콧구녕과 면봉의 만남
아침마다 줄을 서면 핵산검사가 시작된다
그해 봄, 도시마다 아파트를 봉쇄햇다.
눈이 오지 않았지만 세상은 하얗게 얼어붙엇다
거리는 비어 잇엇지만, 채팅방은 붐볏다.
핸드폰 속 건강코드의 유통기한은 48시간
시간이 지나면
우린 모두 확진자엿다
<우리나무>에 모였다.
한국이 밤이면 미국은 아침, 중국이 새벽이면 러시야는 저녁
우리는 함께 깨어있엇다
나는 그곳에서는 그냥 ‘X선생’이라 불리웟다.
다들 그렇게 불렀다.
기타 치는 교회 청년이 잇엇다.
아이디는 ‘아다모 기타’.
심야가 되면 기타를 켜고
“들어보세요” 하면서
통기타 반주에 흐르는 노래를 올렷다
“이 노래 아는 사람?”
아무도 몰랐지만, 다들 들었다.
그의 작은 방은 아파트 봉쇄 구역이었고,
그의 기타 소리는
벽을 넘어 우리 폰 속으로 들어왓다.
밤낮 술 마시는 사람이 있었다.
아이디는 ‘술이 좃소’.
드문드문 오리알에 캔맥주를 마이는 짤막한 영상을 올렸다.
“또 마셔요? ”
“또 ”
그는 시를 쓰다가 술을 마셧고
술을 마시다가 시르 썻다
술기운에 실려온 시는 서툴었지만 조금은 찔리는데도 있엇다
아무도 평론하지 않았다
그는 술잔 이모티콘만 보냇다
봉쇄가 풀리면 제일 먼저 가고싶은 곳이 치킨집이라고 했다
그 후 봉쇠가 풀렷고 치킨집은 문을 닫앗다
그날 그는 하루종일 채팅반에서 슬퍼햇다
아침마다 "아침 쓰겝소" 하며 반찬사진을 올리는 사람이 잇엇다
아이디는 모아산할배
"댓스꾸마, 군숙하냐 하지 맙소, 깨까잠두, 찬차이 들바다 봅소, "
연변 사투리가 살아잇엇다
"아침 쓰겝소, 헐합지? "
봉쇄가 길어도 그의 아침인사는 변함없다
그의 연변말은 모든 이의 고향이였다
그 밤, 우리는 모두 외로웠다.
그런데 외로움을 함께 하면
즐거움이 될수도 잇엇다.
우리는 각자 아파트에 갇혀있엇다
그러나 채팅방은 국경이없었다
코로나가 끝난뒤
우리는 다시 일상으로 돌아왓다
어떤이는 채팅방을 떠나고
어떤이는 아이디를 바꾸었다
그해 겨울,
아파트는 감옥이었지만
채팅방은 기차였다.
우리는 같은 칸에 앉아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도착지는 몰랐지만,
함께 간다는 것은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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