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좋아하지는 않는다. 끈적이는 공기와 쉽게 지치는 몸, 끝이 보이지 않는 더위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여름밤은 좋아한다. 해가 지고 난 뒤의 바람은 낮 동안 세상이 품고 있던 열기를 조금씩 식혀주고, 나무들은 그제야 조용히 숨을 고르는 것 같다. 우리 집 뒤편에는 작은 숲이 하나 있다. 나는 종종 별이와 함께 그 숲길을 걷는다. 나뭇잎은 계절의 가장 푸른 색을 하고 있고, 바람은 잎사귀 사이를 지나며 물결처럼 흔들린다. 그 길을 걷고 있으면 특별한 일이 없어도 마음이 평온해진다. 마치 세상에서 잠시 떨어져 나온 사람처럼.

하지만 밤이 깊어지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여름 저녁의 다정함은 어느 순간 어둠에게 자리를 내어준다. 8시 반을 조금만 넘겨도 숲은 금세 검은 그림자로 가득 찬다. 익숙한 길인데도 낯설어진다. 다람쥐가 지나가며 내는 바스락거림에도 놀라고, 멀리서 사슴이 움직이는 소리에도 괜히 걸음을 재촉하게 된다. 어둠은 늘 같은 모습인데도 사람의 상상력을 키운다. 보이지 않는 것을 자꾸 생각하게 하고, 없는 것마저 있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언제나 너무 늦은 시간은 피했다. 아름다운 숲이지만, 혼자 걷기에는 조금 무서운 숲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달랐다. 우연히 이웃집 친구와 함께 산책을 하게 되었다. 둘이 걷는다고 숲이 밝아지는 것도 아니고, 길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나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고, 어둠도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누군가와 나란히 걷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숲은 전혀 다른 장소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천천히 숲길을 걷고 있는데, 어느 순간 작은 빛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또 하나. 또 하나. 정신을 차려보니 숲 여기저기에 반딧불이 가득했다. 마치 하늘에 있어야 할 별들이 길을 잃고 땅으로 내려온 것 같았다. 작은 불빛들이 어둠 속에서 깜빡이고 있었고, 숲은 내가 알지 못했던 비밀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다.

생각해보면 반딧불은 원래부터 그곳에 있었을 것이다. 내가 몰랐을 뿐이다. 어쩌면 지난여름에도, 그 전여름에도 같은 자리에서 빛나고 있었을지 모른다. 다만 나는 어둠이 무서워 고개를 숙인 채 서둘러 지나갔고, 두려움 때문에 그 빛을 볼 여유가 없었던 것이다. 오늘 반딧불이 특별했던 이유는 반딧불이 많아서가 아니라, 함께 걷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누군가와 나란히 걷고 있다는 안도감이 내 마음속 두려움을 조금 걷어냈고, 그제야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었으니까.

살면서도 그런 순간들이 있는 것 같다. 앞이 보이지 않을 만큼 막막한 날들,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두려운 시간들. 우리는 종종 그 어둠 자체를 무서워한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정말 무서운 것은 혼자라는 감각인지도 모른다. 누군가가 내 문제를 대신 해결해주는 것은 아니다. 길을 환하게 밝혀주는 것도 아니다. 그저 곁에서 같은 방향으로 걸어줄 뿐이다. 그런데 그 사실만으로도 세상은 조금 덜 무서워진다. 그리고 혼자였다면 보지 못했을 작은 빛들이 하나둘 눈에 들어온다.

오늘 밤 숲에서 나는 반딧불보다 동행의 힘을 보았다. 어둠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더 이상 두렵지 않았고, 길은 여전히 밤길이었지만 그 위에는 별빛 같은 불빛들이 춤추고 있었다. 그래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인생에서 좋은 사람은 내 삶의 어둠을 없애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어둠 속에서도 반딧불을 발견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때로는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이미 하나의 반딧불이라는 것을.

오늘 밤 나는, 두려움의 반대말은 용기가 아니라 동행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글을 공유하기:

태어난 김에 잘 살고 싶어진 여니

별거아닌 생각, 소소히 적기연습

작가를 응원해주세요

좋아요 좋아요
9
좋아요
오~ 오~
1
오~
토닥토닥 토닥토닥
0
토닥토닥

댓글 남기기

  1. “인생에서 좋은 사람은 내 삶의 어둠을 없애주는 사람이 아니라, 그 어둠 속에서도 반딧불을 발견하게 해주는 사람이라고. 그리고 때로는 그 사람의 존재 자체가, 이미 하나의 반딧불이라는 것을.”
    참 아름다운 글입니다. 메모하고 갑니다.

글쓰기
작가님의 좋은 글을 기대합니다.
1. 아직 완성되지 않은 글의 초고는 "원고 보관함"에 저장하세요. 2. 원고가 다 완성되면 "발행하기"로 발행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