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밖엔 폭죽이 터지는 소리가 잔잔히 들린다.
初五의 나는 말다툼 하다 한 명의 친구를 잃었다. 거의 30년을 알고 지냈던 친구다.
이것이 "말"년의 위력인가?
왠지 화가 참아지지 않는 한 해가 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한편으로 "그래, 화가 풀리면 나중에 또 연락하겠지"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다른 한편엔 "그냥… 인연이 여기까지인가 보다."라고 아쉬워하지 않는 자신이 더욱 놀랍다.
화가 가라앉고 난 뒤, 남은 것은 의외로 허무함이었다.
더 이상 누군가를 한없이 받아주고 이해하고 포용하는 인내심이 바닥을 보인다.
업무를 받아내는 그릇은 커진 듯 하지만, 인간을 담아내는 그릇은 작아진 것 같다.
이것이 진실 된 나의 모습인가?
이 시간에 나는 혼자 세집에서 Old Timers를 들으면서 수 많은 사람들이 이미 그렇게 살고 있는 삶을 꿈꿔본다.
무언가를 꿈 꿀 수 있는 나이는 한 창 지났다고 생각하지만 나에게 여전히 꿈이 있다는 것에 감사의 마음을 품게 된다.
그리고 올해부터 내가 제 자리로 복귀하는 해가 될 것임을 직감한다.
그것은 즉, 부산스러운 기운들을 정리하여 단조로울지라도 온전히 나에게 몰두하는 그런 복귀를 의미한다.
이럴 때일 수록 나에게 필요한 것은 차분함이다.
고독을 즐길 수 있는 여유가 한 인간을 멋지게 만든다.
과연 그런 내가 되어 있을지 시험해본다.
슬픔이 없는자가 어디 있겠는가? 고통이 없는 자가 어디 있겠는가? 외롭지 않은 자가 어디 있겠는가?
나에게 고독이란 슬픔과 고통 또는 외로움과는 거리가 먼 마음의 깊이를 뜻한다.
고독의 우물은 혼탁치 않다. 맑디 맑아 바닥까지 보여 그 깊이를 파악하기가 힘든 것이다.
이러한 맑은 우물을 깊디 깊게 파내는 일이 내가 지향하는 삶이다.
그러려면 첫째, 혼탁함을 가라앉히는 차분함이 필요하고
둘째, 맑은 눈으로 세상을 깊숙히 들여다 보는 냉철함이 필요하다.
어쩌면 이것이 내가 올해에 넘어야 되는 관문인 것 같다.
시간이 가는 속도가 빨라질 수록,
사색에 몰두하는 시간을 의도적으로 늘려보고.
외부의 사태가 소란스러울 수록,
내면을 정돈하여 나만의 '말'과 '언어'를 구축하고.
마음이 들뜨고 조급할 수록,
고독 속에서만 피어나는 몰입의 고요한 쾌를 스스로 길러보고자 한다.

내 잘못이었고 내가 그를 아낀다면 먼저 사과하겠죠. 내가 아끼는 친구지만, 그의 잘못이고 그가 그걸 알아차리고 먼저 사과하면 나는 받아주겠죠.
억지스럽게 이어가고 싶지는 않고 시간이 지나 매듭이 풀린다면 자연스럽게 이어지겠죠. 오랜 친구지만 대학 이후로 연락을 자주하지 않아서 많은 것이 달라지긴 했어요. 생각도, 생활도. 아쉬움은 있어도 이것도 인간관계 재정립의 일환이기에 우정이 업그레이드 될 수 있을지 두 사람 모두에게 주어진 시험이라고 봅니다.
좋은 생각입니다. 때론 화해를 해도 예전으로 돌아가긴 어렵더라고요. 서로 조심하게 되고.
다 지나가리라. 우리 같은 사람들이 차분해지기가 쉽지 않아요. 기운껏 사세요. 소리쳐 싸우기도 하고 그러다 극적인 화해도 하며… 말의 기운으로 승승장구하는 한해가 될 거예요.
메일 확인하는 순간 몽작님이라고 직감하였습니다^^ 덕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기운껏 살라는 말이 와닿네요~ 그럽시다 우리 다 기운껏 살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