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있은 기회에서 많은 소수민족들을 만나게 되었다. 서로가 서로를 모르는 얼굴이었음에도 믿음으로 마음을 주고받으며 어울려 가는 모습이 너무 따스했다. 모두 혼자 외지에 나오다 보니 서로 같은 민족끼리 뭉치거나 혹은 비슷한 나이끼리 친구가 되거나 혹은 처음 같이 앉았던 사람들끼리 함께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어느 하루 나도 우연하게 아침밥을 먹다가 한 상에 앉은 몇몇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고 우리는 그날 오후 함께 원명원으로 발길을 돌리게 되었다. 우리 넷은 온 고장도 민족도 나이도 다 서로 달랐다. 다만 그냥 함께 아침밥을 먹다가 서로에게로 한발 다가섰을 뿐이었다.
원명원에 들어서서 얼마쯤 걸었을까? 갑작스럽게 터져 나오는 환성 소리에 앞을 바라보며 두리번거렸다. 무엇도 없다. 다시금 막 달려가는 그들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들은 “너무 고와.”를 마구 외치며 달리기도 하고 두 팔을 활짝 열고 빙글빙글 돌기도 하고 떨어진 은행나무잎을 휘 뿌리기도 하며 즐거워했다. 별다르게 희한한 것도 없는, 다만 은행잎이 노랗게 깔린 은행나무길이었다. 게다가 전날에 진눈까비가 내린 탓으로 길은 질척질척했고 많은 사람들이 밟고 다닌 탓으로 더러는 어지러워지기도 했다. 나는 그들의 뒤에서 느릿느릿 따라가며 달리지도 환성을 지르지도 않았다. 다른 세 명은 연신 셀카를 찍느라 부지런히 표정을 바꾸며 셔터를 눌러댔다. 똑같은 길이였음에도 또 똑같은 나무였음에도 이 나무 저 나무에로 자리를 이동해가며 행동을 바꾸고 표정을 바꾸기에 여념이 없었다.
“안 찍으세요?”하고 한 여자가 자신들만 바라보고 서 있는 나에게 물어왔다. 나는 그냥 나중에, 하고 짤막이 대답했다. 왠지 나 혼자 이방인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단순한 기쁨을 보고 있노라니 괜히 나도 함께 기분이 좋아지고 있었다. 그런 나를 그들이 막 끄당겨주었다. 그러면서 함께 찍자고 했다. 나는 이끌려가듯이 다가갔고 아주 단정한 표정으로 자칫 엄숙해 보이기까지 하는 표정으로 사진을 찍었다. 이때 한 여자가, 우리 은행잎을 공중에 날리며 사진을 찍자고 했다. 손이 얼어든다고 하면서도 나는 또 그들을 따라 했다. 그런데 두 손으로 가득 노란 나뭇잎들을 쥐여서 허공에 훌훌날리고 그 샛노란 은행잎이 하늘하늘 춤추며 떨어질 때 나는 저도 모르게 활짝 웃었다. 그들은 또 함께 힘껏 뛰어 오르며 환성을 크게 지르면서 사진을 찍자고 했다. 나는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의식하고는 사양하며 내가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들은 그냥 함께 뛰자고 하며 누군가에게 도와달라고 하자고 했다. 그런데 이때 지나가다가 걸음을 멈추고 아까부터 우리를 지켜보던 육십 대 초반쯤 되였을 할머니 두 분이 다가왔다. 우리가 찍어줄 테니 넷이 뛰어보란다. 나는 그들과 함께 힘껏 솟구쳤다. 그런데 순간적으로 셔터를 누르지 못했다. 다시 뛰었다. 또 잘 안 되었다. 또다시 그러기를 여러 번 반복하는 동안 나는 어느새 와- 하며 높은 소리로 외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그리고 괜히 기뻐졌다. 하늘을 날 것만 같다. 행복하다. 그냥.
그날 집으로 돌아오며 나는 아까 왜 처음에 그렇게도 무감동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이가 많아서? 이런 은행나무숲을 많이 보아 와서? 그런다면 이유가 될까? 아니다. 나보다 나이가 더 많은 여자도 있었다. 또 나는 오늘처럼 이런 은행나무길을 걸어본 적도 없다. 그럼 도대체 나는 왜 그들과 달랐을까? 그들보다 더 많은 감정을 경험해서? 아니다. 어느 누군들 복잡한 감정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고 있지 않으랴? 그런다면 도대체 왜서?
