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산책을 좋아한다.
운동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산책을 운동이라고 부르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내게 산책은 마음의 체력을 기르는 일이다. 체력을 길어야만 정신력도 생긴다는데, 나는 마음의 힘이 없으면 몸도 처진다. 그러므로 마음을 씻는 일에 가깝다고도 생각한다.
길가에 늘어선 나무들은 누구를 위로하겠다는 의도도 없이 제 냄새를 내뿜고, 나는 그 냄새를 허락도 없이 한참 들이마신다.
막 돋아난 잎사귀의 풋풋한 향과 흙이 품고 있는 눅눅한 냄새가 섞여 코끝을 스치면, 하루 동안 몸 안에 쌓여 있던 보이지 않는 먼지들이 조금씩 빠져나가는 기분이 든다. 샤워기로 몸을 씻어내는 것처럼, 나무들은 물 대신 바람과 향기로 내 안을 헹궈주는 것 같다. 그래서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면 유난히 내가 조금 덜 무거워진 사람처럼 느껴진다.
요즘은 시간이 조금 생겼다.
예전 같으면 바쁘다는 이유로 지나쳤을 시간들이 이제는 책장 앞에 가만히 앉아 있는 일로 채워진다.
책을 읽다가 눈이 피곤해지면 나는 책을 덮지 않는다. 대신 펼쳐진 책 사이에 얼굴을 묻고 고개를 살짝 젖힌다. 눈을 감고 천천히 숨을 들이마시면 종이 냄새가 난다. 오래된 잉크와 종이, 아주 옅게 남아 있는 나무의 냄새. 그 순간만큼은 집 안인데도 숲길 한가운데 서 있는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책은 결국 나무가 다른 생을 살아가는 모습이니까. 한때 바람을 흔들던 잎들이 이제는 문장을 흔들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은 마음을 이상하게 안심시킨다.
그래서 비가 오는 날이면 더 자주 책장 앞에 앉는다.
창밖은 젖어 있는데 나는 마른 종이 냄새를 맡으며 한참을 가만히 있는다.
꼭 책을 많이 읽지 않아도 괜찮다. 어떤 날은 한 장도 넘기지 못한 채 책을 얼굴 위에 올려두기만 한다. 그 무게가 이상하게 포근해서, 마치 숲이 잠깐 내 얼굴을 덮어주는 것만 같다. 하루에 한 번쯤은 산책을 한 사람처럼 숨을 쉬고 싶어서,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날에도 마음만은 조금 걸어 다닌 사람이 되고 싶어서.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을 달래는 방법 하나쯤은 가지고 살아간다고 믿는다.
누군가는 음악을 크게 틀고, 누군가는 먼 곳으로 여행을 떠난다. 나는 그저 나무 사이를 걷고, 그럴 수 없는 날에는 나무였던 것들 사이에 얼굴을 묻는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다. 생각해 보면 내 하루를 버티게 하는 건 산책 한 번과 샤워 한 번 같은 것들이다.
세상은 여전히 복잡하고 내일도 크게 달라질 건 없겠지만, 몸에 밴 먼지와 마음에 밴 피로를 번갈아 씻어내다 보면 이상하게 또 하루를 살아볼 용기가 생긴다.
어쩌면 사람은 거대한 희망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 아는 작은 의식들을 반복하며 조금씩 내일 쪽으로 걸어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산책과 샤워. 내게는 그 두 번의 위로가, 오늘을 지나 내일까지 데려다주는 가장 조용한 힘이다.

“어쩌면 사람은 거대한 희망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 아는 작은 의식들을 반복하며 조금씩 내일 쪽으로 걸어가는 존재인지도 모르겠다.” 요즘 따라 저도 이런 생각이 듭데다. 뭔가 넘 취약하지무… 몸 상태가 좋을때는 뭐든 다 하고 싶고 할 수 있을 것 같고, 안 좋을 때는 움직여도 피곤하고. 그게 몸에 케케묵은 탁한 에너지를 제때 청소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습데다. 그래서 신체와 정신상태가 좋은 날이 어찌 귀하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