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ChatGPT 더러 나의 논문을 대신 쓰게 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챗지피티와 챗을 하면서 나의 논문을 완성해나가는 것에 대한 글이다. 이에 관한 나의 경험담을 소개하거나 나의 주장을 필력하는 글도 아니다. 이러한 논문 작성 행위에 대해서 함께 토론해보고자 하는 글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이에 대한 나의 입장을 세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글의 발단은 이러하다. 내가 한창 기말 페이퍼에 시달려서 서론 부분을 쥐어짜내고 있던 와중에 친구가 말을 걸어 왔다. "챗지피티의 도움을 받아봐. 네가 쓰려는 글의 기본 정보를 알려주고, 걔더러 이에 관한 추가 정보를 제공하라고 하고, 네가 쓰고자 하는 큰 틀을 정해서 질문을 던져봐. 그렇게 몇 차례 주거니 받거니 하면 글에 대한 구상이 세워질거야."
친구의 말을 듣는 순간 거부반응부터 생겼다. 워낙 챗지피티를 이용한 부정행위가 많았고, 기존에 내가 챗지피티더러 교수한테 보낼 이메일을 교정해달라고 했을 때 그 효과가 썩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얘를 이용해서 쓰다간 내가 큰 코를 다칠 수도 있겠구나"라는 위험의식까지 생겼다.(교수한테 보내는 메일을 지나친 정중한 표현, 공문서 격으로 작성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친구는 자기가 챗지피티를 사용하는 장면까지 보여주면서 제안을 해왔다. "정말 도움되는 수단이야. 시간 절약도 많이 돼. 얘가 쓴 글을 그대로 베끼는게 아니잖아? 얘와 토론하면서 얘가 제시한 정보와 내용에 따라 네가 일부는 가져오고 일부는 수정하고 또 일부는 너의 생각을 보충하다 보면 금방 완성 돼. 난 이제 얘 없으면 안 된다니깐."
챗지피티와 토론한다는 말에 잠깐 솔깃해졌다. "토론을 하다보면, 그 다음 구절을 어떻게 매끄럽게 이어나가야할 아디이어도 생길까?"하는 자그마한 기대도 생겼다. 그래서 곧바로 챗지피티한테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논문 주제와 이미 작성한 서론 한 단락을 던져주면서 얘더러 이에 대한 논리적 흠집을 짚어내라고 했다. 적어도 열곱은 오갔던 것 같다. 겨우 힌트를 얻을 만한 것이 나왔다. 그러나 신대륙을 발견한 것 같은 쾌감은 전혀 없었다.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해서, 또는 얘가 정확하게 이해할 만큼 내가 자세하게 표현하지 않아서, 주고 받는 과정이 즐겁지가 않았다. 그야말로 영혼 없는 대답이었다. 정확하지 못한 표현을 이해하려는 챗지피티도 힘들고,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문자로 서술해야 하는 나도 힘들었다. 이렇게 힘든 과정 끝에도 내가 얻은 것은 그저 아주 미세한 힌트 뿐이었다. "이게 과연 도움되는 수단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얘가 내 논리의 흠집 또는 앞 뒤 문맥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은 부분을 짚어내기를 바랐던 것이다. 그러나 돌아오는 답변들은 그저 표면적인, 교과서와 같은 모범답안들이었다.
그뿐만이 아니다. 설령 내가 챗지피티와 아주 흥미진진한 토론을 진행하고, 그 덕분에 챗지피티의 글귀에서 키워드나 핵심 문장을 찾아냈다고 한들, 그것이 나의 사고방식을 훈련/단련시키는데 과연 도움이 될지 의문이 들었다. 왜냐하면 내가 능동적으로 생각을 확장시킨 것이 아니라 챗지피티가 작성한 글에서 주어 담을 만한 단어나 문장이 있는지를 찾아내는데 집중하게 되기 때문이다.(이 점이 인간 대 인간의 토론과 인간 대 챗지피티의 토론의 차이라고 생각된다.인간 대 인간의 토론은 무의식적으로라도 이 토론에서 서로가 이기려는 경향이 있어서 그것이 역으로 생산적인 토론을 낳을 때가 많다. 그러나 챗지피티는 나의 말을 받아서 확장시키려는 겸손한 태도를 갖고 있는 듯하다. 심지어 자기의 입장을 내가 주문하는 대로 이리저리 바꾸는 것을 보고 있자니 세상에 조작가능하지 않은 게 없는 것 같은 회의감조차 들게 된다.)
거기에 집중하다 보니 내 뇌의 뉴런과 시냅스들이 작동을 멈춘 것 같았다. 챗지피티와 토론을 해도 "하늘이 흐렸다. 비가 왔다. 땅에는 물이 고였고, 그런 길을 걸으니 내 신발도 젖었다."와 같은 꼬리에 꼬리를 무는 글을 쓰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앞뒤 문장이 논리적으로 이어지려면 결국 내가 능동적으로 알고 있는 정보들을 조합해서 그 다음에 올 문장을 창작해야 한다고 느껴졌다.
그럼에도 아직 챗지피티에 대한 일말의 기대가 남아있는 것은, 내가 진행한 훈련/토론이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일수도 있겠다는 생각과 학술생산에서 인공지능이 선행연구과 같은 기본정보를 바탕으로 하는 분야들을 담당하면 그 효율을 훨씬 높일 수도 있다는, 그리고 그것이 인공지능과 함께하는 세상이 돌아가는 자연스러운 방식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남아있기 때문이다. 마치 복잡한 수학공식을 사람의 손으로 일일이 계산하던 시절에서 이제 그러한 계산과정은 컴퓨터에게 맡기는게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 된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나의 사고방식을 훈련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도 한 편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