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이 많은데 좀처럼 시작하기가 어렵다.

나는 실행에 앞서 계획을 세우는 습관이 있다.

계획표는 보통 내가 현실에서 실행하기 어려운 일과를 짧은 시간 안에 시뮬레이션으로 실현 해주는 도구다. 열심히 계획표를 짜고나면 한동안 뿌듯하고 마음이 든든하다. 계획표에서 나의 이상이 투영된다. 그것은 규칙적이고 효율적이며 시간을 분 단위로 아껴 쓸 줄 아는 참다운 나의 모습이다. 

현실은 과연 어떠할까?

지각(迟到)은 나의 일상이고, 산만한 주의력은 나의 특성이다. 버거운 과제를 미루는 일은 필수적인 루틴이고, 무미건조한 배움 속에서는 자주 호흡이 딸린다. 

요즘 말로는 전형적인 ADHD 환자다.

그런내가 편집증적인 계획표를 짜고 있다는 것은 하나의 결핍을 채우려는 반작용으로도 볼 수 있겠다.

내가 어렸을 때, 부모님은 계획표만 짜고 있는 나의 모습을 하도 많이 봐서 나의 계획표에 대한 신뢰를 잃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단 하루, 아니 한시간도 그 현란한 계획표를 온전하게 실현한적이 없으니! 

그래서 내가 그림에 마음을 기울일 수 밖에 없는 듯하다. 유독 그림 그릴 때에만 시간이라는 틀 속에서 자유로워지기 때문이다. 

자, 이제부터 본론으로 들어간다.

그렇다면 계획표는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지키지도 않을 계획표를 왜 끊임없이 작성하는 것일까?

그것은 내가 세계를 이해하는 시간관과 밀접히 연관된다. 

나에게 계획표는 하나의 특정한 지표이다. 이 지표 속에는 내가 해야하는 일들과 그것을 완성하는 데에 필요한 기간이 확정되어 있다. 나는 규정된 시간과 기간을 미루거나 지연시키면서 일종의 해방의 쾌감을 느낀다. 하지만 계획표를 끊임 없이 작성하는 나의 반복행위는 해방의 느낌만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다. 계획표는 단기적으로 나의 길을 안내해주는 시간지도(时间地图)이기도 하다. 나는 모든 게획표 일정을 염두에 두는 동시에 이를 제쳐둔다. 그리고 나의 무의식에서 이 시간에 관한 지각들을 맏겨 둔다. 그 결과로 나는 자주 이 빡센 계획표보다 더 효율적으로 나의 목표에 달성하게 된다. 그러므로 나는 계획표에 작성된 기계적시간을 파괴하는 동시에 그것을 초월하는 나만의 자율적인 시간성(효율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보다 계획표가 나에게 주는 의미가 큰 것 같다.)

때론 나는 이런 말도안되는 상상을 한다: 혹시 내가 항상 지각을 하는 것 또한 '기계적 시간'에 대한 반항적인 태도가 아닐까?

뭐 그럴 뜻한 핑계로 보이기도 하다. 

금방 위에서 내가 자가진단으로 작성했더 ADHD 증상들:

"지각은 나의 일상이고, 산만한 주의력은 나의 특성이다. 버거운 과제를 미루는 일은 필수적인 루틴이고, 무미건조한 배움 속에서는 자주 호흡이 딸린다. "

어쩌면 이러한 특징들은 모두 '기계적 시간(효율성)' 나아가 '규준화된 사회적 질서'에서 배제되거나 극복해야 할 '못된 습관'들이다.

하지만 정작 위대한 창작자들이 이러한 '질환'의 소유자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에 사람들은 이들을 되려 칭송하게 된다. 그것은 더이상 '못된 습관'이 아닌 거장이 되기 위한 '필수 조건'으로 간주되는 것이다. 

어쩌다 보니 또 이렇게 거창하게 나의 拖延症에 대한 변론을 쓰게 됐구나. 

나는 나의 '못된 습관'들을 이렇게라도 달래며, 원기 회복을 하고 있는 듯 하다.

계획표를 짜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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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jean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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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계획을 세우는 습관, 이 자체 만으로도 좋은 습관이라 주장하고 싶습니다.
    ㅎㅎㅎ 저 역시 갖고 있는 습관이니까 (사심 충만)

    계획표를 시간지도라 표현했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 위에 표기되지 않은 시공간을 탐구하면서 초월, 반항, 나중에는 살짝의 해방감을 느끼는 것이 아닐가 라는 생각도 듭니다.

    계획표를 작성하는 나는 최상 컨디션을 전제로 나에게 목표와 틀을 짜주는데,
    계획표를 실천하는 나는 들쭉날쭉한 컨디션을 장착한 일반 인간이다 보니,
    완성하지 못하는 것이 극히 자연스럽고 정상이라 생각 합니다.

    ㅋㅋㅋ 어쩌다 보니 지니의 글 밑에 댓글창이 저의 글쓰기가 된 듯한 기분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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