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와 한국어는 같은 언어인데 표기법은 서로 다르다. 표기법은 글을 바르게 쓰는 규칙이라는 뜻에서 ‘정서법(正書法)’, 또는 '서사법(書寫法)’이라고도 하는데, 조선과 중국조선어에서는 ‘철자법’, 한국에서는 ‘맞춤법’이라고 달리 부른다. 이들 표기법은 이름만 다른 게 아니라, 구체적인 규칙 조항에서도 이런저런 차이를 보인다. 

▲ 일제 시기 우리 글을 지키는 일은 곧 나라를 지키고 목숨을 지키는 일이었다. 우리 글의 첫 표기법의 제정에 참여한 학자 최현배와 그의 친서이다.


◆ 표기법, 왜 필요한가?

  우리 글뿐만 아니라 문자를 가진 많은 언어들에 표기법이 있다. 잘 알다시피, 중국의 한자를 쓸 때 한 획 한 획 쓰는 순서나 방법이 일정한데, 이것이 바로 정자법(正字法)이라고 하는 한자의 표기법이다. 또, 영어 단어를 쓰려면 스펠링(spelling)을 알아야 하는데, 이는 영어의 철자법(orthography)인 것이다. 표기법은 다름 아닌, 한 언어 공동체에서 구성원들이 읽고 쓰는 데 편리함과 효율성을 도모하기 위해 글로 적는 법을 통일한 규칙이다.

  우리 글인 한글은 소리글자인데 소리 나는 대로 적는다고 해 보자. “꽃이”를 누구는 “꼬치”, 또 누구는 “꼬지”(함경도 방언), 또 다른 이는 “꼬시”(20세기 중후반 서울 방언)라고 각자의 발음대로 쓴다고 생각해 보라. 여간 알아 보기 어려운 게 아닐 것이다. 또, 맞춤법의 한 내용이기도 한 띄어쓰기를 틀리게 썼다가는 방에 들어가셔야 할 아버지께서 자칫 가방에 들어가시는 수도 있다.

◎ 아버지 가방에 들어가셨다.(X)

     아버지가 방에 들어가셨다.(O)

▲ 이 가방에 혹시 아버지가? ^^


◆ 첫 표기법

  우리의 글이 처음부터 표기법을 달리했던 것은 아니다. 현대 조선어문자의 표기법이 처음 제정된 것은 1909년의 『국문연구의정안』이나, 결국 국권을 상실함에 따라 시행되지 못하고 만다. 제정되어 처음 시행된 표기법은 1912년 일제 시대 조선총독부의 관할 하에 제정된 『보통학교용언문철자법』이다. 이는 일제가 한반도에 대한 식민지 통치를 강화하기 위한 것으로, 실제로 일본인 학자 여럿이 이 작업에 참여했다. 나라 잃은 서러움을 떠올리게 하는 이 두 표기법은 우리 글 표기법의 변천사를 논할 때 제외되기도 한다.

  우리 글의 주인인 우리가 주체가 되어 제정하고 시행한 표기법은 1933의 『한글 마춤법 통일안』(1933년 당시에는 "맞춤법"이 아닌 "마춤법"이 바른 표기였다.)이다. 20세기 초는 시기적으로, 우리의 언어문자 생활이 굉장히 혼란스러운 때였다. 이전까지 특권층만 배워서 사용하던 문자가 백성들에게까지 보급되면서 문자의 사용자는 급속히 늘어났으나, ‘고추장’처럼 매일 먹는 음식의 명칭마저 조선팔도에서 만주까지 그 부르는 이름이 서로 다르고 적는 법이 달랐다고 한다. 재미있는 예로, 연변에서 흔히 '염지' 또는 한어 발음대로 '찌우차이'라고 하는 채소는 한반도의 경기와 강원 지역에서는 ‘부추(분추)’, 충남에서는 ‘’, 전라에서는 ‘’, 충북과 경북에서는 ‘정구지’, 경남 서부에서는 ‘소풀(소불)’, 제주에서는 ‘세우리’라고 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에 우리의 말과 글의 연구모임인 조선어학회에서 『한글 마춤법 통일안』을 제정하고, 3년 뒤인 1936년에 어휘의 표준 형태에 관한 『조선어표준말모음』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이를 계기로 혼란스러웠던 우리의 문자 사용과 난립하였던 어휘가 어느 정도 정리되고 통일된다. 또한 이 맞춤법은 현행 세 가지 표기법의 바탕이 되었다. 

