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15년 전의 “앙까?”
“앙까?(압니까)” ㅡ 2011년, 백청강 가수가 무심코 뱉은 연변말은 한국 사회에 깊은 인상을 남겼고 곧 유행어가 되었다.
그전까지 한국 사회에서 희화화의 대상이었던 연변말이 당당한 ‘매력’으로 작동할 수 있다는 희망 섞인 신호처럼 읽히는 풍경이었다.
당시 필자는 한 칼럼에서 이렇게 적었다.
“’앙까?’라는 한마디가 텔레비전 화면을 가득 채웠다. 문화의 힘이 경제논리를 거스른 순간이었다. 일반적으로 언어의 선택은 경제적 위계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나 백청강의 ‘앙까’는 그러한 질서를 거스르며, 연변말이 한국 대중문화 속에서 하나의 매력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 <흑룡강신문> 2011.06.03
그로부터 15년이 흐른 2026년, 다시 텔레비전으로 그를 보니 무척 반갑다. <1등들>이라는 여러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들만 모인 무대인데, 그의 미성과 고음은 여전히 독보적이다.
다만, 그의 말투는 달라져 있다. 한때 ‘앙까신’으로까지 불리던 그에게서 더는 강한 연변 말투가 들리지 않는다. 대신 그는 크게 흠잡을 데 없는 서울말을 구사한다.
그렇다면 그는, 그리고 우리는 왜 말투를 바꾸는가.
2. 표준어라는 권력
지역 방언에서 표준어로의 이동은 드문 일이 아니다. 한 사람만의 변화로 설명될 문제가 아니라는 얘기이다.
중국에서 조선어학과 교수로 일하는 한 친구는 서울 체류 시절, 동대문 가게 주인의 “어디서 오셨어요?”라는 질문 앞에서 애써 말끝에 “요”를 붙이며 서울말을 흉내 냈던 경험을 떠올린다. 그는 그때의 모습이 스스로 ‘구차했다’고 말한다. 중국 조선어 표준어 사용자임에도 불구하고, 낯선 한국어 표준어의 장벽 앞에서 위축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이러한 현상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한국의 지방 방언 화자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난다.
제주 출신의 한 국문학과 교수 역시 자신의 에세이집에서 비슷한 경험을 기록한 바 있다. 1990년대 중반, 서울에서 공중전화로 전화를 걸 때면 주변에 사람이 있는지 살피고, 사람이 있으면 잘 안 되는 서울말을 억지로 사용했다는 고백이었다.
이처럼 서울말은 특정 집단만이 아니라, 다양한 지역의 화자들에게 보이지 않는 기준으로 작동한다.
그리고 그 기준은 화자가 자신한테 ‘자연스러운 말’이 아니라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말’, ‘평가받지 않는 말’을 하도록 만든다.
말투가 단순한 소통의 수단을 넘어,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게 하는 사회적 신호가 된 것이다. 어떤 언어도 그 자체로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다. 다만, 그 언어를 바라보는 사회적 시선과 권력이 그 위계를 만들어낼 뿐이다. 언어는 권력이 비추는 거울이다.
3. 언어 자본으로서의 표준어 활용
표준어로의 이동 현상은 우리말이나 한국만의 특수한 사례가 아니다.
미국에서도 공적인 상황에서 흑인 화자가 표준 영어로 발화를 조정하는 사례는 널리 보고되어 있다. 특히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은 공식 연설에서는 표준 영어를 사용하면서도, 흑인 공동체 내부에서는 발음과 억양을 조절하며 청중과의 거리를 좁히는 방식으로 언어를 선택해 사용했다.
이는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의 ‘언어 자본(language capital)’의 문제와도 맞닿아 있다.
오바마는 상황에 따라 서로 다른 언어적 자원을 조율하며,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더 넓은 사회를 동시에 연결해 왔다. 이러한 언어 사용은 사회언어학에서 말하는 ‘코드 전환(code-switching)’의 대표적 사례다.
그가 표준 영어와 흑인 영어를 전혀 조율하지 않았다면, 지금과 같은 정치적 확장성을 얻기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따라서 이러한 언어 선택은 정체성의 포기가 아니라, 맥락에 맞게 자신의 언어 자원을 조정하는 하나의 ‘사회적 스킬’이다.
연변에서 연변말이든 중국 조선어 표준어든 충분히 ‘언어 자본’이 되지만, 한국 사회에서는 그 말이 ‘국적·계급·소수자’라는 낙인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연변말 화자가 서울말을 쓰는 것은 새로운 언어 환경에서 ‘언어 자본’을 재편성하는 행동에 가깝다.
4. 서울말에 대한 보이지 않는 ‘강요’
표준어는 많은 나라나 지역에 존재하지만, 그것이 작동하는 방식은 사회마다 다르다.
