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의 망각은 과거의 죽음이다.

고통스러운 고민


고통을 망각한다는 것은 그 고통을 상키시킬 수 있는 기억마저 희미해진다는 것이다. 

고통스러운 기억이 서서히 사라진다면 그 자리에 새로운 기억들로 가득 채워 질 기회가 주어진다.

기뻐해야 할 일이 아닌가?

새로운 자신의 탄생과 함께 과거로부터 형성되어온 "나의 기억"은 "망각"이라는 어마무시한 저승사자 앞에 놓이게 된다.

우리는 과거를 잊고 고통에서 자유로워 질 수 있을까? 《세브란스: 단절》 시리즈를 눈팅하다가 갑자기 든 생각이다.

과거와의 단절의 시도는 늘 "전복"과 "진보"와 같은 절대적인 긍적성으로 "망각"의 당위성을 확보한다.

하지만 이 보다 더 막무가내로 추종되어 온 시뮬라크르(simulacre / simulacrum)도 더는 찾기 어려울 것이다.

진보를 흉내내는 시뮬라크르. 그러한 세계는 항상 도래함을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그 세계가 과연 과거의 순환적인 패턴인지, 진정으로 업그레이드 된 버전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런 시점에서 나는 "여유 없는 기계적인 삶"에서 자연스럽게 동반되고 있는 "고통에 대한 망각"을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는 더 이상 "기다림"이라는 고통을 용납하지 않는다.

연애와 결혼에 있어서도,

정보 수집이나 학습에 있어서도,

일상적인 삶에 있어서도.

"멈춤"과 "일시정지"에 의해 새로운 세상의 집단기억 속에서 가차없이 버려질 수도 있겠다는 두려움으로 인해 우리는 앞 만 보고 달려가기를 선택한다. 

이것이 진보를 가장한 시뮬라크르다.

그 대가로 우리에게 다가 올 앞날은 "설레이는 미래"가 아니라 "이미 망각된 과거의 반복적 패턴"을 다시 습득하는 과정일 수도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현재 나의 시체를 바라보며, 이를 나의 유산으로 기려야 할지, 깔끔하게 청산해야 할지 

고통스러운 고민을 다행스럽게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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