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를 쓰려다가, 손이 한번 멈췄다.
키보드 위에 올려둔 손가락이 애매한 모양으로 굳어 있었다.
커서는 같은 자리에서 깜빡이고 있었다.
창밖에서는 낮이 조금씩 기울고 있었고
유리창에 비친 내 얼굴은 빛 때문에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카페 안은 생각보다 조용하지 않았다.
에스프레소 머신이 짧게 숨을 뱉는 소리
우유 거픔이 끓어오르는 미세한 진동
컵이 테이블에 닿는 쿵 하는 작은 침묵에 가까운 낙하
이 모든 소리가 끊기지 않고 이어지는데,
이상하게도 그 사이에 내가 끼어들 자리는 없어보였다.
옆 테이블에 앉은 사람은 노트북을 닫고 자연스럽게 자리를 떳다.
망설임이 없었다.
나는 그 사람의 뒷모습을 오래 바라보았다.
그 사람은 지금 어디로 갈지 이미 알고 있는 것 같아서.
다시, #4를 막상 적으려고 하니 손이 더 느려졌다.
적는 순간, 그게 나를 규정해버릴 것 같아서.
아직은 아닌데, 라는 상태를 굳이 어떤 문장으로 확정짓는 일이 조금은 아깝게 느껴졌다.
나는 몇번 키보드를 두드릴 듯 말 듯 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쓰지 못하고 손을 내려놓았다.
손바닥에 남아있던 미묘한 긴장이 그제야 조금 풀렸다.
이 리스트의 나머지는, 당분간 비워둔다.
#4
#5
#6
#7 …
아직은 적지 않기로 했다.
지금의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보다
무엇이 떠오르는지를 기다리는 중이니까…
그토록 꿈꿔왔던 그 어떤 장면을.
그래서 나는 아직, 그 상상을 지워버리지 않기로 했다.
당장 선택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포기하지도 않은 채로.
어쩌면
그것도 이 리스트 어딘가에 적히게 될
하나의 항목일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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