중국에서도 표준어인 푸퉁화(普通話)는 공적인 영역과 교육 현장에서 압도적인 지위를 점한다. 이는 국가가 지향하는 의사소통의 효율성이라는 명분과 결합되어 있으며, 개인에게는 사회적 상승을 위해 필요한 일종의 ‘자격’처럼 작동하기도 한다. 다만, 한국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일상적인 방언 사용이 곧바로 ‘사회적 낙인’으로 이어지는 심리적 문턱은 상대적으로 낮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서울말의 요구는 왜 더 강하게 나타나는가.
한국어, 조선어, 중국조선어는 하나의 언어지만, 서로 다른 국가와 사회가 각기 표준화를 진행해 온 결과, 다중심 언어적 상황을 이루고 있다. 이 과정에서 동일 언어 내부에 정치적·사회적 경계가 중첩된 특수한 구조가 형성되어 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말투는 단순한 지역의 표시를 넘어, 국적이나 체제, 때로는 사회적 위치를 드러내는 표식으로까지 읽힌다.
한편, 다중심 언어임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경제적·문화적 영향력의 차이로 인해 남한 표준어가 사실상의 중심으로 작동하는 경향이 있다.
여기에 더해, 한국 사회는 오랫동안 언어의 단일성, 순수성에 대한 강한 언어 이데올로기를 지켜온 측면이 있다. 이는 표준어를 소통 수단 이상으로 ‘정상’과 ‘정체성’을 규정하는 기준으로 강화하는 경향을 낳는다.
그 결과, 서울말은 중립적인 선택지가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검열 기준’으로 작동하게 된다.
물론, 이 기준은 명시적으로 강요되지 않는다. 다만, 일상적인 상호작용 속에서 은근하게 작동하며, 화자가 스스로 자신의 언어를 조정하도록 만든다. 사회언어학적으로 보자면, 이는 외적 강제가 아니라 내면화된 규범에 가깝다.
5. 유독 무거운 ‘연변말’의 무게
연변말이 다른 방언보다 유독 “고향이 어디예요?” 같은 질문을 수반하는 배경에는, 역설적으로 연변 말투가 ‘범죄’나 ‘희화화’의 기호로만 소비되는 한국 미디어의 비뚤어진 시선이 자리 잡고 있다.
여기서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아야 할 문제가 하나 더 있다.
왜 같은 ‘방언’임에도 불구하고, 연변말은 다른 지역 방언보다 더 쉽게 의식되고, 화자에게 더 큰 압박으로 작용하는가 하는 문제이다.
중국에서는 다양한 방언이 공존하는 환경 속에서, 적어도 일상생활에서는 지역 방언의 차이가 한국에서만큼 큰 긴장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말투가 단순한 지역 차이를 넘어 화자의 출신과 정체성을 드러내는 신호로 읽힌다. 특히 연변말은 ‘지역성’ 외에도 국적과 경계, 정체성의 의미까지 함께 떠올리게 한다.
따라서 “어디서 오셨어요?”라는 질문은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 상대를 분류하고 위치를 짓는 사회적 행위가 된다.
다시 말해, 어떤 말은 자연스럽게 흘러가지만, 어떤 말은 그 자체로 설명을 요구받는다. 문제는 그 차이가 언어 자체가 아닌, 그것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에서 비롯된다는 점이다.
이 지점에서, 같은 ‘방언’이라는 이름 아래에서도 각기 다른 무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6. 맺는말
요약하면, 특정 화자가 서울말을 선택하는 것은 개인의 취향이나 정체성의 문제로만 환원될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그 선택을 요구하는 사회 구조의 반영이며, 보다 넓은 언어 환경 속에서 이루어지는 전략적 선택이다.
중요한 것은 “왜 말이 바뀌었는가”라는 질문보다 “어떤 조건에서 그러한 변화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지는가”라는 질문일 것이다.
결국 우리는 모두 어느 정도 ‘백청강’으로 살아간다. 상황에 따라 말투를 바꾸고 내가 머무는 사회 주류의 언어를 익히며, 자신의 ‘다름’을 감추거나 더 드러내기도 한다.
그것은 그 사회에서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요구된 것이며, 다른 한편으로는 더 넓은 사회와 소통하기 위해 학습된 고도의 기술이라 할 수 있다. 즉, 화자는 다변화된 사회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하나가 아닌 여러 개의 목소리를 갖게 된 것이다.
끝으로, 백청강이 연변말을 하든 서울말을 하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 하나, 그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보는 일일 것이다. 그가 자신이 쓰고 싶은 말투를 자유롭게 선택하여,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하는 모습을 오랫동안 지켜보고 싶다.
<1등들>에서 열창하는 백청강 가수(2026)
(이 글은 위챗 공중호 “朝鲜族-蒲公英乘风而飞(조선족 – 민들레 홀씨는 바람을 타고)”에 2026년 3월 31일에 실은 글을 옮겨 온 것이다. )
朝鲜族-蒲公英乘风而飞(조선족 – 민들레 홀씨는 바람을 타고) QR 코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