离职日记 20 – 오호라

작가 아이디는 '루이스'


  1. 离职日记 01 – 그래도 안녕
  2. 离职日记 02 – 따리행
  3. 离职日记 03 – 창산, 사촌오빠의 전화
  4. 离职日记 04 – 보름이 지났다
  5. 离职日记 05 – 지금은 다 좋아 보여요
  6. 离职日记 06 – 재즈바, 모닥불 파티
  7. 离职日记 07 – 강호에서 다시 만나요
  8. 离职日记 08 – 离职 TODO List
  9. 离职日记 09 – 빈 커서
  10. 离职日记 10 – 강호의 현재
  11. 离职日记 11 – 따리의 풍경
  12. 离职日记 12 – 뭍으로
  13. 离职日记 13 – 아줌마 정신차려, 낭만은 허락해야지
  14. 离职日记 14 – 번외: 남자 이야기
  15. 离职日记 15 – 잊지 못했던 건 그녀가 아니었다
  16. 离职日记 16 – 서울 그랜드하얏트
  17. 离职日记 17 – 묻지 않는 사람의 끼니
  18. 离职日记 18 – 환경부터 바꿔보자
  19. 离职日记 19 – 사이에출판
  20. 离职日记 20 – 오호라
  21. 离职日记 21 – 번외: 우리가 만났던 방
  22. 离职日记 22 – 빈집들, 아니 새 집을
  23. 离职日记 23 (마지막 편) – 지금도 다 좋아 보여요

<우리나무> 사이트에 ‘출판사의 대표로 산다는 건’ 시리즈를 연재하기 시작한지 한 달이 좀 넘어간다. 1년 전인가, 우연하게 포털에서 ‘조선족 작가’를 검색하다가 클릭하게 된 글로 이어진 사이트였다. ‘조선족 글쓰기 플랫폼’이라… 이런게 과연 존속할 수 있단 말인가, 라는 의문이 있었지만 의외로 모일 사람은 모이는 공간이었다. 좀 괜찮은 글은 조회수 100을 넘기는 정도였으나, 선동적이고 자극적인 한국식도 아니고 그렇다고 허파에 바람이 든 구호가 난무하는 중국 관영식도 아닌 ‘유별난’ 곳이었다. 말 그대로 한 갈래 맑은 기류와 같은 일고청류(一股清流) 비주류 공동체. 댓글이 달리고 대댓글을 달고 서로의 글을 읽고 소통하는 조선족 유저들이 확실하게 숨쉬고 있는 그런 곳.

<우리나무>에서 눈팅만 하다가 1인 출판사를 차리면서부터 나도 글을 올리기 시작한 것이었다. 이국타향에서 맨땅에 헤딩으로 사업자 등록을 하고 거래처들을 찾다가면서 좌충우돌했던 나만의 기록이었다. 신기하게 그걸 또 읽고 책 출판을 문의하는 연락까지 받다니.

보내온 앞부분 번역 원고를 읽어 봤다. 저도 모르게 키득키득하다가 입에 올려 중얼거리기도 하다가 생각에 잠기기도 하다가, 그렇게 한참을 빠져 읽었다.

동화가 고전명작이라 그 매력도 있겠으나, 나의 제1언어, 엄마 뱃속에서부터 듣던 말로 읽는다는 것이 더 신기하고 끌리는 경험이었다. 우리 세 딸도 엄마의 언어로 이 동화를 읽을 수 있다면… 갑자기 마음이 설렜다. 동시에 걱정도 됐다. 연변말이 모어이긴 하나 언어학 전문지식이 없는 내가 이런 책을 편집해도 될까. 이전 출판사에서 중세국어 전공서를 편집하면서 실수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나마 그건 독자가 전공자들이라 인원수가 많지 않았을 것이나, 혹여 연변말 동화를 잘못 냈다가 일반 독자들로부터 비난을 받지는 않을까…

그럼에도 묘하게 끌린다. 자꾸 생각이 난다. 하고 싶어진다. 고향을 떠나서 좋은 삶을 찾아 나섰었고, 그러다 다시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익숙해진 도시와 익숙해진 일상을 떠나서 새로운 도전을 했다. 돌이켜보면 내 삶은 떠남의 연속이었다. 나한텐 익숙하지만 한국인 일반에게는 왜곡된 이미지로 부각된 연변말과 조선족, 그것 역시 떠남의 언어로 느껴졌다. 증조부 시절에 조선땅을 떠나 중국에 가고, 똑같이 조선팔도를 떠나온 말, 산해관을 박차고 떠나온 중국말, 떠나간 사람들 뒤로 팔기군으로 발상지에 머물던 만주말, 시베리아를 건너온 러시아말, 바다 건너온 일본말… 이런 말과 말들이 연변의 흙과 바람과 함께 어우러진 연변말. 간도(間島)라는 강줄기 사잇섬에서 농사를 짓던 데로부터 사람 사이, 말 사이, 나라 사이를 줄다리기하며 이어진 그 언어, 그리고 그 언어를 써왔고 쓰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나도 이들 중의 하나이다. 떠나는 것을 배척하지 않고, 사이에 있는 것이 익숙한. 2026년, 한국, 이라는 좌표를 찍는 이. 조선족으로 불려지는 이. 사이에 끼여있다는 이도 있지만, 나는 사이를 잇고 싶었구나, 연변말 원고를 읽으면서 그걸 자각하게 되었다.

저녁에 퇴근하고 집에 와서도 원고를 또 꺼내 읽었다. 딸애들에게도 읽어주었다. 엄마가 너무 웃긴다면서 꺄르르 굴러다닌다. 남편에게도 보여 주었다. 항상 근심걱정 많은 나를 보고 ‘쌔도래를 떤다’고 연변말로 핀잔을 주던 남편도, 재미있다면서 해보라고 한다. 그래, 그런 말을 고향말 이외는 대체가 안되지. 십년 묵은 체증이 내려가는 듯한 이 기분, 이걸 다른 이들도 느낄 수 있게 해줘야겠다. 사이의 언어, 사이의 이름들이 얼마나 풍부한 감수성들을 안겨줄 수 있는지 꼭 이 세상에 남겨야겠다.

“좋은 원고, 좋은 제안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 드립니다. 한 번 함께 좋은 책 만들어 봅시다.”

답신 메일을 보내고도 진정이 되지 않아, 바로 <우리나무>에 시리즈 최신글로 정리해서 올렸다. 발행 버튼을 클릭하고 나서 ‘최신글’ 페이지로 이동했는데, 거의 동시에 또다른 새글이 올라와 있다. 제목은 ‘실리콘 밸리에서 AI 뉴런 과학자로 산다는 것’. 작가 아이디는 ‘루이스’. 오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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