▲ 『한글 마춤법 통일안』(1933)의 표지와 첫 페이지


◆ 언제부터 달라졌을까?

  1945년에 이르러, 조선(한)반도에서 일제를 몰아낸 기쁨은 곧 남북 분단의 아픔으로 이어진다. 산천만 둘로 갈라진 게 아니라 표기법도 바로 그때부터 맥을 달리하게 된다.

  조선에서는 해방 직후에는 『한글 마춤법 통일안』 (1933)을 따랐으나, 점차 표기법 개정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1946년 당의 명칭을 두고 “로동당”으로 할 것인지, “노동당”으로 할 것인지를 논의하면서 두음법칙(頭音法則)의 문제가 제기되었다. 이를 시작으로 1947년부터 본격적으로 언어 규범에 대해 연구하였고 1948년에 조선의 교육성 내에 설치한 조선어문연구회에서 『조선어신철자법』을 제정하기에 이른다. 

  평양을 수도로 정한 조선의 입장에서 기존의 『한글 마춤법 통일안』 총론 제2항의 “표준말은 대체로 현재 중류사회에서 쓰는 서울말로 한다.”라는 조항을 포함해 남쪽 중심의 언어 규범이 불편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분단 이후의 상황에 맞춰 고칠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1954년에 발표된 『조선어 철자법』은 “표준어는 조선인민사이에 사용되는 공통성이 가장 많은 현대어 가운데서 이를 정한다.”로 명시하였으며, 다시 1988년에 발행된 『조선말규범』의 문화어발음총칙에서는 “<조선말발음법>은 혁명의 수도 평양을 중심지로 하고 평양말을 토대로 하여 이룩된 문화어의 발음에 기준한다.”고 명시했다. 

  한편, 한국은 몇 차례의 부분적인 개정 작업을 거쳐 1988년 개정안을 내고 지금까지 이를 따르고 있다. 한국에서 맞춤법에 관한 수정 작업, 나아가 어문 정책의 연구와 수행 작업은 문화체육관광부 소속의 국가 기관인 국립국어원에서 맡고 있다. 최근에는 “짜장면”, “어리바리하다”처럼 원래 비표준어였으나 언중들의 쓰임을 고려하여 표준어로 격상시킨 어휘들을 1~2년에 한번씩 묶어 발표하고 있다.

  중국 조선어에서는 1970년 이전까지는 따로 표기법을 두지 않고, 친선국가인 조선의 철자법을 그대로 따르다가 1977년 처음으로 『조선어철자법』, 『조선어띄여쓰기』, 『조선어표준발음법』, 『문장부호법』을 제정한다. 이는 점차 조선과도 차이를 보이는 중국 조선어의 언어 사용 양상을 반영하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우리의 『조선어철자법』은 여전히 조선의 철자법과 대동소이하며, 주로 중국에서 생겨난 말이나 중국의 특색을 띈 말에서만 차이를 보인다. 가장 최근에는 2016년에 어문 규범 전체를 개정하면서 띄어쓰기 등은 남한의 규정과 동질성을 늘렸고, 일부 한글 자모의 순서와 같은 일부 조항에서는 남북의 공통 결의했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한 부분까지 한 발 앞서 반영하는 진일보한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 우리 글의 표기법 연대기(2015년 쓴 글이어서 2016년 개정 부분을 미처 담지 못함)


◆ 무엇이 다른가?

  중국 조선어의 철자법은 조선의 철자법과 닮아 있는 데 반해, 한국의 맞춤법과는 적잖은 차이를 보인다. 자음의 이름, 배열 순서부터 시작해 다른 점이 실로 적지 않다. 이 중에 글쓰기에서 가장 두드러진 차이를 보이는 두음법칙과 사이시옷의 표기를 중심으로 두 표기법의 차이에 대해 살펴보자.

