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자신이 서서히 희미해지고 있는 상태. 이대로 나를 방치할 수는 없었다. 더 이상은 미룰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주 작은 균열처럼 시작된 ‘우선 환경부터 바꿔보자’는 생각은 순식간에 내 안에서 그 영역을 확장해갔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 나를 합리화해 줄 여러 가지 핑계들이 기꺼이 내 등을 떠밀어주고 있는 기분마저 들었다.
길게 늘어질 것만 같았던 북경에서의 삶에 마침표를 찍고 서울로 향하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나 혼자만의 억지로 밀어붙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다행스럽게도 이번만큼은 남편이 온전한 내 편이 되어 기꺼이 힘을 보태주었다. 마침 작년에 남편 회사의 업무가 확장되며 서울 지사가 신설되었고, 남편은 이 타이밍에 서울 발령을 자원해 주었다.
국경 넘는 이주라는 게 어디 말처럼 쉬운 일인가. 챙겨야 할 일들이 산더미였지만, 이번에는 묘하게도 보이지 않는 어떤 기운이 나를 도와주고 이끌어주는 것만 같았다. 지인의 도움을 받아 세 식구가 머물기에 적당하게 아담한 전셋집을 구했고, 한 달 뒤 계약하기로 했다. 큰 걱정거리였던 아이의 유치원 문제도 순식 간에 해결되었다. 이사 갈 아파트 단지 안에 거짓말처럼 딱 마음에 드는 유치원이 자리하고 있었으니까.
남편이 출근하고 아이가 등원한 후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낯설고도 익숙한 도시, 서울. 여기까지 먼 길을 돌아왔으니 이번에야말로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에 뛰어들어 보기로 했다. 새로운 직업 찾기를 “창업”으로 도전해 보자. 대학을 졸업하고 쉼 없이 달려왔다. 한국도서 통번역을 거쳐 출판사에 자리잡았고, 치열하게 전문 편집자로 살았다. 그렇다면 이제는 내가 가장 잘하는 이 일을, 나만의 리듬으로 조금 더 자유롭게 풀어내봐도 좋지 않을까. 오랫동안 마음 한구석에 조용히 품고 있던 ‘프리랜서 작가’라는 꿈도 다시금 꿈틀거린다.
그렇다면 ‘1 인 출판사’, 이것이 딱이다.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온전히 나의 목소리를 내는 일. 누군 가의 꿈과 노고가 담긴 책 출판을 돕는 일. ‘1 인 출판사’를 차려 나만의 주도권을 가져보기. 지금의 나에겐 그것보다 완벽한 답은 없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