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투르누스와 크리스마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든 기억이 사라질 쯔음

눈을 뜨게 되었다.

30년이라는 시간은 마치 꿈 속 전생의 기억과 같이

명석하게 해명되어

하나의 거대 루프망 형태로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다.

우리는 무와 유 사이에 존재하는가?

아니면 무와 유의 경계를 지어가면서 삶을 긍정하려 하는가?

선에 대한 강한 의지는

그것을 실험하는 거대 악을 불러온다.

조금이라도 자신의 올바름에 대해 확신을 갖고 떠들다보면

바로 그 확신을 산산조각 낼 만큼의 교훈의 폭풍이 휘몰아친다.

따라서 선한 사람이 때론 악을 저지르는 법이다.

이것은 나를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된다.

결국 '가장 악한 짓을 저지른 자'라고 한들

애초에는 '잘하고 싶은 마음'이 자리잡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세속의 이치는 괘락과 욕망에 취약하여

결국 중독성으로 우리자신을 손쉽게 파괴한다.

우리 스스로 우리 자신을 그렇게 말이다.

사투르누스가 세속에서 막강한 이유는 

손에 피한방울 묻히지 않고서도

당신을 자신의 욕망에 중독하게 만들고 

진정 사랑하는 자를 적으로 삼도록 의심의 씨앗을 심어주며

그대의 순수했던 마음까지 기만하여 교묘하게 통제하고 

결국 자기파괴에 이르게 만든다는 점이다.

따라서 사투르누스는 자주 인간의 통제불능한 광기를 가리킨다.

허나 한때 사투르누스는 농경의 신으로 부(富)의 상징이기도 하였다. 

크리스마스에서 선물을 받는 관습 또한 사투르누스를 기리는 축제에서 비롯되었다. 

이 날 로마 사람들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거리에 나와 축제를 즐겼다고 한다. 

그 만큼 사투르누스의 "악"(광기, 욕망, 쾌락, 중독, 죽음)의 이면엔 세속의 "선"(생명, 자유, 해방, 평등, 감성, 인간성) 이 함께 하고 있다.

예수의 탄생일이 사투르누스 축제 기간 이듣날로 전해진 것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그는 사투르누스적인 인간들에게 무엇을 알리러 왔을까?

그는 진정 자신의 죽음으로 인간이 구원될 수 있다고 믿었단 말인가?

아니면 오로지

선의 순수성을 지킨 만큼, 

그 만큼 거대한 고난과 재앙이 잇따르게 된다는 사실만을 보여주러 왔는가?

우리 개개인들에게 아직도 신성神性을 붙잡을 수 있는 의지와 능력(믿음)이 남아 있단 말인가?

이럼에도 불구하고.


"道生一, 一生二, 二生三, 三生萬物. (도생일, 일생이, 이생삼, 삼생만물)

萬物負陰而抱陽, 沖氣以爲和. (만물부음이포양, 충기이위화)

人之所惡, 唯孤寡不穀, 而王公以爲稱. (인지소악, 유고과불곡, 이왕공이위칭)

故物或損之而益, 或益之而損. (고물혹손지이익, 혹익지이손) 

人之所敎, 我亦敎之. (인지소교, 아역교지)

强染者不得其死, 吾將以爲敎父. (강염자불득기사, 오장이위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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