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 This is us가 시즌2를 방영중인 현재(1년전 글이라 이젠 시즌3까지 방송되었네요), 방영된지 일년도 더 지난 시즌1에 관한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1회부터 18회까지 보면서, 일단은 영어공부에 아주 적격인 드라마라는 생각이 들었고, 영어를 떠나서 이 드라마에 대한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제대로 보고 제대로 쓰려고, 나름대로 열심히 나무도 보고 숲도 보려고 했는데, 자판에 손을 얹고 보니 어째 내 옆에 장작만 수북이 쌓여진 것 같다. 장작이라고 해서 하찮다는건 아니다. 그저 드라마를 보면서 느낀 크고 작은 감정의 조각들이 모양을 갖추지 못한듯한 느낌이다.
체계적인건 늘 나와는 거리가 멀었으니, 그저 의식의 흐름에 따라 써야겠다.
드라마는 고도비만인 Kate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서른 여섯 생일을 맞은 그녀, 체중계위에 선다. 흔들리는 체중계와 마찬가지로 흔들리는 그녀. 발을 헛디디면서 뒤로 넘어진다. 위태로워보이는건 몸무게뿐만이 아닌 그녀의 삶 자체였다. 이어지는 Kate의 독백, 엄마아빠와 닮은 가정을 꿈꿨고 근사한 커리어를 가진 여성으로서의 서른여섯을 꿈꿨지만, 그 어느것도 이룬것이 없다. 무거운 것이 삶의 무게인지 아니면 몸무게인지 이젠 구분이 가지 않는다. 나의 눈에 Kate는 골드미스도 아닌 흔한 싱글녀를 대표하는 것 같다.
그녀와 같은날 생일을 맞이한 쌍둥이 Kevin, 그는 오랜 기간 시트콤에서 남자보모역할을 하는 삼류배우이다. 인기도 있고 돈도 있고, 배우라는 이름에 걸맞게 잘 가꿔진 외모를 유지한 훈남이지만, 그 역시 위태로운 인생인건 마찬가지다. 자신의 극중 역할을 혐오하고 있으며, 여러 여성들과의 즉흥적인 만남이 이어지는 가운데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를 잘 모르고 있다. 나의 눈에 Kevin은 꿈과 현실사이에서 고민하며 자신의 재능을 눈치채고는 있으나 동시에 그것을 의심하는 아티스트로 보인다. 감춰두려고 하면 한번씩 심장을 뛰게 만드는 나의 재능, 그러나 내놓기에는 세상으로부터 거부당할가봐 내가 먼저 의심해보는 나의 재능. Kevin은 딜레마속에 갇혀있다.
같은 날 태어난 Randall, 유색인종이지만 백인보다 잘나가는, 사회 통념상 가장 성공적인 모습으로 비춰진다. 매일 정장에 넥타이를 매고 출근하며 아름다운 아내와 두 딸을 둔 전형적인 중산층이다. 아침에는 조깅으로 동네를 뛰고 그러지 못한 날에는 밤에 집에서 런닝머신위를 달린다. 현재의 안정을 온몸으로 떠메고 있는 가장이다. 유난히 책임감이 강한 Randall은 입양아였다. 서른 여섯 생일날, 그는 생물학적 아버지(biological father)를 찾아내는데 성공한다. 초라하고 늙은 친부를 향해 당신이 버린 아들은 현금으로 밖에 세워진 저 근사한 자동차를 샀다는 말로 그간의 설움을 토해내듯이 보이지만, 그는 아버지를 집에 데려가서 손녀들을 만나게 한다.
