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의 퇴치법인 “망각”

우울을 극복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 한 일이다.


우울을 극복한다는 건 거의 불가능 한 일이다.

어른들도 해내기 어려운 것을 자식들이 더 잘되기를 바란다는 명목으로 비난하거나 야단치거나 정상적으로 "고쳐 놓으려는" 온 갖 수단과 방법은 잔인하기 그지없다. 

우울은 맞서는 것이 아니라 망각해야 하는 것이다.


"필리핀 어학 연수 프로그램에 애를 보내길 너무 잘 한 것 같아요. 고마워요."

지인의 아들은 상하이에서 꽤나 유명한 중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그는 활발한 성격과 태평양 같은 마음가짐이 장점인 아이다. 유독 공부에 능하지 아니할 뿐이다. 엄마는 전형적인 주입식 교육시스템의 전문가인데 아들의 교육에는 이미 수손 두발 다 든 상태였다.

"그래, 이제부터 학교가지 말자." 

아들의 교육에 번거로움 따위를 두려워 하지 않았던 지인이 이런 결정을 내렸던 이유는 딱 하나다.

한 학기를 앞두고 중학교 졸업증을 받을 수 있는 시기에 아들이 끝끝내 "페업"을 하고 말았다. 그토록 활발하던 아이가 급작스럽게 음식도 몇 입 안먹고 가족과 소통도 안하고 매일 늦잠자고 일어나면 게임을 한다.

다들 짐작하는 바로 "그것", 우울의 증조다. 

지인은 너무 속이탄 나머지 회식 자리에서 아이의 이상증세를 털어 놓았다.

"선생님, 그거 우울증 맞아요."

그제야 짐작은 했어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그 단어를 타인의 입으로 확인 받게 되었다. 얼마나 두려웠을까?

"그렇죠..? 저도 의심했었어요. 졸업 직전 학기에 이렇게 학업을 중단한다는 것도 너무 아쉽고…"

"선생님, 어쩌면 이 아이는 이제와서 갑자기 변한 것이 아니라 여태까지 그의 최선을 다 해 버텨 온 것일 수도 있어요. 아쉬운 마음 이해합니다. 하지만 그 마지막 한 학기가 아이를 잡을 수도 있어요."


다행이 아이는 어렸을적 국제학교를 다녀서 영어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어린 나이에 해외로 어학 연수를 보낸다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지만, 지인에게 유일한 희망이였다.

"아이는 적응을 잘 하고 있나요?"

"아이가 너무 좋아해요! 아빠랑도 다시 대화하기 시작했고, 하루에 12시간씩 공부해도 질리지 않는지 즐거워하는게 눈에 보여요."

나도 덩 달아 기뻤다.  

"참… 이토록 대견한 아이를 그렇게 고통스러운 도가니에 빠뜨리게 했다니…"

"그러니까요! 현재 실행하는 교육 시스템은 확실이 문제가 있어요."

하마터면 또 한 명의 아이가 우울의 제물이 될 뻔했다. 

"인간은 원래 심신이 안정된 자연상태일 수록 다 자기 몫을 해내기 마련입니다."

"맞는 말이에요."


요즘따라 "우울"의 퇴치법에 대해 골똘이 생각한 결과, 이것을 극복한다는 마음으로 대응해서는 두 가지 부작용이 일어날 수 있다. 첫째, 우울하다는 것을 더 각인시키게 된다. 둘째, 극복해야한다는 강박에 눌릴 수 있다. 이와 같이 오히려 두배의 에너지가 소모될 수 있는 역효과가 발생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따라서 우울을 극복하려고 억지로 노력하거나 우울 자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회피적 자기기만은 모두 바랍직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이 때 우울의 퇴치법인 망각이 빛을 바란다.

그것은,

주변환경생활패턴을 새롭게 "이전"하고, 

관심의 대상들로 스스로를 "채워" 놓아, 

우울로 가득찬 시간과 공간을 서서히 밀어내어

결국 내가 집중한 삶으로 우울을 망각하게 되는 마법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우울을 느낄 수 있는 것은 당신이 정상이여서 그렇습니다. 

이 뭣 같은 세상마저 소중히 여기려는 당신의 참다운 마음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는 우울이라는 악마를 극복할 수는 없어도 우리의 몸과 마음에 그것이 발아할 수 있는 여백을 내어주지 않을 수는 있습니다.

시공간이 점점 무게 없이 쪼개지는 허무를 경험을 할 수 밖에 없는 오늘 날,

우울은 그 쪼개진 간극 속에서 오히려 우리를 지탱하고 경고하고 우회적으로 보호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울은 그것의 본성과 같이 언제나 인간으로부터 망각 되기를 대기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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