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가 생전에  늘 하시던 말씀이셨다. "언제 시간이 되면 집안시에 한번 꼭 가 보거라!  거기는 말 타고 활을 쏴서 호랑이를 잡는 용감한 우리의 선조가 살았던 고구려 옛성터가 있다! " 

   2021년 2월 말, 처남댁이 연락이 왔다. "아주버님, 연길(延吉)에 계시는 저의 고모님이 많이 아프셔서 찾아 뵈려고 하는데,  함께 운전해서 가실까요?"  그때는 코로나 전파방지(疫情防控) 정책으로 인해 고속열차, 비행기 등 대중교통을 이용할수 없지만 자차로 운전해서는 갈 수는 있는 상황였다. "우리도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와 누나네 가족을 구정에 못 만나서 … 마침 잘 되었소! 함께 가기오!"  나는 흥쾌히 대답했다. 당시 나는 한국의 직장을 그만두고 천진에 있는 집으로 돌아와 백수로 쉬고 있었고 아내도 여유 시간이 많은 시기였다. 

   그래서 … 나, 아내, 처남댁 3명은 5살짜리 어린조카(처남딸)를 태우고 함께 자차로 운전해서 연길(延吉)로 가기로 하였다.

   우리가 사는 곳은 천진(天津)이다. 百度地图导航으로 연길까지 검색 해 보니, 추천거리가 1,334킬로 16시간 20분으로 찍혔다.  가까운 거리는 아니였다. 우리는 오전 8시에 출발하여 3명이 얻갈아 운전하면서 주유하고 잠깐 휴게실 들리는것 외에 거의 쉬지 않고 달렸다. 

   천진에서 연길까지 가는 코스는 북경에서 할빈으로 향하는 고속도로(京哈高速)를 심양까지 타다가 다시 沈阳绕城高速, 沈吉高速, 抚通高速, 通沈高速 등을 순차적으로 갈아 타게 되는데 …  코로나의 영향으로 고속도로는 차량이 적어서 밀리지 않고 계속 달릴수가 있었다.

   심양(沈阳)을 지나면서 차량은 행렬은 눈에 뜨이게  줄고 고속도로에서는 우리 차량외에는 없었다. 鹤大高速로 갈아 타게 되면서 통화(通化)시를 스쳐지나고 있었는데 고속도에는 집안(集安)시로 빠져 나가는 길을 가르키는 高速道路标识牌가 보였다. 

     "앗!  천진에 돌아갈때 우리 저기 들려요!"  나는 저도 몰래 애처럼 함성을 질렀다.

   우리의 차량은 그렇게 鹤大高速에서 다시 延长高速로 들어서면서 다음날 새벽 2시(보름날)에 연길의 목적지까지 도착하니, 처남댁 부모님(사돈)이 갖춰놓은 고향식 저녁(?)상이 방긋 웃으며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처남이 보낸 水井坊을 열어 사돈(처남 장인) 어르신과 함께  한잔 마시고 피곤하여 대충 씻고 바로 꼰드라져서 6시간 정도 잤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병환으로 누워 계시는 처남댁 고모님께 인사 드리고 홀로 계시는 어머니와 누님 가족을 만나러 연길을 떠나 왕청(汪清)으로 넘어 가서 일주일 정도 머물렀다.

   함께 왔던 처남댁과 조카는 기차(动车)로 먼저 천진에 복귀하였고, 우리 부부는 올때 계획에 없던 집안(集安)시를 거쳐 천진으로 복귀하는 코스로 다시 계획을 잡았다. 집안(集安)시에는 아내의 절친 한명이 살고 있어 마침 겸사겸사 베스트 코스가 될 것 같았다. 

      百度地图导航으로 검색 해 보니, 왕청에서 집안(集安)까지 507킬로 6시간으로 찍혔다. "앗싸! 일찍 출발하면 어둡기 전에 들어가겠는데요 … "  우리 부부는 어머니와 누님 가족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집안(集安)시를 향해 떠났다.   

  우리의 차량은 드디어 鹤大高速을 지나 G331에 들어섰고 … 집안(集安)시내까지 점점 가까이에 오고 있었다. 운전하고 여기까지 오면서 마음은 내내 설레였다. 그 설레임 때문에 휴게소 한번 잠깐 들리고는 줄곧 달렸다.

