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도록 가족처럼 지내온 고향 친구가 있다. 부모님 보다도 서로의 비밀과 생각을 더 많이 공유했던 그런 친구이다. 최근, 그 친구는 평생을 함께할 반려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친구의 결혼식에 참석하니 친구의 어머니, 아버지, 언니, 그리고 이모 등 익숙한 얼굴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름이 깊어진 친구 부모님의 모습을 보니 가슴이 뭉클해졌다. 세월이 참 야속하다는 생각을 했다. 지나온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눈 앞을 스쳐 지나갔다.
우리가 언제부터 친구였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 우리의 나이가 서른셋이니… 아마도 30년쯤 되었을까. 기억을 더듬으면, 초등학교에 가던 아침마다 나는 친구 집에 들러서 친구를 기다렸다. 친구의 집 문은 두드릴 필요도 없었다. 문고리를 잡고 “00야~” 하고 부르는 것이 나의 아침 루틴이었다. 그럴 때마다 친구의 할머니는 항상 친구의 머리를 단정하게 묶어주고 계셨다. 할머니의 인자한 얼굴이 아직도 생생하다.
친구는 총명한 아이였다. 반에서 늘 1등을 했고 반장도 도맡았다. 소학교 3학년 때, 조선족 학교가 폐교 위기에 놓이며 어쩔 수 없이 한족 학교로 전학을 가야 했던 일이 있었다. 친구는 나와 함께 전학을 갔다. 그리고 중학교에 올라가 향진에서 도문시로 전학을 가겠다고 했을때도, 친구는 나와 함께 전학을 했다. 나는 부모님도 함께 도문으로 이사하셨기에 큰 불안이 없었지만, 친구는 어린 나이에 부모님과 떨어져 이모 집에서 지내야 했다. 어느 날, “너 때문에 전학 왔다”며 서러워 울먹이던 친구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하지만 친구는 노력해서 연변2중에 합격했고, 나는 도문에서 학교를 다니면서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그리고 고중, 대학 서로 다른 지역에서 다니면서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세계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나는 나만의 삶을 살아갔고, 친구는 자신이 옳다고 믿는 길을 걸었다. 특히 그의 옆에 남자친구가 나타난 후로, 그의 가치관에 참 많은 변화가 있다고 느꼈다. 한번은 돈과 관련된 이야기로 크게 다툰적이 있다. 그 후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응원해주는 사이로 우리는 더 이상 속 깊은 대화를 하지 않았다. 우리는 암묵적으로 조금은 멀리 서로를 너무 잘 아는, 어떤 선택을 해도 서로 응원해주는, 가깝지만 또 조금의 여유를 두는 그런 사이가 되었다. 어쩌면 서로가 너무 잘 알기에 상처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들의 우정이란, 이런건가 싶기도 하다. 늘 함께 시간을 보내지 않아도 끈끈하게 이어지는 어떤 감정.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어느 순간 다시 마주치면 어제 만난 사람처럼 웃을 수 있는 사이. 우리는 그런 친구였다. 함께한 시간이 너무 깊고 오래돼서, 때로는 서로에게 침묵이 더 큰 위로가 되기도 했다. 삶의 방향이 다르고 생각이 달라도, 그 다름을 견디고 받아들이며 각자의 자리에서 응원해주는 관계.
그러나 가끔은 아쉽기도 하다. 예전처럼 모든 걸 털어놓고 밤새 이야기하고, 작은 일에도 깔깔 웃고, 서운한 일이 있으면 울다가도 금세 화해하던 그런 시절이 그립다. 하지만 어른이 된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조심스러운 배려와 거리감을 배우며 조금씩 변해가고 있다.
그 변화가 서운할 때도 있었지만, 돌이켜보면 그것 또한 우정의 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것이 아니겠는가.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서로의 선을 지켜주고, 무게를 덜어주기 위해 조용히 곁에 있어주는 것. 그것이 어쩌면 여자의 우정이 자라나는 방식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