  • 두음(頭音)법칙: “락엽”과 “낙엽”, “녀자”와 “여자”

  두음법칙은 단어의 첫소리가 “ㄴ”과 “ㄹ”인 한자일 때, 언중(言衆)의 현실 발음에 따라 탈락한 대로, 또는 변한 소리대로 적는 법칙이다. 따라서 한자어인 “로동(勞動)”은 “노동”, “녀자(女子)”는 “여자”로 적지만, 영어 외래어인 “라디오”와 “로봇”은 “나디오”나 “노봇”으로 적지 않는다. 한편, “남녀’에서 “녀”는 앞의 “녀자”와 같은 한자임에도 불구하고 단어의 첫머리에 오는 소리, 즉 두음이 아니기 때문에 탈락하지 않고 “남녀”라고 그대로 적는 것이다. 그러나 “선열(先烈)”이나 “비율(比率)”의 “열”과 “율”처럼 두음이 아닌데도 현실 발음을 존중해 두음법칙을 적용하는 예외적인 경우도 있다.

  • 사이시옷: “노래말”과 “노랫말”

  사이시옷의 표기는 한국의 맞춤법과 우리의 표기법을 가장 이질적으로 느끼게 하는 규칙의 하나다. 이는 단어와 단어가 합쳐서 새로운 단어를 만들 때, [ㄴ] 소리, 또는 [ㄴㄴ] 소리가 덧나거나, 뒤에 오는 단어의 첫소리가 된소리로 바뀌고 앞에 오는 단어가 모음으로 끝날 때, 이를 표기하기 위함이다. 주로 고유어+고유어(잔칫집[잔치찝]), 고유어+한자어(방앗간[방앋깐]), 한자어+고유어(수돗물[수돈물]), 일부 한자어+한자어(곳간[곧깐] 외 5개)의 합성어에만 표기하는데, ‘만둣국’이나 ‘경찰섯길’처럼 오히려 가독성(可讀性)이 떨어지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한편, 조선의 표기법 개정의 역사를 돌이켜 보면, 조선의 철자법에도 한때 사이시옷에 대한 규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대나무의 잎을 뜻하는 “대잎[댄닙]”의 “대”와 “잎” 사이에 “’”를 찍어 “대’잎”처럼 시옷이 아닌 사이표를 표기했다. 그러나 이 규정은 문자 대신에 부호를 사용하는 것은 적절하지 못하다 하여 폐지되었다. 대신에 이를 발음의 규칙으로 정하여 읽을 때에만 따르도록 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두음법칙과 사이시옷에 대한 서로 다른 규정을 보면 서로 다른 표기법의 주된 차이는 표기의 원리를 어디에 두느냐 하는 데 있다. 다시 말해, 조선은 의미가 같은 형태는 하나로 고정해 일관되게 적는 원칙(예: 녀자/남녀, 수도물/하수도)을 우선시하였다면, 한국은 한글의 표음문자(소리대로 적는 문자) 특성상 의미도 중요하지만 관례와 일반 언중의 발음을 존중해, 이를 표기에 적극 수용(여자/남녀, 수돗물/하수도)하는 쪽을 택한 것이다.  

▲ 한글을 창제한 세종대왕은 후세에 표기법이 세 가지로 달라질 줄은 미처 몰랐을 것이다.


◆ 표기법이 다시 하나 되는 그 날을 기대하며

  조선족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을 읽다 보면, 세 표기법 중 어느 표기법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글들이 적지 않다. 어느 한 표기법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며, 가히 혼란스러운 조선족의 언어 현실을 여실히 보여 준다.