혹자는 부모와 자식관계에서 부모는 영원한 을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어릴때는 아이야말로 을이다. 그것이 본능이든 무엇이든, 어린 아이는 무조건적으로 부모를 사랑하며 부모에게 의지한다. 부모의 가치관과 행동에 상관없이, 성인이 되기전의 아이는 부모와의 친밀한 관계에서 안정을 느낀다. 그런 을로서 36년간 아버지를 만나지 못했던 Randall은, 비록 양부모의 넘치는 사랑을 받았지만, 서른 여섯인 이 순간에도, 아버지를 향해 울부짖고 있을지라도, 자신과 닮은 그와의 친밀감을 필요로 하는 온전한 을이었다.
William, 그가 바로 Randall의 생물학적 부친이다. 중절모에 늘 스웨터조끼를 입고 있는 그는, 아들을 버린 아버지치고는 꽤 당당하고 의연해보인다. 우리의 문화속에서 있음직한 아들을 껴안고 울면서 용서를 구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아들의 불만을 피하지 않고 받아들이면서 아들의 집에 머무르면서 누리는 물리적인 쾌적함, 손녀딸들이 주변을 맴도는 가정의 따뜻함이 좋다고 솔직하게 말하는 이 노인은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예술가였다.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Randall의 가정에 없던 분위기를 불어넣고, 그들의 삶의 일부분이 되었다. 피아노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스텝을 밟을줄 알고 시를 읊듯이 말하는 아버지, 그와 Randall이 서로를 모르고 산 세월이 안타까워지게 만든다.
사실 알수도 있었으나 모르고 살았으니, 이 중심에는 Randall의 양모인 Rebecca가 있다. Rebecca는 삼둥이를 임신한 엄마였으나, 출산당일 셋째 아이를 사산한다. 자상하고 책임감이 강한 남편의 격려하에 둘은 같은 날 버려져 병원에 온 흑인아이를 입양하지만, 아이를 볼때마다 잃어버린 자신의 아이가 생각난다. 셋째에게 지어줬던 이름을 부를때마다 더욱 그러하다. 결국 아이의 생부인 William을 찾아낸 Rebecca는 자신의 갈등을 실토하고, William의 제안으로 아이에게 새로운 이름을 지어준다. 비로소 자신의 핏줄인 셋째를 보내주는 Rebecca, 그녀는 온 마음으로 Randall을 사랑하고 아이가 자신의 곁을 떠날가봐 늘 전전긍긍한다. 그러므로 William의 존재에 대해서는 남편에게도 비밀이다. 그걸 보면 여자는 참으로 무서운 존재인것 같다.
이 드라마에는 훌륭한 남편이 참 많이 등장하는데 그중에서도 Rebecca의 남편인 Jack이 으뜸인것 같다. 그닥 훌륭하지 못한 아버지 밑에서 자란 그는, 삶의 모든 중요한 순간에 한번도 빠짐없이 틀린 결정만을 하는 아버지를 보면서, 자신은 그러지 않으리라 다짐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 남자, 안쓰러울 정도로 헌신적이다. Jack은 열심히 일하며 과감하고 책임성있게 아름다운 아내와 아이들을 지켜준다. 경제적으로 그리고 감정적으로 이 가정을 떠멘다. 자신의 핏줄인 아이들과 입양한 아이 Randall에게 그의 말을 빌리자면 “인간이 줄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을 준다. Jack이 태권도장인지 카라테도장인지 하는 체육관에서 사범의 안내하에 Randall을 등에 올리고 푸쉬업을 하며 아버지로서 아들의 버팀목이 될 것을 다짐하는 대목에선 작가의 필력과 감독의 연출에 탄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Jack에 대해선 참으로 할말이 많다. 남자다움, 책임감, 달콤함, 정열적임, 부지런함 등 단어를 두루 섞은후 흔들어서 만들어낸 남자같다. 잘생긴건 그의 장점에 속하지도 않는다. 그는 평생을 자녀들의 삶의 등대와 같은 존재가 된다. 기독교에는 한동안 “What would Jesus do?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라는 사고방식이 유행했는데, Jack의 자녀들은 중요한 순간에 “What would my father do?(아버지라면 어떻게 하셨을가)”라고 생각한다. 삶의 길이가 짧아서 그랬던지는 몰라도, 그는 인간으로서는 거의 오류를 남기지 않은 훌륭한 가장이었다. 살아서도 죽어서도 가족구성원들을 한곳에 모아주는 보이지 않는 긴 팔을 소유한 남자, Jack은 그런 남편이고 아버지였다.
