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에서 출발해 인천을 거치고, 다시 김포공항에서 제주행 비행기를 탔다. 세 번의 이동 끝에 도착한 섬은 생각보다 훨씬 초록이 짙었다. 현무암 돌담, 감귤 나무, 어딘가에서 늘 불어오는 바람. 공항에서 렌트카 키를 받아 들고, 우리만의 제주 로드트립이 시작됐다.
LAX, 2024년 9월 16일 밤 9시 35분 — 제주를 향해 출발 전, 아이는 National Geographic 책을 품에 안은 채 비행기를 바라보았다DAY 1 – 9월 18일 수요일
도착, 동쪽으로 — 방마루, 그리고 첫 바다
비행기를 세번 타고 섬에 내렸다. 공항에서 렌트카를 픽업하자마자 동쪽으로 핸들을 돌렸다. 첫 목적지는 제주 동부 해안의 식당 방마루. 노란 외벽에 검은 한자 간판, 입구를 두른 현무암 돌담이 인상적이었다. 제주 해산물로 차린 첫 끼니를 먹으며 비로소 섬에 도착한 실감이 났다.
방마루 식당, 13:45 — 노란 외벽과 현무암 돌담. 제주 첫 끼니를 먹은 곳이다
함덕 인근 해수욕장, 14:58 — 붉은 등대와 에메랄드빛 바다. 9월에도 물은 충분히 따뜻했다
표선 근처 초가 숙소, 16:14 — 제주 전통 초가 형식의 게스트하우스. 감귤 나무와 돌담이 마당을 감쌌다DAY 2 – 9월 19일 목요일
섭지코지에서 성산까지 — 아쿠아플라넷, 그리고 해안 카페
이른 아침, 아이가 마당의 호스를 잡고 감귤 나무에 물을 주기 시작했다. 아직 초록빛이 가득한 작은 감귤들이 물을 맞아 반짝거렸다. 옆에서 어른이 지켜보는 가운데 아이는 꽤 진지한 표정으로 물을 뿌렸다. 여행 중 가장 조용하고 단단한 순간 중 하나였다.
표선 숙소 마당, 06:43 — 이른 아침, 아이가 감귤 나무에 물을 주고 있었다
떠돌이 식객, 07:54 — 넝쿨로 뒤덮인 독특한 입구의 수제 라면 가게오전은 아쿠아플라넷 제주에서 보냈다. 섭지코지 바로 옆에 자리한 이 아쿠아리움은 규모가 상당했다. 층고가 높은 대형 수조 앞에 서자 가오리 한 마리가 유유히 머리 위를 지나갔다. 아이들은 저마다 유리에 손을 붙이거나 입을 벌리고 서 있었다. 어른도 마찬가지였다.
아쿠아플라넷 제주, 10:31 — 대형 수조 앞에 선 사람들. 가오리가 머리 위를 지나갔다
이어돈, 12:10 — 바다 앞 흑돼지 전문점오후에는 서귀포 동쪽 해안 카페로 이동했다. 폭풍이 오기 직전 같은 하늘 아래, 창가 자리에 앉아 거친 파도를 바라봤다. 아이와 와플을 나눠 먹으며 바다를 가리키던 손. 풍경이 시끄럽고 음식이 따뜻한, 완벽한 오후였다.
서귀포 동부 해안 카페, 14:40 — 폭풍 전의 하늘 아래 창가에서 파도를 바라보며 와플을 먹었다DAY 3 – 9월 20일 금요일
중문에서 오설록까지 — 갈치왕, 오설록, 테디베어뮤지엄
오전에는 서귀포 중문 쪽으로 달렸다. 갈치왕 — 붉은 벽돌 외관에 굵직한 한자 간판이 걸린 갈치 전문 레스토랑이었다. 야자수 한 그루가 옆에서 제주임을 조용히 증명하고 있었다. 갈치구이와 갈치조림으로 든든하게 한 끼를 채웠다.
갈치왕, 11:17 — 중문 인근의 갈치 전문 레스토랑. 붉은 벽돌 외관과 야자수식사 후 오설록 티 뮤지엄으로 향했다. 안덕면 서광리에 자리한 오설록은 녹차밭 한가운데에 건물이 떠 있는 듯한 인상이었다. 흐린 하늘이 오히려 차분한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유리창 너머로 녹색 정원이 깊게 펼쳐졌다.
오설록 티 뮤지엄, 12:46 — 안덕면 서광리. 흐린 날의 녹차밭과 유리 건물오후에는 중문 관광단지 안의 테디베어뮤지엄 제주를 찾았다. 아트리움 한가운데 서 있는 거대한 테디베어 — 오렌지 나비넥타이를 맨 회색 곰이 유리 구조물을 배경으로 서 있었다. 아이의 키보다 두 배는 되는 그 곰이 묘하게 친근했다.
테디베어뮤지엄 제주, 14:39 — 중문 관광단지. 오렌지 나비넥타이를 맨 대형 테디베어DAY 4 – 9월 21일 토요일
안덕 한옥 숙소, 그리고 아르떼 키즈파크
이날의 숙소는 안덕면 중산간에 자리한 한옥이었다. 팔작지붕의 기와가 겹겹이 쌓이고, 현무암 돌담이 마당을 두르고 있었다. 아이는 잔디밭에 서서 처마 선을 한참 올려다보았다. 그 뒤로 구름이 천천히 흘러갔다.
