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랑 가방 하나 메고 중국으로 한달 간의 여정을 떠난 적이 있다. 아껴둔 신혼여행 겸, 친구들 만날 겸, 출장 겸, 부모님도 뵐 겸 모험같은 여행을 떠났다. 북경-서안-함양-심양-연변(용정-도문-화룡-연길)-청도-남경-무한-합비 그리고 포항까지 들러 꿀 같은 시간을 보내고 돌아왔다.
적당히 고민하고 과감히 떠나길 잘했다. 이런 무모함을 즐길 기회가 몇번이나 더 있을까. 빈틈없이 계획하고 나서야 떠났던 예전과는 너무도 달랐던 이번 여행, 예측불허의 상황을 어느새 즐기고 있는 나를 보며 자유롭고 특별한 추억들을 만들었다.
새벽 3시의 大兴机场, 숙박비를 아끼기 위해 공항에서 노숙하기로 했다. 편한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다 차지했고 남은 건 카페트까 깔린 널다란 바닥뿐. 얼굴만 가리면 누가 알려나. 잠이 중요하지. 둘이서 교대로 자면서 체력을 충전했다.
북경엔 추억의 장소들이 참 많다. 昌平도 가고 魏公村도 가고. 꼭 다시 가보고 싶었던 南锣鼓巷도 가보았다. 북경에 있을 때도 함께 해보지 못했던, 공유 자전거를 타고 长安街를 따라 천안문광장도 지나갔다. 汕头八合里海记牛肉店의 샤브샤브는 진짜 기가 막혔다. 특히 소고기 완자는 여행 내내 생각나는 맛이었다.
서안에 도착했을 때는 비가 포실포실 내리고 있었다. 택시 기사님이 립스틱이 가방에서 막 녹는 날씨였는데 전날에 하루종일 비가 와서 더위가 한풀 꺾였다고 했다. 서안은 확실히 더웠다. 신기한 건 서안 사람들은 더움을 느끼지 못하는 걸까. 왜 에어컨이 있는데도 안 트는지 모르겠다. 박물관에서도 식당에서도 카페에서도 에어컨을 틀지 않는다. 사실 유명한 관광지는 거의 다 갔는데 더운 기억이 너무 강했다.
더운 것 말고도 야외에서 쪽걸상에 앉아 먹는 촬이 인상적이었다. 촬 귀신이 촬을 그냥 지나칠리는 없었다. 2박 3일 간 매일 촬을 먹었다.肉夹馍, biangbiang面, 酸梅汤은 어디가나 맛있었고 각종 马씨 烧烤店이 가는 곳마다 있었다.
심양은 연변으로 가기 위해 환승 겸 짧게 머물다 갔다. 심양에서는 기차 시간 기다리는동안 카페에서 각자 노트북을 했다. 아침으로 맥도날드에서 먹은 油条와 豆浆이 기가 막혔다. 이른 시간에 공항을 가니 공항에서 일출을 다 봤다.
연변에 2주동안 있었다. 부모님들에게는 온다는 말 없이 찾아갔다. 깜짝 놀라하시며 입이 귀에 걸리셨다. 서프라이즈는 대성공. 머무는 동안 먹고 싶었던 건 원없이 먹었다. 소탕-양꼬치(적어도 3회이상)-돌솥비빔밥-닭곰-찹쌀순대-썩장-직접 만든 초디비-米线-콩국수-냉면-가지밥-오리알-장물열콩채-감자밴새-앵두-꽈리-옥수수막걸리-닭발-감재지지미-각종 산나물-마라썅궈-옥시국시-물밴새-입쌀밴새-쉰떡-찰떡-烤拌面등 학교 앞에서 파는 小串들. 그리고 역시부모님이 해준 집밥이 최고였다. 손맛이 최고.
연변에 오랜만에 가보니 변화가 컸다. 여행객이 눈에 띠게 많은 것과 카페가 많이 생긴 것. 음료 한잔에 30원을 웃도는 가격에도 매번 카페 안에 사람이 꽉 차있는 게 신기했다. 산책을 하다 학생들이 밤자습을 끝내고 하교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는데, 학교 앞에 학부모들이 다들 마중을 나와 있어서 놀랐다. 차로 데리러 온 어른이며, 电瓶车에 태워가는 어른이며 고중생인데 집을 찾지 못할까봐 걱정하는 마음에서 데리러 온 건 아닐테겠지만.. 낯설고 아상했다.