   드디어 …

   집안(集安) ETC 톨게이트(收费站)를 지나 우리의 차량은 출발전 미리 연락하였던 친구의 아파트 주소지 까지 도착하니 저녁 7시가 되었다. 아내 친구는  주변 친척분들이랑 함께 푸짐한 저녁상을 차려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친척분들은 집안(集安)에 살고 계시는 조선족분들이셨는데 엄청 반겨줘서(非常好客) 즐거운 식사시간이 되었다. 우리 부부는 그렇게 3박 2일 일정이 시작 되었다.

   다음날, 우리 부부는 아내의 친구와 함께 본격적으로 탐방을 시작하기로 하였다.  

   집안(集安)시는 길림성에서 제일 남쪽에 있는 자그마한 도시로 면적은 3,341평방미터,  인구는 23.6만명이며 한족, 조선족, 만족, 회족 등 25개 민족으로 구성 되어 있다.

   압록강을 사이두고 북쪽은 중국 집안(集安)시, 남쪽은 조선의 만포(满浦)시로 양쪽으로 갈라져 있고  4면이 산으로 에워싸여 있는 이곳이  "고구려 옛성터" 이다. 

   일행이 처음으로 간 곳은 고구려유적관람구(高句丽古迹景区)이 였는데, 티켓을 구매해야 입장하여 볼 수 있었다.  150원 하던 풀코스 티켓은 코라나 방역 정책때문에 70원으로 가격이 떨어졌고, 일부 고적은 관람 할 수 없어 우리는 "장수왕릉"과 주변 고적들을 보기로 하였다. 

   입구에 세워 져 있는 비석문에는 중국어, 영어, 한국어, 일본어, 러씨아어 등 5가지 언어로 안내문이 적혀져 있었는데 …

   "장수왕릉을 장군총이라고도 부르다. 현재까지 제일 잘 보존되어 있는 석조 구조로 된 이 무덤은 고구려 제 20대왕의 장수왕릉이다. 기원 5세기에 건축되었다. 무덤은 피라미드형으로 건축되어 <동방의 피라미드>라는 미칭을 가지고 있다. 무덤은 방단계단식 석실무덤이며 정방형이다. 무덤 밑변의 길이는 31.58M이고, 높이는 13.1M이다. 무덤칸은 5층 계단의 중간 부분에 있고 무덤 윗 부분에는 무게가 50여 톤 짜리의 큰 덮개돌을 올려 놓았다. 무덤 위에는 향당(享堂)같은 건축물이 있었다고 한다. 무덤의 변두리에 총 11개의 무게가 10여톤짜리의 큰 돌들을 각 변에 세워놓았다. 무덤의 북동쪽에는 여러개의 작은 배총 무덤이 있었다고 한다. 무덤의 남서쪽 방향으로 200M 지점에 제단 유적이 남아 있으며 면적은 5헥타르 정도이다. 장수왕릉의 능원 설계는 완벽하고 석조 건축 공예는 정밀하고 뛰어나서 고구려시기 석조 건축 능묘의 최고의 걸작이라 할 수 있으며 절세의 능묘라고 할수도 잇다. 이후로 고구려시기 왕릉만한 건축 능묘는 다시 볼 수 없었다." 라고 적혀있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자료에 의하면 장수왕은 삼국시대 고구려의 제20대 왕이다. 재위 기간은 413~490년이며 광개토왕의 장자이며 재위 기간 동안 중국의 분열을 이용해 다각적인 외교를 적극 전개하여 서방의 안정을 기했다. 이를 토대로 왕권 강화와 중앙집권체제 정비에 박차를 가했고 427년에는 평양성으로 천도를 단행했다. 이후 백제·신라 방면으로의 진출을 적극 추진하여, 475년에는 백제의 수도 한성을 함락시키고 개로왕을 살해했다. 신라와는 평화관계를 유지하다가 백제와 군사동맹을 맺자 실직주성을 빼앗았다. 고구려 시기 최대의 영토를 확보한 왕으로 98세에 서거했다고한다.

   고구려유적관람구내에는 우리일행 뿐이였다. 조용한건 좋았지만 장수릉 옆에 참조물(사람)이 없어, 폰카로 찍은 사진으로는 장수왕릉 크기를 알수 없다. 그래서 인터넷에 있는 참조물(사람)과 함께 있는 사진 2장을 퍼다가 함께 첨부 해서 올려 봤다.