  한 언어에 서로 다른 세 표기법, 그렇다면 일반 언중의 한 명으로서 ‘나’는 어떤 표기법을 따라야 할까? 중국 조선족으로서 조선족 독자들을 대상으로 쓰는 글이라면 중국 조선어 철자법을 따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문제는 그리 간단하지 않은 듯하다. 학교에서 배운 중국 조선어의 철자법은 기억 속에 희미해져 가는데,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로 접하는 도서나 우리 글 중 대부분이 ‘한국산’이다. 한국의 ‘맞춤법’은 교실에서 배운 적은 없지만 나날이 자연스럽게 익숙해진다. 또한 한국과 관련된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한국의 표기법을 새롭게 익혀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가 없다. 특히는 인터넷으로 우리가 사는 공간이 점점 가까워지는 이 마당에, 내가 쓴 글을 조선족 친구들만 읽으라는 법도 없다.

 ▲ 아름답고 과학적인 우리 글

  표기법이 여러 개이지만, 아직은 서로의 글을 알아보지 못할 정도는 아니니 다행스럽다고 해야 할까. 조선과 한국의 언어학자들은 이미 80년대부터 표기법 통일의 필요성을 제기해 왔고, 지난 10년 가까이 공을 들여 남북 분단 이후 첫 공동 사전인 『겨레말큰사전』을 함께 편찬하고 있다. 학자들이 모여 서로의 이견을 좁혀 가다 보면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새로운 표기법 “통일안”을 만드는 그 날이 오지 않을까 싶다.

  사회언어학자 김하수 교수님의 말씀처럼 표기법은 법이나 윤리가 아니며, 표기법의 선택에 어서 도덕이나 신념에 앞서, 편리함과 효율성이 중심이 되어야 마땅할 것이다. 표기법이 어서 하나로 다시 통일되어, 우리가 글을 통해 더욱 막힘 없이 생각을 나누면서 서로에게 한 발 더 가까워지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이 글은 wechat 공중호 '지행자(ID: zhixingzhe512)' 2015년 3월 28일자에 실린 필자의 글을 조금 깁고 고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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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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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와~ 이렇게 잘 정리되어 있는 고퀄의 콘텐츠를 읽을수 있어서 참 좋습니다. 솔직히 우리가 지금 매일 사용하고 있는 위챗에서도 “녀자”를 입력하면 자동으로 수정되어 “여자”가 추천되고, “비률”을 입력하면 “비율”이 연관 추천어로 제시됩니다. 위챗뿐만 아니라 현존하는 모든 입력창들이 다 그러합니다. 아마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표기법을 표준화하여 输入法로 정한거 같습니다. 중국어를 놓고보면 简体랑 繁体가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접한 한글은 하나였습니다. 궁극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사용하는것이, 더 많은 사용자를 확보하고 있는것이 표준화가 될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지금까지는 그게 한국의 표기법이니, 중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모든 서비스들에서도 이걸 사용하는것이고. 하지만 Theater이면 어떻고 Theatre이면 어떻습니까? ㅋㅋ 모두 “극장”을 의미하면 되지 않을가요? 그런데 지금 학교를 다니는, 조선어 표기법으로만 시험을 봐야하는 학생들에게 조금 미안한거 같습니다. 그래도 简体와 繁体처럼 너무 다르지 않아서 다행입니다.

    1.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위챗에 그런 기능이 있는지는 몰랐네요. 혹시 폰의 입력 시스템이 가진 맞춤법 검사 기능이 아닐까 싶은데요? 폰의 입력 시스템은 개발할 때 당연히 사용자가 많은 남한의 맞춤법을 채택하겠지요. 다만, 서로 다른 표기법이 사용자들에게는 혼란을 가중시키고 스트레스를 더하기도 합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조선어로 시험을 봐야 하는 학생들한테는 매우 심각한 문제가 되고요. 그런데 곧 조선어는 대학 시험에서도 제외된다고 하니 암담합니다. ㅠㅠ

  2. 좋은 글 감사합니다. ‘아버지 가방’을 보니 정겹습니다. 정규교육은 조선어로 받았지만 아무래도 한국 열독물에 많이 노출되다 보니, 저의 철자는 언녕 뒤죽박죽이 되었습니다. 그래도 철자는 좀 신경쓰면 수정은 가능한데, 저의 띄어쓰기는 정말 이젠 돌이킬수 없는 강을 건넜습니다. 뭐가 우리식이고 뭐가 한국식인지, 심하게 혼돈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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