2주 정도 밖에 있지는 않았지만 이런저런 불편함도 마주하게 되었다. 공증을 하러 政务大厅에 갔었는데 오후 4시반에 이미 퇴근하고 없는 터였다. 정부 기관이 4시반에 퇴근이라니 또 한번 놀랐다.
한번은 또 美团으로 호텔을 잡았는데 주소가 잘못된건지 호텔을 찾을 수가 없어서 전화을 걸었다. 직원분이 전화를 받더니 확인해 보고 다시 전화를 주겠다며 끊었다. 15분도 넘게 기다렸는데도 연락이 없자 다시 전화를 걸었다. 전화 넘어에서는 마작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고 돌아오는 대답은 아직 청소를 안했으니 다른 데를 알아보라는 식의 통보였다. 사과는 없었다. 충격적이었다. 다른 호텔을 찾는 것은 어려울 것이 없었지만 이런 경우가 연변이 좋아 놀러온 외지 여행객에게 일어난다면 어땠을까 싶은 심정이다.
부모님을 모시고 병원에 갔었다. 날짜를 예약하고 갔었는데 진료를 보기로 한 의사는 자리를 비웠었고 40분을 기다려서야 의사가 왔다. 너무 허술하게 진료를 보고 처방전을 내리는데 주사기 1대를 30대라고 오입하여 진료비를 청구하는 실수도 했다. 음… 시병원인데 아무리 연길이 아니라지만 너무 하다 싶었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여기서는 그렇지 않으니 안타까웠다.
6월 말이라 마당에 씨를 뿌려둔 채소들이 올망졸망 돋아나 있었다. 옆에서 작업하는 걸 따라서 같이 기슴을 매며 일손을 거들었다. 너무 오랜만에 만져보는 호미며 흙이었다. 아쉽게도 밭에선 나는 채소들은 못 먹고 떠났다.
교주에는 친구 부부와 귀염둥이 꼬맹이를 만나러 갔다. 아이와 함께 할 수 있는 게 뭘까 고민하다가 텐트도 칠 수 있고 놀이기구도 있는 游乐场을 가기로 했다. 아이 덕분에 동심으로 돌아가서 물놀이도 하고 碰碰车에 튜브에 앉아 내려오는 미끄럼틀도 타고.. 소풍 온 것마냥 아이와 같이 뛰놀다 보니 함께 신났다. 재밌기도 했지만 육아는 역시 체력전임이 틀림없음을 피부로 느꼈다. 교주에는 공유 자전거보다 공유 电动车가 더 많았다. 헬멧까지 다 있는.
출장으로 오게 된 남경, 사실 남경이 여행의 명분을 만들어 주었다. 출장으로 온 덕분에 숙소를 공짜로 제공받을 수 있었다. 덕분에 엄청 맛있는 조식과, 러닝머신으로 운동도 아고 세탁기로 빨래도 할 수 있었다. 남경에서는 못 먹어봤던 새로운 요리도 과감히 도전했다. 羊眼-蚂蚱-蝉蛹-猪脑花-鸭肠를 생전 처음 먹어봤는데 꼬치구이로 요리가 된 거라서 다 맛있었다. 별걸 다 먹어봤다. (一品烧烤의 13香小龙虾는 진짜 일품이었다.) 그렇게 하루는 사무를 처리하고 하루는 이곳저곳 놀러다녔다. 날씨가 너무 더워 낮에는 야외활동이 불가능하여 호텔 근처의 江苏美术馆에 다녀왔다. 마침 版画 기획전이 전시 중이라 볼거리가 많았다. 저녁에는 나와 꼭 같이 와보고 싶은 곳이 있다며 夫子庙로 데리고 갔다. 남경에 인턴으로 왔을 때 조깅하면서 이곳을 지나가며 내 생각이 났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예쁜 곳이었다. 사람이 많은 것만 빼면.
