离职日记 –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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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离职日记 – 16
  17. 离职日记 – 17
  18. 离职日记 – 18
  19. 离职日记 – 19

1인 출판사를 차리기로 마음 먹으니 해야 할 일이 마구 떠올랐다.
그날 밤, 나는 노트북을 켜고 빈 문서를 열었다. 문서 제목은 거창하게 ‘출판사 창업 계획’으로 했다. 깜빡이는 커서를 3초 동안 응시하고 떠오르는 대로 적어내려갔다.

<출판사 창업 계획>
기획: 출판사 이름, 로고, 콘셉트, 시리즈, 예상독자
행정: 사업자등록, 통장 개설, 이메일, 명함, 계약서 서식, ISBN 가입,
경영: 수입, 지출, 세금, 투자
업체: 인쇄, 디자인, 전자책, 유통, 홍보
분석: 맘에 드는 출판사 열 곳 추려서 분석, 출판 시장 동향 분석
……

어느새 빈 문서가 다섯 쪽을 넘겼다. 시계 바늘도 2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누군가의 꿈과 노고가 담긴 책 출판을 돕는 일.”
나는 다짐하듯 마지막 한 줄을 적고 노트북을 닫았다. 더없이 고요한 달밤이었다.

며칠을 고민한 끝에 출판사 이름도 정해졌다. 캘린더의 일정 알림을 보고 4와 2가 눈에 들어왔고 의미 부여를 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더구나 사랑하는 두 여자의 생일에 4와 2가 들어가는 점이 결정하는 시간을 줄여주었다. 가장 개인적인 숫자에서 시작된 이름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지향하는 바와 가장 가까웠다. 그 두 숫자가 나란히 놓이는 순간, 자연스럽게 ‘사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사람과 사람 사이.
언어와 언어 사이.
국경과 국경 사이.
과거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
그렇게 나는 ‘사이에출판’의 대표가 되었다. 아무튼 대표다.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새로 이사온 전셋집은 오래된 아파트였지만 채광이 좋았다. 거실 한쪽에 남편이 개업 선물로 산 데스커 모션데스크와 편안한 의자를 들여 나의 공간을 만들었다. 책상에는 둘째가 키우고 있는 괴마옥 화분이 올려져있고, 그 주위에 스티커가 가지런히 붙여져 있다. 셋째 딸은 매일 아침 등원하기 전에 책상 위에 빤짝빤짝 별 스티커를 하나씩 붙여주었다.
“엄마 회사니까 예쁘게 해줘야지.”
‘회사’는 또 언제 배웠대? 참으로 사랑옵다. 회사라기엔 단촐했지만 가족들의 손길이 스민 공간이라 혼자 있어도 같이 있는 것처럼 힘이 된다.

그러던 어느 늦은 밤, 세 번째 개인 수필집 표지 디자인 작업을 하고 있는데, 메일을 한 통 받았다. 제목은 이랬다.
“[출판 문의] 연변말 동화책을 내고 싶습니다”
연변말이라니. 심장이 두근거렸다. 바로 내용을 확인했다. 요지는 작품 <P>를 연변말 버전으로 출판하고 싶다는 것. 그러면서 이력서, 제안서, 앞부분 번역 초안을 함께 첨부하여 보내왔다. 말미에는 <우리나무>에 올린 ‘출판사 대표로 산다는 건’ 시리즈를 잘 보고 있다며, 응원한다는 인사를 남겼다.

하고 싶었다. 하지만 두려웠다. 연변말로 책을 낸다는 것은 단순히 한 언어를 다른 언어로 옮기는 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P>가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작품이라 해도, 연변말은 그만큼 익숙하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언어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반가운 시도일 수 있겠지만, “굳이 왜?”라고 물을 사람도 분명 있을 터였다. 나는 분명 “누군가의 꿈과 노고가 담긴 책 출판을 돕는 일”을 하겠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그 다짐이 용기가 되어주지는 않았다. 이 일이 가진 의미를 알수록, 오히려 더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고민을 더 하기로 하고 간단하게 답장을 보냈다.
“제안 감사드립니다. 꼼꼼히 확인 후 너무 늦지 않게 연락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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