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성일기(제7편): 순수 폭력 비판

그것은 진정한 공포다.


그녀는 생각에 잠긴다.

마치 오래 오래 전에

들었던 이야기를 풀어나가듯이

나무가 흔들린다.

방쪽 한 구석엔 어둡고도 밝은 주황색 불빛이 은은하게 비춘다.

오각별 불빛은 반짝이는 것만 같이 눈부시지만

흰색 벽은 그녀의 기억을 삼킨다. 

그렇게 이젠 그녀의 두뇌는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고 아무런 과념에도 묶이지 않는다.

이것이 그녀가 그토록 바라봤던 삶이 아니던가?

모든 번뇌와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바로 그런 삶.

그렇게 그녀는 온전히 치유되고 있었다.

가 아니라면

단지 같은 자리에서 십여년 동안 일시정지 버튼을 누른 것인가.

만약 이같은 평온이 치유가 아니라 지연의 연장이라면 

그것은 진정한 공포다.

인간은 과거를 어떻게 마주해야 하는가?

뿌리칠 수 없는 과거,

딛고 일어서야만 하는 과거.

그런 과거를 안고?

아님 잊고,

아님 방치하여

마치 바보배에 실린 추방자들과 같이

마음의 육지의 곁을 찾지 못하여 

때론 잊쳐졌다가 

때론 불쑥 나타나 성가시게 하는

그녀는 회의한다.

“내가 여태까지 사랑에 실패한 이유는 내가 가장 사랑했던 사람을 나의 마지막 사랑으로 생각해서가 아닐까.”

그렇게 끈질기게 무언가를 붙잡고 

순교자의 마음으로 자신을 희생의 제단에 올려 놓는 

그러한 유일한 순수에 대한 충성을

너무나도 지키고 싶어서 

사랑의 대상이 사라져도

오로지 자율적인 믿음으로

그 영역을 다른 인연들로부터 지켜내려는

이 지고지순한 믿음 말이다.

따라서 그녀는

참으로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이되었다.

심지어 사랑했던 동일인이 다시 찾아와도 마찬가지로 소용 없다.

그녀가 지키고 싶었던 대상은 그 동일인이 아닌 그로부터 파생된 무지막지한 힘을 지닌 이상적인 사랑에 대힌 믿음이였기에!

그녀는 우울한 여성인 것이 틀림없다.

하염 없이 하염없이

순수했기에

그와 똑같이

순수를 믿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한심하고 하찮고

안쓰러워서

고개를 돌리다 결국 다시 

하늘을 바라보며

감사의 마음을 기렸다.


그런데 

이젠

이 순수에 대한 지독한 믿음이

그 믿음을 제외한 모든 것의 파괴를 허용한 

순수 폭력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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