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리에 머무르면서 나름 잘했다고 느껴지는 일들이 있다. 잘했다기보다는 아주 마땅한 일들인데, 처음에는 마음먹지 못했던 일들이다. 예를 들면, 회사를 나오기 한달 전부터 인수인계를 최대한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나왔다. 하지만 “리 선생, 리 선생…” 하면서 걸려오는 연락들을 쉽게 끊어내지 못했다. 내 손에서 만들어진 일이니 끝까지 책임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데 며칠 전부터는 이런 연락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분명히 선을 긋는다. 나와 상관없는 일은 더 이상 내 일이 아니다.
그리고 주위에서 오는 안부 메시지들도 비슷하다. 잘 지내느냐, 괜찮냐, 다음에는 무엇을 할거냐는 질문들. 나를 걱정해서 보내는 메시지라는 걸 알지만, 이런 대화들도 생각보다 많은 시간을 잡아먹는다. 답장을 고민하다 보면 괜히 신경 쓸 일들이 늘어나고, 그 과정에서 에너지를 쓰게 된다. 그래서 요즘은 읽고 넘기거나, 아예 열어보지 않기도 한다. 잠깐 한국에 머무르며 사용했던 카톡과 달리, 위챗에서는 내가 읽었는지 상대가 알수 없다는 점이 조금은 편하게 느껴진다.
지난 몇주동안 따리에서 만난 인연은 바리스타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어떤 때는 며칠 연속으로, 나와 비슷한 이유로 이곳에 온 사람들을 만나기도 했다. 각자의 방식으로 잠시 멈춰 있는 사람들. 하지만 그들도 이제 하나둘 떠나기 시작했다. 서로 위챗을 추가하고 “시간 되면 또 보자”고 했지만, 모멘트에는 “이제 다음 여정으로 떠난다”, “다시 시작해야지”라는 글들이 올라온다. 누구는 북경으로 돌아가고, 누구는 한국으로 돌아가고, 또 누구는 다른 도시로 이동한다. 다들 각자의 방향이 있는것 같았다. 멋지지만 부럽지는 않다. 나도 나의 방향이 있고 때가 되면 가게 될거니까, 아직은 최종 방향을 정하지 않았고, 그걸 이번에 이직하고 나서 천천히 정하기로 한것이다.
이렇게 내가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던 일들과, 머무르는 동안 생겼던 인연들을 하나씩 정리하고 나니 오랜만에 내가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온전히 나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다. 지난 몇주를 돌아보니, 내가 회사를 그만두면 하겠다고 적어두었던 이직 후 TODO 리스트 중 첫 두가지를 이미 하고 있었다.
离职 TODO List:
#1 무언가 기운을 받을수 있을것 같은 곳으로 떠나기 – 따리 (성공)
#2 이름도, 배경도 모르는 상태에서 시작하는 인연, 가능하다면 끝까지 가보기 (실패)
#3 나를 돌아보기
#4 …
#5 …
#6 …
#7 …
이미 다 했으니 1번과 2번은 줄을 그어 지웠다. 성공과 실패다.
따리에 온지 거의 두달만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3 나를 돌아보기”를 하기 시작했다. 이력서를 다시 열어봤다. 수정하거나 다음 직장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동안 내가 했던 일들, 내가 만들었던 것들, 그리고 내가 버텨왔던 시간들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고 싶었다. 읽다 보니 웃기기도 하고, 아깝기도 하고, 부끄럽기도 하고, 멋지고 자랑스럽게 보이기도 했다. 여러가지 생각이 동시에 떠올랐다.
나는 회사를 떠난게 아니라 이직이라는 명의로 “그때의 나”를 잠깐 내려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제 그걸 다시 들고 갈지, 아니면 아예 다른 것을 선택할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아마 이 리스트에 적어둔 것들을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내가 가야 할 방향이 조금은 더 분명해지지 않을까 싶다.
사실 이 리스트에는 총 일곱개의 항목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