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둠즈데이 선언문>
1. 우울을 조성하는 미디어 만능 시대에서 무언가에 대해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겨난다는 것 자체가 엄청 소중하다는 것을 알았다.
2. 코로나 시대에 나는 창조력을 상실하였다. 다른 아티스트들은 괜찮으려나?
3. 전시가 하나도 재미없어서 나의 눈과 마음의 문제인지 작품의 문제인지 예술의 문제인지 묻게 된다.
4. 그것은 예술가들이 그토록 이루고자 했던 ”대중미술“의 결과일까? 나름 합리적인 듯한 추측을 해본다.
5. 이번엔 내가 당대미술의 허상에 갇혀 상투적인 아방가르드를 찾아 헤매는 꼰대가 돼버린 것 같다.
6. 그럼 오늘날의 아방가르드는 어디서 어떤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단 말인가? 허공에 대고 주먹을 날리는 기분이다. 아니면 아방가르드의 전복 체제가 이미 새로운 체계로 재편되고 있단 말인가?
7. 소시오패스가 결국 표정 없는 시대의 승자다. 오로지 그들에게만 통제와 소유에 대한 열정이 남아있다. 이것이 과연 인간의 “진화” 방향인가?
8. 우리는 숨막히고 답답하고 마디마디 찢겨지는 와중에 말단 신경이 마비된 고질병을 앓게 되었다.
9. 원래 이토록 견디기 힘든 세계였는가?
10. 예전과 같은 세상에서 살지만 이러한 혼란을 겪게 된 이유는 내 속의 예술의 죽음과 함께 나의 기가 허약해져 김빠진 풍선이 되어버린 것은 아닐까?
11. 그런데 왜 아직도 나는 희망을 희망하는가?
12. 나는 진정 무엇에 설레이고 있단 말인가?!
2024.6.13
<둠즈데이 선언문>에 대한 후기
그리하여 우리는 자만에 대해 자숙하고 그러는 과정에서 스스로를 초월한다.
그렇기에 그 다음 단게에서는 절대로 감정에 힘입은 작품이 나올 수가 없고, 그것이 내가 예전보다 하강 했다는 것 또한 아니라는 것을 이제 깨닫고 진정 그 의미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은 하강이 아닌 상승일 수도 있다.
더욱 강인한 상승의 의지. 그것은 순간의 감정에 휩쓸린 욕구가 아니라 그러한 감정의 분절 속에서 반조가 투영 되는 그러한 상승이다. 그러므로 나는 후퇴하거나 예전보다 뒤쳐지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거센 감정에 몸을 맡긴 자신을 넘어 설려고 노력해 온 그 과정을 넘어, 새로운 대륙의 첫 발을 내딛고 있었던 것이다. 때문에 내 앞에 열린 광경이 너무 낯설어 발자국 흔적하나 없는 곳에서 잠시 갈 길을 잃었던 것이다.
즉 나는 현재, 나의 에너지를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기 시작한 상태에서 이 세상을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이 내가 종말의 증상을 온 몸으로 받아들이면서도 삶에 대한 설레임을 잃지 않게된 이유인 것 같다.
2024.6.21

일종의 성숙임다에, 긍정적인.
둠즈데이가 여기서 어떤 밈임까?
글셰예 어떤 의미로 쓰이는것 같슴까?
나두몰라서 물어보는겜다, 둠즈데이란 단어르.
언어학자라 뭔가 진지하게 설명안해주면 또 장편의 글로 하소연할까봐 내 이 단어 차용 계보를 자세히 설명할께에. 나는 한국 작가 최윤의 미디어 작품 “둠즈데이 비디오“에서 이 단어를 첨 들었슴다. 작품 설명에 있는 한 구절을 따오자면 “둠즈데이(Doomsday)’는 최후 심판의 날을 뜻하며, 『둠즈데이 북(Doomsday Book)』은 페스트(흑사병)가 창궐한 중세로 시간 여행을 하는 내용을 담은 코니 윌리스(Connie Willis)의 1992년작 소설의 제목으로, 1086년에 영국을 점령한 윌리엄 1세가 토지 조사와 조세 징수를 목적으로 만들었던 토지 대장 『둠즈데이 북(Domesday book)』에서 따왔다.“라고 함다. 나는 그 당시 이 단어가 생소해서 그리 잘 이해되지 않았는데 요즘들어 내가 직면한 상황이랑 어찌 잘 들어맞는지 이해를 넘어 계시 받은 기분까지이 들었짐요. 그래서 오마주한겜다.
정복자가 권위를 선포하는 1차적 의미와 내 주위의 부조리와 아이러니와 맞설 것을 선언하는 2차적 의미가 겹친 위에 지니의 지인의 작품 캡쳐를 받아서 지니의 명명이 있었군요.
윌리엄 1세두 이름으 참 괘씸하게 만들었슴다에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