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말, 나는 핸드폰에서 보호필름을 떼어냈다.
사실 시작은 아주 사소하고도 조금 비겁한 마음에서였다. 새 핸드폰으로 바꾸고 싶었다.
기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속도가 크게 느린 것도 아니었지만, 그냥 바꾸고 싶었다. 그런데 딱히 그럴 만한 명분이 없었다.
멀쩡한 걸 바꾸기엔 스스로를 설득할 이유가 부족했고, 그렇다고 욕망을 완전히 접기엔 아쉬웠다. 그래서 나는 아주 은근한 방식으로 상황을 만들기 시작했다.
보호필름을 더 이상 붙이지 않는 것. 별것 아닌 선택처럼 보이지만, 어쩌면 그때부터였는지도 모른다. 무언가가 ‘우연히’ 깨지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시작된 건.
그전까지 나는 꽤 성실하게 보호필름을 붙이고 살던 사람이었다.
액정에 작은 기스라도 생기면 괜히 신경이 쓰였고, 떨어뜨렸다가 멀쩡한 걸 확인하면 늘 같은 안도의 문장을 되뇌었다. “필름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그 얇은 막 하나가 마치 내 일상을 지켜주는 방패처럼 느껴졌다. 안전은 언제나 바깥에서 오는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그걸 떼어내고 나니 이상한 일이 시작됐다. 핸드폰을 떨어뜨릴 때마다, 아주 짧고도 선명한 기대가 스쳤다. 이번에는, 이번에는 정말 깨지지 않을까.
아니, 깨져라 제발! 에 가까웠던 나의 소망 !
기억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카페 문을 밀고 나가던 순간이었다. 손에 쥔 감각이 잠깐 미끄러지더니, 핸드폰이 그대로 바닥으로 떨어졌다.
콘크리트 바닥에 닿는 소리가 유난히 또렷하게 들렸다. ‘툭’이 아니라, ‘탁’에 가까운 소리였다.
단단한 것과 단단한 것이 부딪히는, 돌이킬 수 없는 종류의 소리. 그 찰나에 내 머릿속은 묘하게 고요해졌다.
아, 됐다. 이건 깨졌겠다. 거의 확신에 가까운 체념이었다. 아니, 어쩌면 체념을 가장한 기대였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핸드폰을 주워 들고 화면을 켰을 때, 아무 일도 없다는 듯 빛이 켜졌다. 금 하나 없고, 번짐 하나 없이, 지나치게 온전한 상태로. 그 순간 들었던 감정은 안도가 아니었다. 오히려 약간의 허탈함,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민망함 같은 것이었다. 내가 혼자서 괜히 비극의 클라이맥스를 상상하고 있었던 것처럼.
또 한 번은 버스에서 내릴 때였다. 한 손에는 가방, 다른 손에는 커피, 어딘가에 걸려 있던 긴장이 순간적으로 풀리면서 핸드폰이 손에서 빠져나갔다.
이번에는 한 번 튕기고, 한 번 더 굴렀다. 아스팔트 위를 미끄러지듯 구르는 그 짧은 장면이 슬로모션처럼 늘어졌다.
이번엔 진짜다, 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오히려 조금 담담했다. 몇 번의 실패 끝에 드디어 도달한 결말처럼.
그런데 결과는 또 같았다. 아무렇지 않았다. 샤갈!
너무 아무렇지 않아서, 오히려 내가 이상한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왜 나는 이 물건이 망가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그때부터 생각이 조금씩 엇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왜 이렇게 쉽게 ‘깨짐’을 상상했을까. 그리고 왜 그걸 변화의 조건처럼 믿고 있었을까. 마치 어떤 문이 있는데, 그 문은 반드시 한 번 크게 부서져야만 열리는 것처럼.
보호필름이 있을 때의 나는, 늘 바깥의 얇은 막에 의지했다. 그것이 나를 지켜준다고 믿었다. 그런데 그걸 떼어내고 나니 보인 건, 그 아래에 있던 훨씬 단단한 층이었다. 나는 그동안 보호받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어쩌면 그건 과장된 안심이었고, 동시에 과소평가된 본체였다.
이건 묘하게 나 자신을 닮아 있었다.
살면서 몇 번은 정말로, 이번엔 좀 크게 무너져야겠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다. 관계가 어긋났을 때, 스스로가 초라하게 느껴졌을 때, 이유 없이 마음이 바닥으로 꺼지던 날들. 그럴 때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이건 그냥 지나갈 일이 아니라, 한 번 제대로 망가져야 끝나는 종류의 일이라고.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결정적인 파손’은 잘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애매하게 금이 가지 않는 상태로, 계속 이어졌다. 완전히 괜찮아지지도 않고, 그렇다고 완전히 무너지지도 않은 채로. 그 상태는 깨지는 것보다 더 답답했다. 끝이 없으니까. 분명 힘든데, 그렇다고 멈출 수도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어딘가에서 계속 기다리고 있었던 것 같다. 한 번쯤은 확실하게 깨져주기를. 그래야 이 모든 게 설명될 것 같았고, 그래야 다음으로 넘어갈 자격이 생길 것 같았으니까.
그런데 핸드폰은, 몇 번을 떨어뜨려도
깨지지 않았다.