그외에도 이 드라마에는 아름다운 사람들이 많이 나온다. Randall의 아내, 비만클리닉에서 만난 Kate의 남자친구 Toby, Kevin의 첫사랑인 Sophie, Kevin을 스쳐지나가는 Olivia와 Sloane, 산부인과 의사 Dr. K, 아주 짧게 나오는 소방원과 그의 아내. 그들은 흠이 없는 완벽한 사람들이 아니지만, 삶의 순간들에서 진솔하게 주변사람들을 대하고 삶의 무게를 온전히 받아들이며 다시 용기를 내어 이 세상을 살아간다.
써놓고 보니, 드라마 리뷰라고 쓰고 인물소개라고 읽어야 할것 같은 부족한 글이다. 게다가 스킬이 부족하다보니 스포일러를 안하고 드라마 평을 쓰는데 실패했다. 변명을 해보자면, 이 드라마는 누구랑 누가 사귀고 결혼하고 누가 죽고 이런게 중요한 드라마가 아니다. 지구위에는 하루에도 수없이 많은 사람이 태어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결혼하고 생육하고 사망한다. 이 드라마에서 중요한 것은 삶의 이런 중요한 순간들과 어제가 오늘같은 새로울것 없는 흔한 순간들에서 우리와 비슷한 사람들은 어떤 생각과 고민을 했고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가 핵심이다.
드라마의 전개를 따라가다보면 내가 하고 싶었던 마음속의 말들 또는 내가 삶에 치여서 미처 다독이지 못했던 감정들을 작가가 대신 주인공들의 입을 통해 말해주고 표정을 통해 드러내준다. 우리는 Kate가 되었다가 Kevin과 공감하며 Randall을 이해하게 되고 Rebecca나 Jack의 가족사 즉 原生家庭에서 우리의 부모의 모습을 보기도 할 것이다.
당신이 지금 행복하다면, 슬프다면, 홀로라면, 가정을 꾸렸다면, This is us를 보실것을 추천한다. 감사할 것이고, 위로받게 될 것이며, 배우자관을 수립하게 될 것이며, 가족중심으로 살고 싶어 질 것이다.
This is us, 이 드라마는 곧 우리의 이야기다.
【2018.01.30 本文首发于个人公众号】
긴 긴 드라마를 간추려서 너무나 잘 정리해 놓았습니다. 캐릭터별로 그리고 작가님의 생각을 곁들이면서 말임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너무나 겸손하심다 ㅋㅋ 개인적으로 글중에 “써놓고 보니, 드라마 리뷰라고 쓰고 인물소개라고 읽어야 할것 같은 부족한 글이다. 게다가 스킬이 부족하다보니 스포일러를 안하고 드라마 평을 쓰는데 실패했다. 변명을 해보자면,” 을 지우시면 더 좋을거 같슴다. ㅋㅋ 왜냐면 저와 같은 독자는 읽으면서 잘 쓰셨다는 생각밖에 안햇슴다. 스킬이 부족하다는 생각은 1도없이. 작가님만이 전할수 있는 이야기를 잘 읽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하고, 응원하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보통 드라마나 영화 소개 할때 스포하면 욕(?)먹더라구요. 근데 앞으로도 스포 없는 리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응원감사합니다. 우리나무의 롱런을 기원합니다.
리뷰를 읽고, 드라마를 보고 싶어졌다면 작가님의 소기의 목적은 달성하신 셈이지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저도 아직 시즌2는 반밖에 못봤습니다. ㅜㅜ 시즌3도 다 나왔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