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라는 사치

사치를 누리기를 다들 좋아한다만...


오늘 아침 우리나무에 올라온 글들을 읽으면서 문득 든 생각이 있다. 이렇게 무언가 글로 쓰고 있는 행위가 참대곰처럼 희한한 행위가 되어 있는 현실에 대한 반작용 적인 생각. 글쓰기가 사라진 적은 없었다. 앞으로도 사라지지 않을 거고. 허나 글 쓰는 인구는 적어지겠지. 반드시. 

뒤돌아 보니 글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사치스런 일이 되어 있는지. 누가 떠밀었는지도 모르게 말이다. 글쓰기는 시간이 든다. 정력이 든다. 뇌세포들이 죽어 나간다. 다른 재미있는/자극적인 것들을 할 기회가 준다, 뇌세포가 헬스장 가지 않아도 되는 그런. 더욱 치명적인 것은, 쓴다고 씌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 우리나무 나무작가들이 여럿 글이나 댓글에서 고백했 듯, 원고함에서 시체놀이 하는 글들이 쌓여 있다. 위에 말한 모든 것을 몰부어도 글이 나오지 않을 수 있다. 성취감이 없다. 낑낑거리며 겨우 한 편을 짜냈다고 하자. 그 글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다. 독자의 반응이 미지근할 수도 있다. 다시금 성취감이 없다. 가뭄에 콩 나듯 쓴 자도 읽은 자도 나름 만족감이 드는 글이 나온다면. 비로소 짜릿함이 있다. 이리 보면 글쓰기는 사치가 맞는 듯하다. 현대인의 사유로, 투자 대비 산출이 너무 떨어지지 않는가. 

글쓰기는 일정 정도의 길이를 보장해서 보여주는 나의 미적거림이기도 하다. 쪽팔림을 길게 공개하는 일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반대로 트위터가 140자의 글자수 제한을 설정했던 것을 상징적으로, 쇼츠 短视频이 유행하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이미 짧은 것에 익숙해져 있는 21세기의 삶. 그런 가운데 글이라고 불릴만한 것들은 이미 길이에서부터가 보수다. 옛것이고 고물이다. 그런 카테고리에 빠지기 쉽다. 사고의 파장이 이미 짧아져 있는데, 긴 호흡으로 글을 읽게 만들 수 있을까. 그걸 이루는 당신은, 가만히 제자리걸음만 해도 시대 역류의 아이콘인 셈이다. 그러니 사치가 아니고 무엇인가. 

짧은 문자들이 빗발치는 중에서는, 문맥이 거세되어 있다. 왜 이런 글이 나왔는지 관심이 없다. 한 구절 싹둑 베어지는 소리. 네모로 찰칵 캡쳐되는 아우성들. 자기 입맛의 한 토막만 뎅강 짤라서 퍼나르고 말장난과 말싸움을 하는 속에 에너지가 소모된다. 그게 속 편한 문자의 소비다. 과연 글쓰기는 자신의 시장을 주장할 수 있을까. 소비 속에 시장이란 라벨을 붙힌 채로 휘말려 들고는 있는데. 과연 이대로가 좋을까. 

글쓰기가, 혹은 글읽기가 생필품이라 얘기하는 건 오버. 그렇다고 사치품이라 하기에도 애매한데. 뭔가 품목이라 이름하는 자체가 짜놓은 판에 말리는 느낌이다. 길 잃은 어린 양. 그렇다면 나는 왜 글을 쓰려고 하는가. 그냥. 쓰고 싶어서. 그게 답인 것 같다. 나의 흔적을 남기고픈 욕구. 내 말을 들어줬으면 하는 욕구. 내 말에 대꾸해 줬으면 하는 욕구. 인간 본능의 어느 중요한 단면. 그러니 나 말고도 분명 글을 쓰고 싶고 쓰고 있고 계속해서 써나갈 무리들이 존재할 터. 

글쓰기가 널리 인정받는 것은 사치일 수 있다. 그건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다. 글쓰기 자체는 사치가 아니다. 본능적 욕구 중의 하나일 뿐이다. 즐거운 일을 즐겁게 하고픈 것이다. 엄마가 해준 맛난 요리를 먹고 싶은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지 않을까 한다. 

백보 물러서서, 사치면 또 어떤가 뭐. 사치 좀 누려들 보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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