그 단순한 사실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나는 계속 깨질 거라고 예상했고, 거의 확신에 가까운 기대를 반복했는데, 현실은 번번이 그 예상을 비껴갔다. 그건 단순한 내구성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의 문제처럼 느껴졌다.
나는 나를 너무 쉽게 부서지는 쪽에 놓고 있었던 건 아닐까.
돌이켜보면, 나는 이미 여러 번 바닥에 닿아본 사람이었다.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떨어졌고, 원치 않던 방식으로 부딪혔고, 그때마다 속으로는 금이 간 것 같았지만, 이상하게도 다음 날을 살아냈다. 완전히 부서지지 않은 채로. 그 사실은 늘 나중에야 보였다. 그 순간에는 늘 ‘이건 끝이다’에 가까웠으니까.
핸드폰 액정은 그걸 아주 물리적인 방식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보호필름이 없으면 위험할 거라는 믿음,
이 정도 충격이면 반드시 깨질 거라는 확신,
그 모든 예상이 번번이 틀리는 장면.
그 앞에서 나는 조금씩 다른 결론에 도달했다.
어쩌면 나는, 그리고 내가 살고 있는 이 삶은,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단단한 구조로 지탱되어 있는지도 모른다고.
이 단단함은 거창하지 않다.
철벽처럼 완벽한 것도 아니다. 대신 계속해서 떨어지고, 계속해서 부딪히면서도, 그때마다 아주 미세하게만 흔들리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종류의 단단함이다. 눈에 띄게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의심받는 단단함.
요즘은 핸드폰을 떨어뜨려도 예전처럼 긴장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일부러 떨어뜨리길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주워 들었을 때 멀쩡한 화면을 보면, 조금 다른 생각이 든다. 아, 또 버텼네. 이건 다행이라기보다는, 어쩌면 당연한 일에 가까운 거겠구나.
인생도 아마 그렇지 않을까.
우리는 자주 무너질 거라고 생각한다. 아니, 때로는 무너지기를 은근히 기다리기도 한다. 그래야 설명이 되고, 그래야 정리가 되고, 그래야 새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극적인 파손은 좀처럼 오지 않는다. 대신 수없이 반복되는 작은 낙하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이어지는 일상만이 남는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우리는 조금 늦게 알아차린다.
나는 생각보다 쉽게 깨지지 않는다는 것,
이 삶도 생각보다 끈질기게 이어진다는 것.
이제는 생각이 조금 바뀌었다. 무언가를 바꾸기 위해 반드시 부서질 필요는 없다는 것.
꼭 금이 가야만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건 아니라는 것. 우리는 이미 수없이 많은 ‘거의 깨질 뻔한 순간들’을 지나오면서, 그 사이 어딘가에서 조용히 방향을 틀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변화란, 큰 소리를 내며 산산이 부서지는 사건이 아니라,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것 같은 얼굴로 이어지는 시간 속에서 서서히 스며드는 종류의 것일지도 모른다. 눈에 띄지 않게, 그러나 분명히.
그래서 이제는 기다리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결정적인 파손을. 나를 다음으로 밀어 넣어줄 거창한 계기를. 대신 지금 이 상태로도 조금씩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그 느리고 애매한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고 한다.
가끔은 여전히 흔들리고, 여전히 금이 간 것 같은 기분이 들겠지만, 그때마다 떠올릴 수 있을 것 같다. 몇 번을 떨어뜨려도 끝내 깨지지 않던 그 액정을. 내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단단했던 그 표면을.
그러니까 아마 나는 이미 충분히 버티고 있는 중이고, 이 삶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오래, 그리고 끈질기게 잘 살아나갈것이다.
어쩌면 우리는 이미, 보호필름 없이도 충분히 오래 버텨온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오늘도 액정에 보호필름이 없어서 그런지, 글을 쓰고 있는 현재 타자의 촉감이 훨씬 가볍고 부드럽다. 반년넘게 아무 보호막도 없이 내 곁을 무사히 지켜준 핸드폰… 이젠 바꾸고 싶다는 생각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아직도 잘 쓰고 있다.
기존의 환경에서 완전히 벗어나고, 주변의 관계를 갈아치우듯 바꿔낼 때마다 삶은 한 번씩 크게 흔들렸고, 그 흔들림만큼의 성장도 분명히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뒤돌아보면, 삶을 실제로 채우고 있던 것은 그런 극적인 순간들보다 훨씬 더 조용한 것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듯 이어지던 평범한 나날들의 연속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파괴적인 변화는 때로 방향을 바꾸는 칼날처럼 선명하지만, 그 칼날이 지나간 뒤에도 삶은 다시 흘러가야 했다.
그리고 그 흐름을 가능하게 만든 것은 눈에 띄지 않는 시간들이었다. 특별하지도, 극적이지도 않아서 쉽게 잊히지만, 사실은 가장 오래 남아 나를 지탱해온 순간들. 무너짐과 전환의 장면들 사이사이, 아무 일도 없는 듯 지나가던 하루들이야말로 내가 다시 서 있을 수 있게 해준 보이지 않는 바닥이었는지도 모른다.
보호필름없는 오리지널 액정처럼.
어쩌면 삶은 크게 갈라지는 순간보다, 아무 소리 없이 이어지는 침묵의 결들 속에서 더 깊게 자라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드러나지 않아서 더욱 단단했던 그 시간들 위에서, 우리는 생각보다 훨씬 오래, 조용히, 그리고 우직하게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