[인터넷사진]

[인터넷사진]

   장수왕릉을 에돌아 뒷켠으로 빠지는 졻은 포장도로를 따라가면 훼손 된 "장수왕릉 1호 동반무덤(长寿王凌1号培文)"이 보이는데, 안내문에는 의하면 동반무덤은 "고구려왕족의 묘지이며, 장군총의 계단을 방불게 한다.  계단식 묘실이고 규모가 작으며 주위에 무덤을 보호하는 돌이 없다. 위쪽은 돌무덤이고 높이는 4.72M이다. 바깥쪽에 계단이 있고 1계단의 길이는 9.22M이며 묘실은 3개의 거석으로 둘러싸여 있다. 가장 꼭대기에 거석이 있고 묘실 문은 큰 돌로 봉쇄되었으며 묘실 밖은 조각돌로 깔려있다. 이러한 복고식은 고구려 묘지제도의 다운설을 체현하고 있다."라고 소개 되어있었다. 동반무덤은 왕의 부인들이거나 호위 무사들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배총무덤이라고 한다.

   장수왕릉 1호 동반무덤(长寿王凌1号培文)에서 멀지 않은곳에 정자 하나 보이는데 거기는 "장수수정"이 있다. 장수왕은 이 장수수정 물로 매일 계란을 삶아 먹었다는 전설이 있는데  98세까지 장수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좀더 가면 제단유적(祭坛遗址)이라고 하는 곳(공터)이 있는데, 사진으로 남길 만한 유적이 안 보여서 안내판 비석만 찍었다.

   장수왕릉은 책에나 인터넷에서 소개하던 묘사처럼 그렇게 장엄하고 우아한 느낌이 없었다는 아쉬움이 많았다. 일제시기에 도굴과 훼손을 많이 당했고, 복구 작업을 거쳐서 지금모습이 되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다음 코스인 광개토왕릉비(好太王碑)를 보러갔으나, 거기 또 역시 코로나 방역으로 문을 닫아 먼발치에서 사진만 찍었다. 안내문에 의하면 "광개토왕릉비는 고구려 제19대 왕인<국강상광개토평안호태왕>의 묘비로 <해동 제일의 고비>라는 미명을 가지고 있다. 기원 414년에 세워진 묘비는 호태왕의 아들인 고구려 제20대왕 장수왕이 부친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다. 묘비는 각력응화암으로 만들어졌고 방추형으로 되어있다. 높이는 6.39M이고 너비는 1.34~2M이다, 비석의 벽에는 한자 예서체로 된 비문이 있는데 총 1,775자가 새겨져 있다. 그중 확인 된 한자가 1,590여자 이다. 비문에는 고구려 건국신화, 초기 왕계, 호태왕의 영토개척 공적, 능묘의 관리제도 등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광개토왕릉비는 기존 역사가 가장 유구하고 문자기록이 가장 많은 고구려 시기 고고학 자료이다."

   광개토왕릉비(好太王碑)를 근거리에서 보지 못한 아쉬움을 안고 우리일행은 국내성(国内城) 성벽(城墙)유적과 유적공원(遗址公园) 에 갔다. 

   장수왕릉에서 서남쪽에 있는 국내성(国内城)까지는 약 7키로, 집안(集安) 시정부(市政府)랑 멀지 않은곳에 있었는데 이미 많이 훼손되었지만, 성벽의 모습을 띠엄띠엄 볼 수가 있었다.  

   당일 아침을 늦게 먹은 탓에 점심은 아예 먹을 생각도 안하고 국내성(国内城)까지 돌고 나니 오후 4시도 훌쩍 넘었다. 첫날 탐방은 여기까지 하고 우리는 현지 유명 음식인 高丽火盆을 먹기로 했으나, 전날 현지 친척분들의 우호적인 술 접대로 속이 벌렁거려 다음에 맛 보기로 하고 시원한 냉면집을 찾았다. 집안(集安)시 관광 가시는 분들은 꼭 高丽火盆을 찾아서 드셔 보기바란다. 아래는 인터넷에 나온 사진인데 현지에 사시는 조선족분들의 지혜로 만들어진 요리로, 집안(集安)시 현지 음식중에서 랭킹  1위로 손 꼽힌다고 한다.

[인터넷사진]

   우리가 찾아간 곳은 아내 친구의 사촌 동생이 하는 "진달래불고기"식당이였는데,  장사가 잘 되어 여기는 2호점이란다. 깨끗하고 산듯한 식당은 불고기전문 이였는데 이북식 냉면 또한 명품이였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우리일행은 식후운동 겸 멀지 않은 시정부 광장까지 산책 해 그 동네 저녁풍경을 감상하기로 했다.

