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조선족의 민족교육과 언어에 대하여 말들이 많은 시기이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해결할 뾰족한 수가 있는것도 아니다. 물우로든 물밑으로든 이런 저런 생각들이 글과 댓글을 통하여 많이 오고 가고 있을 뿐이다. 지금의 나처럼. 나는 연구원도 아니고 작가도 아니다. 문외한의 입장에서 한번 냉정하게 분석해 보려한다. 많은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대신하여. 물론 나도 자격이 없는 사람들중 한명이니까.

왜 자격이 없는가?

지금은 눈을 씻고 봐도 찾아볼수 없지만 나의 고향에는 이런때가 있었다.

나는 1994년에 룡정실험소학교 1학년에 입학했는데 우리 반에는 학생이 거의 70명이 있었다. 한 학년에는 모두 8개의 반이 있었다. 모든 학년에 8개의 반씩 있었는지는 몰라도 나의 웃학년까지는 그랬었다.  6학년까지 있었으니 정확한 수치는 아니지만 대략적으로 계산해보면 이때 우리 학교에는 약 60 x 8 x 6 = 2880명 있었다. 그리고 이런 조선족 학교가 룡정시에만 3개가 있었다. 그때 당시엔 부모들 모두 실험소학교에 자식들을 붙이려 하다보니 아마 신안소학교과 북신소학교에는 학생이 조금은 적었을거지만 그래도 각각 2000명씩은 되지 않았을가 추측해본다. 3개 소학교를 합치면 6880명이나 된다.

나는 2000년에 룡정중학교 1학년에 입학했는데 우리반에는 학생이 70명 넘게 있었던거 같다. 교탁과 제일 앞줄에 앉은 학생의 책상이 붙어져 있어서, 교단 우로 돌아다녀야 했다. 한 학년에 10개의 반이 있었고 3학년까지 있었으니 우리 학교에는 약 60 x 10 x 3 = 1800명 있었을 것이다. 룡정5중이라는 조선족 초중이 또 하나 있었으니 합치면 3000명은 쉽게 초과했을 것이다.

나는 2003년에 룡정고중 1학년에 입학했는데 우리반에는 학생이 역시나 70명은 되었던거 같다. 한 학년에 10개의 반이 있었고 3학년까지 있었으니 우리 학교에는 약 60 x 10 x 3 = 1800명이 있었다.

여기에 조양천, 개산툰, 로투구 등 룡정시 아래에 속한 진의 중, 소학교들까지 합치면 룡정에는 학생수가 이렇듯 많았다. 중요한건 연변에는 룡정만 있는게 아니다. 연길, 훈춘, 도문, 화룡, 돈화 등 시에 안도, 왕청 등 현까지 합치면 총 얼마나 되였을까? 학생수가 이렇게 많은 시절이 있었다. 운동대회를 하면 운동장이 꽉차던 시절, 저녁에 야시장에 나가면 꽉찬 인파때문에 이동하기 쉽지 않던 시절.

지금은 어떠한가? 이제는 한반에 몇명씩 있고, 한 학년에 몇개의 반급이 있으며, 소학교의 개수는 몇개씩인가? 운동대회를 하는 운동장은 어떠하고 연길시를 제외한 다른 주변 도시들의 불 꺼진 저녁거리는 또 어떠한가? 내가 고향인 룡정에 돌아갈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거리의 불들이 꺼지는 시간은 점점 앞당겨 지는거 같다. 사람이 없으니까, 인구가 줄었으니까.

자치주의 정책, 발전 등 모든것을 떠나서 "학생인구"가 충분해야 민족교육도 논할수 있고, 우리의 언어도 논할수 있는게 아닐까? 연변 각 지역마다 학생이 20년전처럼 많았다면 과연 민족교육에 대한 새로운 정책을 계획할수 있었을까? 연변에 젊은층들이 많고 아직도 조선족이 80%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면 과연 이런 일들이 발생할까?

잘못이라고 할수는 없지만 굳이 학생인구가 줄어든 원인을 찾자면, 바로 우리 세대한테 있다고 본다. 부모들의 소망대로 큰 도시의 대학에 붙고, 그 도시에 남아 취직하고 생활하고 있는 과정에서 그 곳이 우리의 제2의 고향으로 되었기 때문이다. 많은 우리가 이렇게 연변을 벗어난 곳에 정착함으로써 연변에는 젊은층들이 줄고 따라서 학생인구도 많이 줄었다고 본다. 

