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조선족 가수 백청강이 <1등들>이라는 프로그램 참여로 다시 TV에서 노래를 부른다. 그의 미성과 고음은 여전한데, 그는 이제 “앙까?(압니까)”라는 연변 말투 대신 서울말을 한다. 그럼 또 어떠랴.
2주째 지켜보다가 문득 그가 <위대한 탄생>에 나오던 시절, 그러니까 무려 15년 전에 흑룡강신문에 그에 관한 칼럼을 썼던 기억이 떠올라서 찾아보니 있다. 당시 신문의 지면에는 본문 중 1, 2, 5, 6만 나갔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홈페이지에는 원문 그대로 실려 있다. 다시 읽어 보니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더러 있지만, 줄바꿈만 좀 손봐서 그대로 아래에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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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청강의 “위대한 탄생”에 대한 단상
2011-06-03
한국 문화방송(MBC)의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인 “위대한 탄생”은 지난 7개월간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조선족 사회에 숱한 화두를 던져 주었다. 심사위원의 평가의 공정성 여부에서 시작해, 백청강의 우승은 조선족 시청자의 몰표 덕분이라느니, 성공적인 멘토가 꼭 갖춰야 할 자질은 무엇이냐, 위대한 탄생의 진정한 승자는 누구냐 등등이 그것이다. 한국에 십여 년을 체류해 온 한 명의 조선족으로서, 지난 몇 개월간 “위대한 탄생”을 지켜보고 관련된 한국 기사들을 읽으면서 떠오른 단상 몇 가지를 글로 옮겨 본다.
1. 문화의 힘을 앙까?
독자들도 백청강의 팬들이 “앙까?”라는 글이 쓰인 현수막과 면티를 입고 텔레비전 화면을 꽉 채우던 장면을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백청강이 아버지와의 대화에서 연변 사투리로 “앙까(압니까)?”라고 묻는 장면이 방송된 이후로, “앙까?”는 연변 청년 백청강의 별명이 되었고, 유행어처럼 되었다.
일반적으로, 언어의 선택도 경제논리와 무관하지 않다. 즉 사람들은 경제가 발달한 나라나 지역의 언어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백청강의 “앙까?”는 문화의 힘으로 경제논리를 거스른 한 반증이라 해야겠다.
조선어에는 많은 아름다운 우리의 것과 옛것들이 적지 않게 고스란히 남아 있다. 한류로 인해 한국어가 조선족의 언어생활에 일방적인 영향을 미치던 상황을 역행해 조선어의 아름다운 것들 또한 한국의 언어생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가능성을 봤다고 해야 할까. 경상도 억양을 구사하면서도 큰 인기를 누리는 강호동이나 김제동이 있는 것처럼, 머지않아 연변 억양을 구사하는 또 다른 강호동, 김제동을 한국 텔레비전에서 보게 될지, 누가 앙까?
2. 오디션보다 훨씬 더 치열한 경쟁사회
위대한 탄생을 보시면서 일흔 되신 친정아버지께서 “다들 잘하는 것 같구만, 왜 자꾸 떨어뜨리니? 참 잔인하구나.”라고 안타까워하셨다. 한국 TV 매체에는 오디션 열풍, 다시 말해 내가 살기 위해 누군가는 “죽어야 하는” 그런 서바이벌 경쟁의 바람이 불고 있다. 바로 치열한 경쟁이 넘쳐나는 한국 현실사회의 축소판인 것이다.
방송은 그나마 편집 등 후처리 작업을 거쳐 많이 순화되지만, 실제 사회는 이보다 훨씬 냉정하고 복잡하다. 백청강이 멘토들의 혹평을 담담히 받아들이며 당당히 우승을 거머쥘 수 있었던 것처럼, 앞으로 가수 생활을 하면서도 여러 가지 시련 앞에서 그러한 담담함으로 잘 이겨나갈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그리고 그런 과정에 김태원 멘토와 같은 좋은 사람을 또 만날 수 있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3. 연예인으로서의 성공을 기대하며
연예인은 공인(公人) 아닌 공인이라는 말이 있다. 공적인 일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연예인의 특성상 언행이 대중에 노출되고 주목을 받으며, 따라서 사회에 미치는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나온 말이다. 백청강의 우승을 놓고 한국에서의 조선족 위상을 높였다는 등으로 풀이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다.
필자가 한국 생활을 막 시작했던 2000년의 어느 추운 봄날, “조선족 동포 위로 대회”라는 모임에 참석했다가 “우리가 과연 동포냐? 똥포냐?”하며 울부짖는 한 조선족 아저씨의 발언을 들으며 눈물을 펑펑 쏟은 일이 있다.