   초대형 태양조(太阳鸟) 모양의 동상이 시정부 광장중앙에 세워져 있고 그 아래 비문에는 태양조(일명 삼족오)에 대한 소개 내용이 적혀 있었다.

   첫날 탐방은 이로서 끝났고, 다음날 우리는 그 신비하고 유명한 벽화들이 있다는 洞沟古墓群으로 탐방 가기로 하였으나, 역시 코로나 방역정책때문에 개장을 안한다고 해서 못가게 되었다. 아래는 인터넷에서 퍼온 사진 몇장을 투척한다. 이제 코로나 방역정책이 풀리면 꼭 다시 한번 와 봐야지 !

[인터넷사진][인터넷사진][인터넷사진]

   洞沟古墓群의 벽화에 대해서 친구와 주변 热心好客邻居들과 함께 식사하면서 이야기를 나눴는데, 2000년초 벽화를 도굴 하여 한국에 팔아 넘긴 현지 조선족 여러명이 사형당했다는 … 아픈 사연들을 듣게 되었다. 이야기 내용은 구구절절 여기에 적기보다 아래의 URL 을 눌러서 참고 해 보면 좋을거 같다. (吉林集安盗掘古墓大案终审判决 三主犯死刑)

[被盗壁画] – 인터넷사진

    2020년, 한국의 박정배 감독은 이 사연을 모티브로, 이제훈, 주우진, 신혜선, 임원희 등 쟁쟁한 배우들을 캐스팅 하여 "도굴"이라는 영화를 제작, 개봉하였으며, 영화는 洞沟古墓에 들어가서 지혜롭게(?) 고구려 벽화를 떼어내서 훔쳐가는 과정을 디테일 하게 연출하였다.  

   두번째날, 우리 일행은 압록강변을 따라 강 남쪽에 보이는 조선의 만포(满浦)시를 멀리서 구경하기로 하였다. 여기도 역시 방역정책때문에 한산하고 오가는 사람들이 적었다. 

   사진으로 보이는 건너편은 조선의 자강도 만포(满浦)시, 10여만 인구가 살고 있는 소도시이며, 고무공장, 목재공장, 방직공장, 일용품공장이 있는 지방공업 도시이다. 강 건너편으로는 평온한 분위기와 오가는 사람들이 보였고, 멀리서 나무장작 패는 소리가 들리기도 했다.  

   다음날 일찍 출발해야 해서,  오후에는 휴식을 취하면서 집안(集安)시 시내구경을 하기로 하였다.  농수산물 시장과 번화가를 돌아보것도 여행 코스에서 빠질수 없는 부분였다.

   번화가는 연변지역에서 흔히 볼수 있는 한자와 우리글로 함께 쓴 간판들이 많이 보였고, 길가에서 우리말(이북 사투리)로 서로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시는 어르신들도 보였다. 

   인터넷 자료에 의하면 집안(集安)시에는 약 3만여명의 조선족이 살고있다. 시정부 광장 주변에 붙어 있는 집안(集安)시 홍보용 포스타에는 한복차림을 한 조선족 여성의 모습이 보였고 광장에 있는 초대형 LED TV 에 무한반복(REPLAY)  재생 되는 홍보영상에서도 나오고 있었다. 집안(集安)시는 조선족의 숨소리와 존재감을 느낄수 있는 곳이였으며, 현지의 여러 분야에서 씩씩하게 잘 살고 있는 모습을 엿볼수 있게 되어 기분이 좋았다.

   다음날 … 우리 부부는 코로나 종식 되고 시간이 여유가 있을때 다시 방문하기로 친구랑 약속하면서 아쉬운 마음으로 집안(集安)시를 떠나 천진으로 향했다. 

   친구야 건강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담에 또봐! 

   고구려 옛성터  – 집안(集安)시 다음에 다시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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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의가을

남은 시간 ... 한땀한땀 걸어 온 길과 주변에 들은 이야기들을 글로 꾸며 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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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진부터 연길까지 그렇게 먼 거리를 직접 운전하셨다니 참 대단합니다, 그 장거리운전 덕분에 우연히 집안 방문 스케줄을 잡게 된 거네요. 고구려 옛성터 사진은 대충 본 적 있지만 집안의 다른 사진들도, 심지어 강 건너 풍경도 담긴 신선한 여행글 잘 읽고 갑니다. 저도 연길 갈 기회가 있을 때 집안 들러야겠다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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