누구나 줄어드는 인구와 학생수를 모를리 없고 또 그에 따른 영향을 모를리 없건만 그렇다고 하여 선뜻 지금이라도 고향으로 돌아가 조금이나마 공헌을 할수 있는건 아니다.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왜냐하면 고향이 그립고 고향을 위해서 무언가 아낌없이 주고 싶지만, 그래도 황산이 비암산보다는 좋을 것이고, 청도의 푸른 앞바다가 부르하통하보다는 좋을 것이며, 상해에서 한달에 버는 1만원이 연변에서 같은 기간에 벌수 있는 5000원보다는 좋기 때문이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것이기도 한데 고향에는 우리의 동년때의 추억들이 있다면, 제2의 고향에는 우리들의 청춘이 있다. 무언가를 이루려고 치렬하게 살아오고 열심히 분투한 흔적들이 있다.

이렇듯 모순되는 심리를 가진, 타향에서 살면서 쉽게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하지만 또 할 말은 많은, 지금 시대의 주력군인 우리 3,40대가 바로 내가 말하는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다. 또한 연변에는 있지만 아이를 한족학교에 보낸 사람들도 포함하여. 

이 글에서 "자격이 없다"는건 절대 나쁘다는 말이 아니고, 뭘 잘못햇다는 뜻이 아니다. 혹시나 민족교육 정책이 변경되고 우리의 언어가 사라질까봐 조금이나마 걱정을 했었고, 흥분을 했었고, 말 못할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면 그럴 자격이 없지 않을가 하는 나의 관점일 뿐이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많이 고민하고 흥분했었던 나 역시 여기에 포함된다.

자격이 없음에도 뭘 지키려 하는가?

우리 자격이 없는 사람들은 우리 자신한테 이런 질문을 해봐야 된다. 도대체 왜 대부분 타향에서 잘 살면서, 담방 고향에 돌아가 기여를 할것도 아니면서, 떠나온 고향을 걱정하는가? 연변축구도 그렇고, 민족교육도 그렇고, 조선어도 그렇고, 왜 일만 생기면 그때에야 비로소 이래서는 안되고, 저래서는 안되고 하면서 따지는가? 결국엔 또 고향에 있는 사람들한테 화살을 돌리면서 말이다. 

지키려 하는건 좋지만, 지키려 한답시고 이런 일들은 조금 삼가하자. 교육국, 체육국, 등 정부기관에 다니는 사람들을 뭐라뭐라 하는 글과 댓글들은 작성하기전에 입장을 바꾸어서 한번 생각해 보시길 바란다. 이런 사람들은 고향건설을 위하여, 혹은 안정한 직업을 위하여, 혹은 부모옆에서 부모랑 함께 하기 위하여 고향에 남은 사람들이 아닌가? 이유야 어찌됐건 외국과 국내의 더 발달한 도시에 진출할수 있었음에도 하지 않고 고향에 남은 사람들이다. 고향의 조선족 인구와, 젊은 층이라면 학생수에도 보탬이 된 사람들이다. 왜 이런 사람들이 뭐라고 말을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고향을 떠난 자격이 없는 사람들한테서 말이다. 그대들은 타향에서 정부기관이 아닌 기업에서 일하고, 혹은 자영업을 하기에 생각나는대로 실천해볼수 있고 아무말이나 내뱉을수 있지만 이분들은 그러하겠는가? 그대들은 한 기업에서 퇴사하면 다른 기업에 이력서를 넣고 또 취직하면 되지만 누구나 다 그럴수 있는건 아니지 않은가?

그러니 자격이 없는 사람들은 제발 댓글로 이런 사람들을 뭐라 하지 말고, 이런저런 큰소리를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你行你上 不行别哔哔" – You can you up. No can no BB.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우리가 누군가를 得罪해가면서까지 지키려고 하는건 무엇일까?

고향? 제2의 고향도 고향이다.

추억? 다시 더 좋은 것들을 만들면 된다.

언어? 어디서나 마음만 먹으면 한글을 배울수 있다.

민족? 우리가 없어도 한민족은 존재한다.

축구? 연변팀이 없어도 축구계는 잘만 돌아간다.

… 또 뭐가 있을까?

많은 것을 대입하고 거기에 답하고 하면서 얻은 결과, 나의 결론은 이거였다. 정체성!

우리가 지키려고 하는건 우리의 정체성이 아닐까 싶다. 그래서 우리는 중국 내륙에 가서도 “你们是韩国人吗?”하는 질문에 “不是,我们是中国人,延边的。知道延边吗?在东北,吉林省,能看见朝鲜”하면서 열심히 설명도 해주고. 연변축구에는 우리 조선족만의 특색이 있다고 자부심이 있었고, 언어도 위챗의 입력창에서 뜨는 연관 표준어도 아니지만 우리만의 특색이 있다고 일부러 틀리면서까지도 사용하고 있으며, 민족도 조선족만의 특색이 있다고 당당하지 않았던가?

