㅠ)

  엄마의 건강이 안 좋아지기 시작하면서부터 나는 어차피 뭘 잔뜩 해봐야 나만 먹으니까 힘들게 음식 만들지 말고 그냥 밖에서 사다 먹든지 배달시켜 먹든지 하자고 설득했다.하지만 그럴때마다 엄마는 그러면 몸이 쓰게 되겠냐면서 부득부득 손수 음식을 만들곤 하셨다.보다 못해서 '내가 할께.나도 할줄 알어!'라고 하면 '니가 한걸 누가 먹냐?'고 하신다.(—.—)

  엄마의 고집을 꺾을 길이 없어 '계속 이러면 나 독립할거야!'라고 큰소리쳤지만 내가 아는 엄마는 이틀의 한번 꼴로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내 자취방에 들이닥칠 분이라 결과적으로는 엄마를 더 힘들게 하는 꼴이니 아무런 의미가 없다.

  어느날은 내가 하도 골이 나 있으니 엄마가 '효도하고 싶으면 빨리 결혼해서 손주나 안겨줘.'라고 한동안 잠잠하던 레파토리를 또 꺼내셨다. 

 '엄마,솔직하게 얘기해봐.내가 결혼하고 애 낳으면 엄마 음식 싸오는거 안 할것 같애?'

 '어이구,손주까지 있는데 냉장고에 있는거 다 털어가야지!'

(—.—’’’)

  참,오늘도 엄마가 해주신 음식을 맛있게 먹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은 또 저릿해난다….

'

이 글을 공유하기:

소빈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좋아요 좋아요
9
좋아요
오~ 오~
0
오~
토닥토닥 토닥토닥
0
토닥토닥

댓글 남기기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