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사가 독특한 영화는 아니다. 탕웨이가 남편을 살해하고 다른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 영화는 김태용 감독의 <만추>도 있고, 형사가 여자에게 홀려 수사에 차질을 빚는 영화는 장윤현 감독의 <텔미썸띵>도 있다. 오히려 구성이 독특하다고 해야 하나? 박찬욱 감독의 말 대로 다른 영화는 해준이 서래가 범인인 것을 인지하는 지점에서 끝나버린다. 그러나 이 영화는 그 뒤를 더 다뤘다. 영화는 해준의 근무지가 부산에서 이포로 변경되는 것을 기점으로 1부와 2부가 명확하게 나뉜다. 산에서 시작한 영화는 바다에서 끝난다. 1부는 산에서 일어난 기도수 살인사건을 중심으로 형사 해준이 용의자 서래를 관찰하면서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스릴러에 가깝고, 2부는 바다를 끝으로 서래가 해준을 관음하면서 사랑을 표현하는 멜로에 가깝다. 감정이 사건의 진실을 오도하고, 사건이 감정보다 비대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의 모든 것들은 산에서 바다로, 바다에서 더 깊은 심연으로 묻혀 보이지 않을 사랑을 향해 질주한다. 사랑이라고 말하지 않아도 분명 사랑인 사랑이 있다. 발화하지 않아도 보여주는 행동으로 사랑임을 확인할 수 있는 사랑이 있다. 이 영화는 사랑이라는 말을 발화하지 않은 자들의 사랑 이야기이다.

2.

<헤어질 결심>의 출발점은 탕웨이다. 박찬욱 감독과 정서경 작가는 탕웨이를 주인공으로 한 멜로영화를 제작하고 싶었고, 캐스팅을 위해 여자주인공의 국적을 중국으로 설정했다. 캐스팅이 먼저 이루어지고 그다음 영화 제작이 시작됐다.

극 중에서 서래는 외국인이지만 한국어를 능숙하게 구사한다. 구어체가 아니라 문어체로. 한국인들은 실생활에서 잘 사용하지 않을법한 고풍스러운 용어들을 내뱉는 말 사이에 섞어서 사용한다. 그녀의 이러한 언어사용법은 해준이 서래에게 호기심을 갖게 되는 시작점이다. 익숙한 언어에서 흘러나오는 묘한 낯섦이 호기심을 낳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해준과 서래 사이에는 이 호기심을 뛰어넘은 감정들이 배태된다. 한국어를 사용하는 서래는 어수룩하지만 비밀스러운 느낌을, 중국어를 구사하는 서래는 서늘하고 강인한 힘을 지닌 여성의 모습을 보여준다. 그 때문에 캐릭터에 더 많은 서사를 부여하지 않아도 두 언어 사이의 간극이 송서래라는 캐릭터를 완성해나간다.

이 영화를 해준의 시각에서 본다면 이는 무너지고 깨어짐에 관한 이야기이다. 해준은 경찰이다. 최연소 경감이다. 스스로 거기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 험한 일을 하는 경찰이라 해도, 품위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인물이다. 하여 편한 복장이 아니라 늘 정장을 입고 편의성을 위해 운동화를 착용한다. 립밤과 핸드크림을 가지고 다니며, 물티슈는 필수다. 이와 동시에 해준은 가정적인 남자다. 늘 결혼반지를 끼고 다니며 이포에서 생활하는 아내 정안을 위해 가끔 내려가 밥을 차려주는 것은 물론 같이 석류를 담그고 장을 본다.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사람으로도 경찰로서도 항상 품위를 지키고자 했던 해준의 신의는 서래를 만나 깨어진다.

서래는 해준이 품위를 지키기 위해 하는 노력을 보았다. 홍산오를 잡기 위해 편하디편한 호카오네오네 운동화를 신고 뛰어다니면서도 정장에 넥타이까지 한 모습을 보았다. 똑같은 양복을 12벌이나 갖고 있고 그걸 돌려입으면서 마음을 다잡는 경찰 해준의 모습을 보았다. 그런 해준이 자신의 범죄를 묵인하면서 증거가 담긴 핸드폰을 바다 깊이 버리라고 했을 때, 서래는 붕괴된 해준의 모습을 사랑이라고 이해했다. 자욱한 연기를 탓하면서 담배를 버리라고 말하는 대신 담뱃재를 털어주는 해준의 행위를 사랑이라고 이해했다. 장막이 걷히면 모든 것이 똑똑히 보이는 안개처럼, 기도수 살인 사건의 진상이 파헤쳐지자 서래와 해준은 그저 범인과 형사였다.