고향을 떠나 살아가는 "자격이 없는" 사람들은 내가 누구인지, 어디서 왔는지, 어떤 말을 하는지 등 그 정체성이 계속 존재해주길 바라지 않을까? 그래서 우리의 뿌리가 있는 연변에서 더 잘 지켜주고 보존해주기 위해 힘써달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닐까?

어떻게 지킬것인가?

작년인가 이런 글과 사진을 본적이 있다.

출처: 흑룡강신문

사진을 보면서 글을 읽노라니 몇번이나 울컥 했었다. 선생님의 사적에 감동받고, 학생의 처지에 울컥하고, "한 학생이 남더라도 최선을 다하자!" 라는 어찌할 방법이 없는 현실에 울컥하고. 그때는 안쓰럽지만 뭐라도 하는 이런 방법이 옳다고 생각했었고 최선이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관점을 바꿀때가 되지 않을가 싶다. "한 학생이 남더라도 최선을 다하자!" 가 아니라, "한 학생에서 10명, 20명, 50명으로!" 라고 말이다. "한 학생이 남더라도 최선을 다하자" 를 말 그대로 분석해보면 약간의 无奈가 들어있다. 그리고 "결국엔 0명이 될텐데, 우리는 그래도 최후의 1인까지 최선을 다했다"라는 위로도 있다. 

누군가에게 기대하면서 우리를 도와달라는 심리로 0명이 될때까지 최선을 다할것이 아니라, 1명에서 10명, 10명에서 20명, 20명에서 50명이 되기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할수 있을까를 고민해야 하는게 맞지 않을까? 지금은 학생수를 대입한 문구지만, 나중에는 연변의 조선족 인구수가 저기에 대입된다고 생각해보자. 

빙천맥주가 하얼빈맥주에 인수될때까지, 연변축구가 여러번의 우여곡절 끝에 결국 사라질때까지, 룡정 사과배 기지 근처에 잇는 汇源果汁공장이 땅만 차지하고 사과배 쥬스를 생산하지 않을 때까지, 우리는 너무나 "…더라도 최선을 다하자. 최선을 다했으니 그것으로 됐다"라는 심리와 관점으로 무얼 해왔던건 아닐까?

지금까지 보고 듣고 느낀걸 종합해보면, 나의 생각으로는 우리의 정체성을 지킬수 있는 방법이 두가지가 있다. 1) 고향에 돌아가서 뭘 하는것과 2) 돌아가지 않고도 뭘 하는것이다. 

첫번째는 우리 2,3,40대 주력군들이 돌아가서 일할수 있는 젊은 회사/기업들이 있어야 한다. 식당, 바, 노래방 등 소비영역의 창업이 아닌 우리만이 할수 있는, 독특한 가치를 창조할수 있는 회사들. 스타트업이라도 좋고 어느 이미 성공한 조선족이 돈과 열정을 가지고 돌아가서 발붙이고 다른 젊은 층을 거느리고 함께 일할수 있는 회사. 더 크게 될 미래를 그릴수 있는, 비전이 있는 회사들 말이다.

하지만 과연 이러한 월급을 많이 주고, 복지가 좋은 기업이 연변에 있다고 해도 돌아갈 사람은 얼마나 될까? 기존의 타지에서 이루어 놓은 성과와 생활을 포기하고 돌아갈 사람이 있을까? 특히 어린 아이들이 있는 부모들은 더더욱 힘들것이다. 일본 한국 등 외국은 먼저 제외하더라도, 북경이나 상해 등 대도시에서 청춘을 바쳐 일한 사람들은 아이들한테 더 좋은 교육자원을 주고 싶어 할것이다. 지금까지 쌓아 놓은걸 포기란 쉽지 않다.

그러므로 첫번째 방안은 실현이 어렵다. 실현 되더라도 천천히 진행될 것이다. 언젠가 젊은이들이 고향으로 돌아가는 붐이 생기고, 이런 젊은이들이 모여서 함께 일할수 있는 회사들을 직접 만들지 않을가 기대해 본다.

두번째 방법은 유대인을 참고하는 것이다. 가정교육을 위주로 하는 탈무드가 큰 역할을 하는것인지 세계 각 곳에 흩어져서 생활하는 유대인들을 보면 정체성이 확실하다. 다른 민족들과 결혼도 하고 미국이나 서방 사회에서 많이 생활하지만 그들의 가치관은 비슷한거 같다. 