안덕면 한옥 숙소, 09:37 — 팔작지붕과 현무암 돌담. 아이가 마당에서 처마를 바라보고 있었다오후에는 아르떼 키즈파크 제주(ARTE KIDS PARK JEJU)를 찾았다. 비가 오는 날씨여서 오늘따라 사람이 많은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엄청 많았다. 그리고 내부에는 실내 백사장을 포함한 많은 아이들의 놀이시설이 있었다. 그중 아이들끼리 팀을 이루어 상대방 컬러의 종이를 뒤집는 이벤트가 있었는데 4살짜리 아이가 처음으로 참가하는 게임이기도 하고 같은 언어를 하는 리더(선생님)와 다른 아이들과 어우러져 하는 거라 새롭게 다가왔다. 그중에 한명으로 끼워서 함께 한다는것이. 게임은 어두운 전시실 전체가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으로 뒤덮은 대형 스크린 공간에서 진행됐다. 파란 소용돌이와 노란 별들이 바닥까지 흘러내렸고, 아이들이 그 위에 앉아 빛 속에 잠겼다. 어디까지가 그림이고 어디서부터가 공간인지 구분이 없어지는 순간이 있었다.
아르떼 키즈파크 제주, 15:08 —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공간 전체를 가득 채웠다DAY 5 – 9월 22일 일요일
섬 서쪽을 달리다 — 새별오름, 협재, 영락, 산방산
이른 아침, 빗속에서 오름을 걸었다. 주황색 비닐 우비를 걸친 채 나무 데크 위를 걸어가는 뒷모습 — 우비 등판에는 제주 마스코트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새별오름의 데크 산책로는 비가 오니 안개가 가득하고 초록이 한층 짙었다.
새별오름, 08:19 — 빗속의 데크 산책로. 주황 우비 뒤로 안개 낀 오름이 펼쳐졌다협재해수욕장으로 내려갔다. 에메랄드빛으로 유명한 그 바다는 흐린 날에도 색이 선명했다. 차귀도가 수평선 위에 낮게 떠 있었고, 파도가 검은 현무암 바위에 부딪히며 포말을 만들었다.
협재해수욕장, 09:28 — 흐린 날에도 에메랄드빛이 선명했다. 수평선 너머 차귀도가 보였다영락리 돌고래 전망대로 이동했다. 현무암 바위 아래로 파도가 들이치는 해안이었다. 잠시 서서 바다를 바라보는데, 멀리 수평선 위로 돌고래들이 점핑하면서 해안도로를 따라서 내리 헤엄치고 있었다. 전망대에서 한참을 보다가 운전하고 내려가는 도중에도 돌고래들이 계속 보였다.
돌고래 전망대 (영락리), 12:32 — 현무암 바위와 거친 파도. 저 멀리 돌고래 등지느러미가 보인다산방산 기슭의 용머리해안으로 향했다. 송악산 방면에서 바라보는 전망대 위 — 유리 난간 너머로 야자수와 파란 바다, 그리고 멀리 형제섬이 보였다. 아이는 인조잔디 위에서 유리 난간 쪽으로 총총 걸어가다 바다를 내려다보며 멈춰 섰다.
용머리해안 (산방산), 14:57 — 유리 난간 너머로 야자수와 형제섬이 보이는 전망마지막으로 새별 HEY-YO! 알파카 목장을 찾았다. 여전히 비가 내렸고, 우리는 저마다 우비를 걸쳤다 — 주황, 파랑, 보라. 건물 외벽엔 알파카와 양 그림이 그려져 있었고, 젖은 데크 위에서 동물들의 냄새가 섞인 빗소리가 들렸다. 목장안에 있는 여러 동물들에 먹이도 주고, 동물 흉내내는 아이의 모습도 보고 순간순간이 참 좋았다.
새별 HEY-YO! 알파카 목장, 16:56 — 비가 내리는 날 형형색색 우비를 입은 가족. 아이가 입구 앞에서 멈춰 섰다DAY 6 – 9월 23일 월요일
귀국 — 제주국제공항
마지막 날 아침. 렌트카를 반납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아이는 제 키만한 캐리어를 양손으로 끌며 씩씩하게 걸어갔다. 뒤에서 보니 어깨가 꽤 당당했다.
제주국제공항, 07:58 — 아이가 스스로 캐리어를 끌며 귀국길에 올랐다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제주에서 찍은 사진들을 하나씩 훑었다. 아이가 감귤 나무에 물을 주던 이른 아침, 빗속의 오름 데크, 대형 수조 앞에서 입을 벌리고 서 있던 순간들. 제주는 '뭔가를 하러 가는 섬'이기도 하지만 '그냥 있어도 되는 섬'이기도 했다. 렌트카를 몰며 섬 구석구석을 달렸던 닷새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게 해준 시간이었다.
제주 로드트립 전체 루트
렌트카로 이동한 5박 6일 동선. 동쪽(표선·성산)에서 시작해 서귀포 중문, 안덕, 서쪽(협재·영락·산방산)까지 섬을 한 바퀴 돌았다.

2024년 9월 16일–23일
LA → 인천 → 김포 → 제주 · 렌트카 로드트립 · 5박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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