서래는 멈추지 않았다. 농무가 짙은 이포로 왔다. 피를 무서워하는 형사 해준을 위해 서래는 시체의 피를 거두어준다. 해준의 품위를 지키기 위해 서래는 초록색인지도, 남색인지도 모를 치마를 입고 해준을 위협할 수 있는 증거를 바닷속에 버린다. 쥐를 묻어주던 양동이로 자신도 함께 묻어버린다. 서래는 결심만 한다면 언제든지 죽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 엄마를 보내드린 뒤, 서래는 유골함과 함께 펜타닐 4알을 지니고 다녔다. 가정폭력을 서슴없이 자행하던 남편과 빚쟁이들에게 쫓기는 두 번째 남편 등, 서래의 주위에는 위험한 남자들뿐이었다. 해준처럼 안전한 남자는 처음이었다. 해준과의 헤어질 결심은, 해준에 대한 서래의 사랑의 증표다.

그러나 서래와 해준은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다는 이유로 직접 깊은 감정을 나누지 못한다. 이 둘 사이에는 번역기가 있어야 한다. 감정이 최고조에 달할 때에도 두 사람은 번역기가 있어야만 소통이 가능하다. 둘 중 한 사람이라도 번역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면 서로의 말을 알아차릴 수 없는 것처럼, 의지없이는 절대 지속될 수 없는 관계이다. 대체로 해준이 서래의 말을 번역해 듣는다. 화자가 발화하고 청자가 그 언어를 변화된 언어로 다시 듣기까지 시간 차가 존재한다. 이 시간 차 때문일까? 아니면 번역의 오차 때문일까? 서래에 대한 이해는 늘 조금씩 어긋난다. 같은 주파수에 놓이지 못하는 사랑은 모호한 형체를 띠고 있다. 해준이 처음 서래에게 느꼈던 감정은 이 어긋남 속에서 왔다. 어긋남과 모호함 속에서 커져 온 마음은 서래가 바다에 묻히고 난 뒤 비로소 똑바로 보였을 것이다. 슬픔이 파도처럼 밀려오는 사람이 있고, 물에 잉크가 퍼지듯이 오는 사람이 있다고 했던가? 서래에 대한 해준의 마음은 이제 파도처럼 밀려와 잉크가 퍼지듯이 오랫동안 물들여질 것이다.

3.

안개라는 상징이 등장한다는 이유로 영화를 보고나면 자연스럽게 김승옥의 <무진기행>이 떠오른다. 단편 <무진기행>이 없었으면 영화 <안개>가 없었을 것이고 영화 <안개>가 없었다면 노래 <안개>도 없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박찬욱 감독이 안개를 들을 일도 없었을 것이고, 이 영화가 나오지 않았을 수도, 혹은 늦게 나왔을 수도 있다. 문학을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갖고 있는 습관이자 얄팍한 지식으로 무진기행과의 연관성을 파악해보고자 했으나 비약인 것 같다. 영화나 소설이나 드라마나 때로는 느끼는 게 다일 때가 있다. 구조가 어쩌고, 사랑이 어쩌고 해도 나는 이 영화가 미묘한 영화라고 느꼈고, 그 잊혀지지 않는 미묘함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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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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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잘 읽었습니다. 저도 테마곡 안개가 참 좋습니다.
    뜬금없는 의식의 흐름이지만 어린 시절 고향의 호수 앞에서 느꼈던 한여름 해뜨기 전의 엷은 안개의 아름다움을 느낄수 있는 시공간이 없네요.

  2. 글 잘 읽었습니다. 헤어질 결심이 아무리 탕웨이 연기와 막장줄거리라는 이름으로 여기저기서 가루가 되게 까여도 사랑의 다른 색을 보여줬다는 것만으로도 볼만한 영화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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