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고함의 시체를 다시 꺼내며
2024년 2월, 평강 님의 「글쓰기라는 사치」를 읽고 원고함에 누워 있던 글 하나를 그대로 꺼내 보인 적이 있다. 「죽은 식물에 물을 주지 마라」라는 이름으로 올렸지만, 본문 제목은 "미정"이던 10%짜리 글이었다.
첫줄은 이랬다.
죽은 식물에 물을 주지 마라. …… …… 대신 …… ……
"대신" 다음은 비어 있었다. 무엇을 대신해야 하는지, 그때의 나는 몰랐던것 같다.
2년 반이 지났다. 2026년 가을, 그 시체를 다시 열어 본다. 시체는 그대로인데 시체를 둘러싼 것들은 조금 달라졌다. 어쩌면 달라진건 나일지도 모른다.
그때 들레 님은 댓글에 '만' 한글자를 고쳐 주었고, 평강 님은 봄바람이 불면 풀이 다시 돋을수도 있다고 했다. 나는 제대로 발행할때 고려해 보겠다고 답했다.
이 글은 그 약속에 대한 늦은 답장이다. 그리고 비어 있던 "대신"을 채워 보려는 시도다.
그 글은 그때 모습 그대로 두고, 답장은 이렇게 따로 쓴다. 먼저 읽고 오면 맥락이 더 잘 보이겠지만, 이 글만 읽어도 따라올수 있게 써보려 한다.
그때의 진단은 틀리지 않았다
먼저 말해 두고 싶다. 2024년의 진단은 지금 다시 읽어도 틀리지 않았다.
「낭만은 이미 죽은지 오래」에도 썼지만, 2023년 가을 4년 반 만에 룡정에 갔을때 룡정2중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친구끼리 중국어로 이야기하는걸 들었다. 내가 다녔던 룡정중학교 교복을 입은 아이들도 마찬가지였다. 학생을 한명도 받지 못했다는 소학교 이야기도 들었다.
우리말을 쓰는 사람은 줄고 있고, 젊은 층에서 우리말로 글을 쓰는 사람은 더 찾기 어렵다. 중어가 대세이고, 중어를 잘해야 잘 살수 있다. 그건 나쁜 일도 아니다. 그냥 그렇게 흘러가는 것이다.
2018년에 우리나무를 시작할때 했던 리서치에서는 "우리에게는 아직 80, 90이 남아 있었다". 거북선은 아니어도, 자유롭게 글을 쓰고 싶은 사람들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여 시작했다.
하지만 막상 문을 열고 보니 조금 달랐다. 80후와, 그와 거의 비슷한 90후는 몇 세대를 통틀어 제일 바쁜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었다. 일하고, 아이 키우고, 자리 잡고, 하루하루를 살아내느라 바빴다. 그런 삶속에서 글쓰기는 어쩌면 사치에 가까운 일이었던것 같다.
"글 써서 뭐 어쩌라고?" 하는 마음도 조금은 있었던것 같다. 무엇보다 글은 돈이 되지 않았다. 같은 시간을 公众号나 抖音 같은 다른 플랫폼에서 보내면 적어도 수익을 낼 가능성은 있었다. 굳이 돈도 안 되는 우리나무에서 글을 쓸 이유가 많지 않았던 거다.
어쩌면 우리나무라는 서비스 자체의 문제였을 수도 있다. 그 부분은 지금도 내가 곱씹는 질문이다.
암튼 내가 생각했던, 어느 위챗그룹에서 보았던 그런 느낌의 8090은 아니었다. 적어도 우리나무가 론칭하기 전과 후의 반응은 달랐다. 문을 열기 전에는 이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말이 많았는데, 막상 열고 나니 직접 와서 글을 쓰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었다.
그래서 2024년의 나는 5년 전에 이걸 알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거라고 썼다.
그 문장은 지우지 않으려 한다. 시장은 여전히 작다. 지금도 그렇다.
그때의 처방: 물을 주지 말고, 떠나라
문제는 진단이 아니라 처방이었다. 다시 읽어 보니 그 시체 안에는 서로 부딪치는 말들이 같이 누워 있었다.
제목은 "죽은 식물에 물을 주지 마라"였는데, 바로 아래에 서시를 인용해 "모든 죽어 가는 것을 사랑해야지"라고 적어 두었다. 한쪽에서는 남은 한 사람까지 돌보며 우리끼리 즐겁게 쓰자고 했고, 다른 쪽에서는 잘 쓰는 사람은 우리나무 같은 곳에서 놀지 말고 떠나라고 했다.
이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은 몇 년 동안 이렇게 흔들렸다.
- 2020년, 「자격이 없는 사람들」: "한 학생에서 10명, 20명, 50명으로!"
- 2023년, 「낭만은 이미 죽은지 오래」: 그 관점을 사과했다. 한 학생이 남더라도 최선을 다하는 게 답이었다고.
- 2024년, 「죽은 식물에 물을 주지 마라」: 50명에서 10명으로, 한 명이 남을 때까지 돌보자. 그런데 잘 쓰는 사람은 떠나라.