탈무드처럼 우리 조선족에게도 우리만의 "성경" – 정체성을 배워줄수 있는 수단과 방법이 있으면 어떠할지. 그게 우리 선조들의 지혜와 지식이 담겨져 있는 책이던, 온라인자료이던, 굳이 연변이 아니더라도 세상 그 어느곳에서도 우리의 문화와 언어를 배울수 있고 역사를 돌아볼수 있는, 그런 가정교육과 온라인교육이 결합한 형태의 무언가를 말이다. 아이들이 그 어떠한 언어로든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먼저 배울수 있게 하는 그런 교육이 있다면 좋지 않을까?

미래학자인 엘빈 토플러가 “21세기 문맹인은 글을 읽고 쓸 줄 모르는 사람이 아니라 배운 것을 잊고 새로운 것을 배울 수 없는 사람들이다”라고 하였다. 우리의 글을 먼저 배우고, 다음 우리의 글로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배우는 이런 순서를 이젠 바꾸어 보면 어떨지? 아이를 조선족 학교에 보내지 않아서 우리글을 몰라도 중국어로, 혹은 일어로, 혹은 영어로 아이들이 편한 언어로 우리 조선족의 정체성을 먼저 배워주는 방법은 어떨까? 꼭 우리의 글을 쓸줄 알고, 읽을 줄 알아야 우리의 문화를 보존하여 가는것일까? 

우리의 고운 글로 멋진 내용을 잘 표현한 수필이, 어느 잇뀨가 연변말 사투리로 더빙하여 만든 短视频보다 조회수가 적게 나올때, 그것도 1/4정도밖에 안나올때 우리는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지금 사람들은 뭘 원하는지. 과연 우리글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얼마나 될지. 우리가 속해 있는 圈子에서 매일 민족교육과 언어를 걱정하는 글들을 읽을수 있지만, 다른 圈子들에서는 과연 몇명이나 이런 문제를 문제라 생각하고 심각하게 생각하는지. 관심이 있기나 한건지.

혹시 우리만 우리글이 좋고 매짜다고 우기는건 아닌지. 과연 남들도 그렇게 생각해주는지. 영어는 왜 우기지 않아도 다 알아서 배우려 하는지. 그건 필요성이 아닐지.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고 많은 사람들이 몰리면, 따라서 좋아지는거는 아닐지. 

잇뀨든 당승이든 우리의 콘텐츠가 먼저 많은 사람들한테 알려지고, 그들로 하여금 보고, 따르고, 팬이 되어 자주 찾게 하는게 우선이 아닐지. 그러다보면 어느샌가 조선족과 조선족 문화에 흥취를 보이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조선어를 배워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연변을 궁금해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우리의 아이들도 우리의 정체성을 배우고 또 우리의 언어로 남들과 교류할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지는건 아닐지.

그러다보면 우리의 정체성도 따라서 보존되어 가지 않을지.

글을 맺으며

한국,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이미 인구감소가 시작되였고 우리는 계획생육정책으로 오래전부터 하나의 아이만 낳아서 키우는데 익숙해졌다. 다시는 우리세대가 학교 다닐때처럼 그렇게 많은 학생을 연변에서 보기는 힘들것이다. 연변의 조선족학교수가 감소되고, 학생수가 감소되고, 조선족인구가 감소되며, 따라서 연변 자치주로써의 그 힘과 역할도 점차 감소할수밖에 없을 것이다. 10만명을 위한 정책과 1만명을 위한 정책 역시도 다를것이고 필요하다면 수정을 맞이해야 될것이다. 

정체성을 보존, 민족과 언어에 대한 자부심, 고향 지킴이 … 모두 다 좋지만, 그전에 개인의 리익도 보장되어야 한다. 물질적으로든 정신적으로든 우리 개개인의 리익이 보장되어야 "1명에서 10명으로, 10명에서 20명으로, 20명에서 50명으로" 되어 우리를 위한 더 좋은 정책을 우리절로 직접 만들수 있다.

그렇다면 어떠한 리익들이 보장되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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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는 범이

UX/UI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느끼는 생각과 경험들을 글로 적습니다. 때로는 주제를 벗어나는 글을 쓰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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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그전에 개인의 리익도 보장되어야 한다…. 진짜 범이님은 생각이나 포부는 여린 감성도 있지만 현실적인 이성도 똑부러지게 있어, 글을 읽다보면 그냥 감정선만 둥둥 뜨는 느낌이 아니라 계획적이고 체계적이고 순서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1. 네, 저도 저의 글이 부족하고, 약간 일방적이라고 생각됩니다. 또한 어느 한 그룹의 사람들을 본의 아니게 모두 “자격”이 없다고 할수도 있는, 위험성이 있는 관점이기도 하고. (글 재주가 좀 더 있으면, 좀 더 나누어서 정리할수도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하지만 저처럼 한번이라도 생각해본 분들도 있을거라고 생각되어 용기를 내보았슴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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