강산도 변한다는 십 년 세월이 흘렀고, “조선족”은 식당, 공사장의 힘든 3D 직업 외에도 교수, 연구, 대기업 회사원 등의 다양한 직업이나 역할로 한국 사회에 조금씩 정착해 가고 있다. 그러나 다른 어떤 직업도 연예인이 가지는 사회적인 호소력에 비교할 바가 아니다. 그래서 더욱 백청강의 연예인으로서의 성공을 기대하고 응원하게 된다.
4. 한국 사회의 타문화에 대한 포용력 향
조선족 청년 백청강의 우승이 갖는 의미는 한국 사회의 타문화에 대한 포용력 신장과 갈라놓을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10년 전, 내가 본 한국은 조선족을 포함한 타문화를 대함에 있어 물과 기름의 만남처럼 상당히 어색하고 겉돌던 때가 있었다.
“다문화”라는 말이 일상용어처럼 쓰이기 시작한 것도 불과 몇 년전부터였다. 한국 내 체류 외국인이 120만 명에 육박하며 다문화사회로의 본격 진입을 앞둔 현재, 한국 사회는 조선족 백청강 외에도 캐나다 청년 셰인을 “위대한 탄생” TOP3에 올려놓았다. 연예인들 중에도 태국의 닉쿤, 중국의 빅토리아 등과 같은 외국인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놀라운 변화를 일궈낸 한국 사회와 한국인들에 진심으로 박수를 보낸다.
5. 5월은 한국의 가정의 달
백청강이 아홉 살 이후로 세 식구가 살아본 적 없다는 아픈 가족사가 널리 알려지며 시청자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었다. 우승 직후 한 인터뷰 기사는 백청강이 “연변에서는 나 같은 경우가 특별하지 않다. 대부분의 가족이 부모님의 돈벌이 때문에 함께 살지 못한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십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한 조선족 결손 가정의 실상을 읽으면서 얼마나 마음이 아픈지. 어디에선가 본 바로는 연변의 조선족 결손 가정 비율이 60%를 넘는다고 한다. 백청강의 “한국에서 가수로 성공해 부모와 함께 세 가족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소박한 바람처럼, 백청강네 가족이 하루빨리 모여 살 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한 아이의 엄마로서, 부모와 함께하지 못해 상처 받는 조선족 아이들의 마음을 생각하니 또 마음이 아프다.
6. 부정 투표
글을 쓰고 있는 필자에게 남편이 “당신은 부정 투표를 했잖아.”라고 한 마디 툭 던진다. 결승에서 백청강이 이겼으면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위대한 탄생”에는 아예 관심이 없던 남편의 핸드폰으로 몰래 한 표를 행사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필자는 정말 백청강의 우승을 간절히 바랐었다. 노래도 잘했지만, 같은 조선족이라서, 또 역경을 딛고 더 활짝 웃는 모습을 보고 싶어서, 그게 우리 모든 이들에게 희망이 되어줄 수 있다고 믿었기에 말이다.
매번 금요일 저녁이면 필자는 어김없이 어린 아들애를 일찍 재우고 텔레비전 앞을 지켰다. 최근 손자를 봐 주러 딸집에 와 계신 친정어머니와 나란히 앉아서 말이다. 우승하는 순간에는 어머니와 함께 기쁨의 눈물을 훔쳤다. 물론 같은 조선족 출신이면서도 본인 취향은 아니라며 “위대한 탄생”을 시청하지도 투표하지도 않은 “영 주장 있는(주: 백청강의 네이버 팬 카페명이 ”영 주장 있는 백청강“이다)” 필자의 남편 같은 친구들도 주변에 적지 않다.
“백청강 투표 조선족 비율”이라는 검색어로 인터넷을 뒤지고 뒤졌지만 정말 조선족 몰표인지에 대해서는 어디에서도 근거를 찾을 수 없었다. 투표 방식을 봤을 때 근거가 있을 리도 없는 일이다. 어쨌거나, 당사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남편의 핸드폰을 사용해 부정투표를 한 일은 참으로 부끄럽고 후회스럽다. 필자와 같은 부정 투표자가 많지 않았기를 내심 바랄 뿐이다.
끝으로, 부정투표의 덕에 우승했다는 여론을 깨끗이 잠재우게 백청강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진정한 가수로 계속해 성장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그림. 흑룡강신문 웹페이지 갈무리 화면>
– 원문 출처: 흑룡강신문, 2011-06-03
– 원문 URL: https://hljxinwen.dbw.cn/system/2011/06/03/000362772.s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