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속 배움

나의 직장


내가 이 글을 발행할 때에는 이미 사회의 기준에 걸맞는 ‘안정적인 직장’에 안착하여 세속에 대한 배움과 탈속에 대한 반성을 치열하게 진행하고 있는 중일 것이다.

세속과 탈속.

세속에서의 선은 탈속의 악으로 간주되고

탈속에서의 선은 세속의 악으로 상정된다.

그렇게 날개를 싹뚝 자르고나서 이젠

신성한 외피까지 벗겨지니

열과 기침, 근육통과 피곤함이 몰려온다.

이러한 신체적 고통이 미래를 예언이라도 해주듯이

여태껏 제대로 체감해보지 못한 ‘현실’의 갑옷이 

새 옷 형세를 하며

나의 몸통에 씌워질려고 애를쓴다.

이 경험의 모든 순간은 낯설고 불편하고 혼돈스럽다.

인식으로서의 ‘현실’과 실재로서의 ‘현실’ 사이에는 

기표와 기의 만큼 깊고 엇갈린 간극이 존재한다.

그 간극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바로 ‘체감된 경험’이다. 

실재로서의 ‘체감된 경험’은 피범벅이다. 아니, 

인정이 넘쳐난다. 

반면 인식에 의해 습득된 경험은 점잖은 언어로 물려 받을 수 있지만 신체의 습득을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고만다. 

그만큼 냉정하다는 말이다.

정신과 육신의 싸움은 항상 치열했다. 이들 싸움이 격화될 수록 나의 건강 상태는 급락하여 정신마저 쇠약해지는 듯 했다.

이때 독신한 종교 신앙자는 나에게 믿음의 길을 안내하고

비판적인 예술가는 나에게 속세의 가식을 떨쳐버리라고 당부하며

처세술에 능한 자는 나에게 연옥의 고통을 견디는 대가로 천국(지옥)에 도착한 것을 환영한다고 말한다. 

향후 수 십년, 세속에 대한 배움과 탈속에 대한 반성이 어떠한 층위에서 이루어지는 지에 따라 나의 이 “소원 성취”에 대한 가치 판정이 달리 확정될 것이다.

현재 나에게 주어진 유일한 방패는 부정적인 에너지를 긍정적인 에너지로 전환시킬 수 있다는 그 믿음의 힘 뿐이다.

 (믿음의 힘에 관해선 전전 편의 글 <묘하다 묘해>를 참고할 것.)

이제 

실어증으로 충만한 세속의 늪에서 진정한 알레고리 인간이 되어 

시체더미로 쌓아 올린 세상을 몸소 경험하면서

염원하던 그 ‘은혜’가 숨어 있는 곳곳을

한번 

파헤쳐 보시게나.

12.03/ 12.07/ 12.08/ 12.17/ 12.26/ 12.27/ 12.28/ 12.30/ 1.13작성 및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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