小厨娘淮扬菜의 果味松鼠鲜桂鱼이 먹고 싶어 한시간을 기다려서 들어갔다. 한국에서도 줄서는 식당은 가지 않은데 남경에 또 언제 가겠나 싶은 마음으로 줄까지 서가며 기다렸다. 정갈하고 만족스러웠다. 新东新老鹅 요리점도 특색이 있었다.
여행을 가면 꼭 하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박물관을 가는 거와 하나는 달리기로 기록을 남기는 것이다. 무한에서는 이 둘 다 성공시켰다. 무한에 가면 장강을 따라 달리기를 하는 것이 소원이었는데 저녁에 3km정도 짧게 조깅을 했다. 그리고 성박물관과 성미술관도 어렵사리 예약을(중국은 박물관은 모두 미리 예약을 알아봐야 한다) 해서 둘러볼 수 있었다. 아, 한가지 더 있다, 도시마다 시간이 되면 영화관도 들른다. (이번 여행 중에 세편의 영화를 봤다. 走走停停, 默杀, 传说. 연변에 있을 때는 아껴뒀던 庆余年1,2를 정주행했다.)
상해에 있는 친구와 합비에 있는 친구도 무한으로 모여 같이 또 따로 시간을 보냈다. 코로나의 집중 타격을 받은 도시였지만 이젠 생기 넘치고 인상 속에 제일 예뻤던 도시로 남아있다. 새벽에 친구들이랑 축구 경기도 생방으로 관전하며 떨어져 있어 못해봤던 소소한 것들을 함께 했다. 유람선도 처음 타봤다.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나 유람선이 운행을 못하고 정박한 채로 운영된 점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래도 좋았다.
무한의 요리는 碳水+碳水+碳水였다. 糯米包油条라든가, 热干面이라든가. 감이 좀 오는가. 연꽃 씨앗도 처음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었다. 더위에 좋다고 하니 더더 입으로 집어넣었다. 무한에서도 촬을 좋아하는 촬 귀신은 여김없이 백옥촬점을 찾아냈고 양꼬치를 먹었다.(합비에 가서도 양꼬치를 먹었다는 사실은 이젠 놀랍지도 않겠지.) 그리고 奶茶는 체인점 별로 한번씩 다 먹어봤다. 이름부터 통통 튀는 爷爷不泡茶, 和颜悦色, 霸王茶姬, 茶百道 등 원없이 마셨다. 기차안에서 마신 雀巢咖啡가 어찌나 丝滑하던지! 왜 중국에 있을 때는 그런 맛을 몰랐을까 싶었다. 액체가 입안에서 목구멍으로 넘어가는 느낌마저 희미할 정도로 丝滑했다.
헤어지기 아쉬워 친구따라 합비까지 같이 갔다. 합비는 신기하게 처음 간 도시임에도 마음 편안한 내적친밀감이 있었다. 자동차 산업을 크게 발전시키고 있는 도시라고 친구가 말해주었다. 온 김에 성박물관에도 들르고 저녁으로 양꼬치도 먹었다. 산책을 하면서 绿洲东路外滩을 우연히 발견했는데 야시장과는 또다른 색다름이 있었다. 저녁을 먹었음에도 东北烤冷面이랑 卷饼에 青岛啤酒를(생맥으로 거품까지 내서 주는) 포장해서 호텔에서 축구를 보며 마지막 밤을 보냈다.
떠나기 전 마지막 점심, 친구와 庐州太太에서 배를 든든히 불리고, 친구가 차로 공항까지 데려다주는 길에 벌판을 혼자 지키고 있는 신비롭고 고즈넉한 카페에도 들렀다. 마무리로 완벽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바다가 보고싶어 우리는 다시 포항으로 방향을 틀었다. 아홉 곳보다는 꽉찬 열 곳이 엔딩으로는 더 멋지지 않을까 하는 나름의 이유로.
여행을 끝내고 나니 한가득 고마움뿐이다. 갑작스런 연락에도 반가워 해주고 시간을 내서 마음 나눠준 이들에게 고맙고, 탈없이 잘 버텨준 어깨, 다리와 위장에 고맙고, 긴 여정을 터지지 않고 버텨준 가방에게도 고맙다. 함께 수많은 처음을 만들어 준 그에게 특히 고마움을 전한다.
썸네일 BY 노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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