나도 내 마음을 정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때 들레 님이 댓글로 한 글자를 보태 주었다. "놀지 말고"를 "에서만 놀지 말고"로 바꾸면 공감이 백 배라고. 자주는 아니어도 여기 와서 힘을 얻고 간다고.
지금 보면 그게 답이었다. 떠나라가 아니라, 여기에만 머물지 말라. 뿌리는 여기 두고 가지는 밖으로 뻗으라는 말이었다.
물을 주지 말자고 써놓고
우습게도, 물을 주지 말자고 써놓은 사람은 그 뒤로 2년 반 동안 계속 물을 주고 있었다.
한때는 정말 문을 닫으려던 때도 있었다. 그때 받은 메시지들이 "그래도 아직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말해 주었고, 조금 다른 방식으로 계속 가 보기로 했다.
- 후원 멤버십을 시작했다. 1차에 25명이 함께했고, 이제 2차로 이어 가고 있다.
- 22명의 작가가 한편씩 이어받아 쓴 릴레이 소설 《离职日记(이직일기)》가 23편으로 완결되었다.
- 23명이 같은 날 한편씩 발표한 함께쓰기 「26개의 키워드」도 있었다.
- 북클럽에서 《알고 있다는 착각》을 함께 읽고, 다국어로 오간 소감을 총결 글로 남겼다.
- 반년의 활동을 돌아보며 상을 나눴다. 다작상은 여니 님, 인기상은 평강 님, 진정성상은 끄적끄적 님. 앞의 두 사람은 2023년과 2024년에 내글 아래 댓글을 남겨 주었던 사람들이다.
수자도 남았다. 작가 550명, 글 3,104편, 126개 나라에서 읽은 누적 조회수 52만여 회.
큰 수자는 아니다. 어느 플랫폼에서는 글 한편이 하루만에 넘기는 수자일수도 있다. 하지만 2023년에 내가 댓글로 "이제 박물관"이라고 불렀던 이 공간에, 그 뒤로도 계속 쌓여 온 수자다.
《离职日记》 마지막 편이 올라온 밤, 위챗 방에 축하 말이 줄줄이 올라왔다. "드디어 끝났슴다", "다음엔 뭐 씀까". 끝났다는 말보다 다음을 묻는 말이 더 많았다. 죽었다고 써놓은 곳에서 사람들이 다음편을 묻고 있었다.
10만이라는 수자
2024년의 그 글은 이 문장에서 끝나 있었다. "10만이라는 수자에 집착하는 이유……"
그 뒤를 왜 쓰지 못했는지 이제는 조금 알것 같다.
UX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나는 늘 "사용자가 있는가"부터 묻는다. 시장이 작게라도 있어야 "더 나은 세상을 만들라"는 말도 할수 있다. 그때의 10만은 그 질문에 대한 증명이었다. 이 일이 의미 있다는 허락, 계속해도 된다는 허락 같은것.
솔직히 말하면 10만은 남들에게 보여줄 수자이기도 했다. 우리나무를 소개할 때마다 "몇명이나 보는데?"라는 질문을 받았고, 나는 늘 수자를 조금 작게 말했다. 10만이 넘는 글이 하나라도 있으면 그 질문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을것 같았다.
그런데 2년 반 동안 내가 본것들은 그런 수자로 잡히지 않았다. 22명이 《离职日记》를 끝까지 이어 쓴 일은 조회수 몇으로 적어야 할까. 다국어로 오간 북클럽 소감들은.
10만은 여전히 좋은 수자다. 다만 이제 나는 그 수자에게 허락을 받지 않아도 된다.
대신
이제 제목과 서시가 왜 하나의 글안에 같이 있었는지 알것 같다. 둘은 다른것을 말하고 있었다.
죽은 식물과 죽어 가는 식물은 다르다.
죽은 것은 보내 주어야 한다. 예전처럼 큰 잡지와 많은 독자가 있던 시절, "50명으로!" 같은 성장의 꿈, 시장이 다시 커질거라는 기대. 그런 낭만은 2023년에 썼듯이 언녕 죽었다. 거기에 물을 주는건 미련이다.
하지만 죽어 가는 것은 아직 살아 있다. 오늘 밤 우리말로 한줄을 써보는 사람, 원고함에 시체 글을 쌓아 두고도 또 쓰는 사람. 그건 사랑해야 할 것이다.
「낭만은 이미 죽은지 오래」에 여니 님이 남긴 댓글이 생각난다. 자기 안에 조금 남았다고 생각했던 낭만이 어느새 식물처럼 자라고 있더라고. 그때는 웃으며 넘겼는데, 지금은 그 말이 더 맞았다고 생각한다.
2024년에 나는 실버스타인을 인용하며 "At least we tried"라고 썼다. 해 봤으니 후회는 없다고.
2026년에는 이렇게 고쳐 쓰고 싶다. We still do.
하여, 비어 있던 그 줄을 이제 채운다.
죽은 식물에 물을 주지 마라. 대신, 아직 살아 있는 것에는 물을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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