순간 나는 그들에게는 유년기의 심장이 고스란히 간직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아무것도 아닌 미세한것들의 흔들림이나 반짝임이나 빛깔이나에 까르르 웃음을 터뜨리던 때 묻지 않은 맑은 마음이 있었다. 순진한 마음으로 무엇이라도 아름답게 바라보며 감동하던 마음이 있었다. 어디에든 구속되지 않는 자유로 세상을 향해 활짝 열어가며 받아들이던 가벼운 마음이 있었다. 절대로 고뇌나 번민이나 우울 같은 것이 범접할 수 없는 찬란하게 빛나는 마음이 있었다.
그렇다면 나에게는? 나의 심장은 감동의 기능을 정상적으로 발휘할 수 없는 심장이였을까? 어쩌면 나의 심장도 한 장의 연록의 잎사귀 같은, 섬세한 바람결 같은, 반짝이는 별빛 같은 따스하고 고운 심장이었을 것이다. 아니라면 내가 어떻게 그들의 기쁨을 바라보면서 그 기쁨에 가슴 깊숙이까지 물들 수 있었으며 또 함께 단순한 기쁨으로 설렐 수 있었을까? 그리고 그러는 자신에 대해 기뻐하며 오래도록 진정할 수 없는 가슴으로 벅차오를 수 있었을까?
나는 다만 그런 나의 마음을 여태 스스로 외면하고 살았을 뿐이다. 나는 어쩌면 어른이 되어간다는 것의 의미를 감감 모르며 어른의 흉내를 내기 시작할 때부터 스스로 심장을 굳히어가고 있었는지 모른다. 쉽게 감동하지 않기로 자신을 강박하며 매 순간순간의 감정을 가슴으로 느끼기보다는 머리로 이해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미 자신이 경험한 것으로 겪어보지 못한 많은 감정들을 단정 짓고 외면하고 막아내며 적당한 거리에서 바라보며 담담한 표정을 만들어내며 살았을 뿐이다. 미처 알지 못했던 기쁨을 맛보기보다는 세상은 그저 그럴 거라며 크게 웃을 것도 크게 울 것도 없다는 생각으로 자신을 동여매며 살아왔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이 어찌 마음의 설렘을 멈추는 것이랴만 나는 유치하게도 그렇게 살아왔다.
천상병 시인의 ‘귀천’이라는 시가 생각난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노을빛 함께 단둘이서
기슭에서 놀다가 구름손짓하며는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다시 읽어도 너무 아름답다. 이토록 아름다운 시를 쓴 시인은 아름다운 하루하루를 살았을까? 아니다. 그는 어쩌면 누구보다도 더 어둡고 힘들고 숨 막혔을지도 모른다. 다만 매 순간순간 새롭게 다가 오고 있거나 아직 다가오지 않은 미지의 것들에 스며있을 아름다움에 대한 간절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며 그 아름다움을 순진한 마음으로 감동할 수 있는 심장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상은 험하기도 하다. 그 속의 인간들은 험악할 때도 있다. 그 속에서 살기란 험난한 경우도 많다. 그러나 이미 경험한 것으로 미래의 풍요로운 행복을 포기한다는 것은 바보스러운 짓이다. 우리의 세상은 순간순간 시간의 흐름에 따라 실려 가고 순간순간 새롭게 다가온다. 그 언제라도 반복은 없다. 하다면 그 무엇도 같은 눈물일 수도 같은 웃음일 수도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제 다가올 것들을 내가 미리 느껴 본 적은 절대로 없다. 그리고 스스로 옹송그리며 만들어낸 단단한 껍질 속에 잘 숨겨진 채 많은 걸 경험하지 않으려고 애써온 나의 심장은 어쩌면 유년기로 잘 보존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발랄하고 호기심으로 가득한 눈길로 세상을 바라보고 싶다. 티없이 맑고 평화로운 마음으로이 세상을 껴안고 싶다. 활기차고 고운 목청으로 이 세상을 노래하고 싶다. 늘 새롭게 다가오는 시간에 실려 오는 아직 가보지 못한 미지의 고장의 신비함이나 아직 닿아보지 못한 가슴의 체온을 한껏 깊숙이 껴안을 것이다. 그리고 무작정 아름다운 환상을 일렁이며 말랑말랑한 감동을 하고 싶다. 그때면 다 보여오리라. 누군가의 입가에 꽃처럼 피어오르는 고운 미소의 향기도, 마주 바라보는 눈빛의 그 결 고운 무늬도. 그 심금을 울려주는 온갖 빛나는 것들에 우리 같이 사랑스럽게 콩닥이는 유년의 심장으로 한껏 즐겨보지 않으려는가?
네, 즐겨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