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82년생 김지영>이 핫한가 보다. 한국 아줌마들 만나도 그 영화 봤냐고 묻고, 모멘트에도 감명 깊게 봤다는 영화 후기들이 올라오니 말이다. 찾아보니 아직도 상영 중이다. 처음에 개봉했을 때 나는 <82년생 김지영>과 <조커> 중에 <조커>를 택했다. <조커>는 나를 실망시키지 않을 거라는 확신과 동시에 왠지 김지영은  좀 뻔한 스토리일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조커>는 역시 기대 이상 이었다.

어찌 됐건 뒤로 밀린 <82년생 김지영>은 결국 티브이 결제로 보게 되었다. <조커>에는 밀려도 공유는 봐야 하니까. 우스개 소리로 한국 아줌마들은 공유가 남편인데 뭐가 문제냐며 현실성이 떨어진다고들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관에 가서 보면 사람들이 거의 꺼이꺼이 울면서 본단다. 나는 영화를 보면서 잘 우는 편인데 의외로 김지영 스토리에는 덤덤했다. 예상했던 뻔한 스토리 전개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다가 딱 한 장면에서 무너졌다. 친정엄마 씬은 너무 파워풀했다. 내 딸이 왜 이렇게 됐냐며 통곡하는 그 씬이 제일 가슴을 후려팠다. 내가 딸이라 울었는지 엄마라 울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공감이 갔나 보다.

<82년생 김지영>은 육아 이야기 같지만 실은 여자로서 한국사회를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를 더 보여주는 것 같다. 김지영은 어렸을 때 손녀보다는 손주를 귀하게 여기는 할머니가 계셨고 딸보다는 아들을 이뻐하는 아빠가  있었다. 아들이 단팥빵 좋아하는 걸 기억하지만 딸이 크림빵 좋아하는지는 기억 못 하는 그런 아빠, 유럽 출장 갔다가 오면은 아들 선물로 귀한 만년필을 챙기고 딸 둘 선물은 없는 그런 아빠 말이다. 

김지영은 학생 때 버스에서 만난 남학생에게 성추행 일지 성폭행이 될지 모르는 변을 당할뻔 했다가 같은 버스에 탄 아줌마의 도움으로 인해 겨우 위기를 면한다. 뒤늦게 지영의 연락을 받고 마중을 나온 아빠는 치마가 짧다며 지영이를 나무라고 함부로 웃으면 안 된다고 혼낸다. 지영이는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기도 바쁜데 위로는커녕 네가 조심했어야지 하는 식의 아빠의 말에 백번 억울하지만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런 지영에게는 자신의 오빠 등록금을 마련해주기 위해 학업도 포기하고 돈을 벌어야 했던 엄마가 있었다. 교사가 꿈이었던 지영이 엄마의 꿈은 어려서는 오빠 때문에 접어야 했고 결혼을 해서는 육아 때문에 포기했어야 했다. 결국 오빠는 좋은 대학 나오고 잘 나가게 되어도 지가 잘난 멋에 사는 거고 형제의 정은 그렇게 끊기고 연락도 안 하고 산다.

지영이는 그런 엄마 그런 아빠 사이에서 태어나고 자라서 마침내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다. 결혼을 해서 원하는 직장 생활을 하다가 빨리 손주를 봤으면 하는 시댁의 눈치에 결국 임신을 하고 출산을 하게 되고 아이를 돌봐줄 사람이 없으니 직장경력은 당연히 끊기고 남편은 아이가 좀 더 크면 나아질 거라는 막연한 말만 한다. 지영이는 그냥 자기가 하는 일을 계속하고 싶었고, 그 일이 재밌었고 엄마가 되었지만 직장녀이길 원했던 평범한 여자였다. 하지만 이 사회는 그런 그녀에게 가혹했다. 가족들에게는 어쩌면 그녀가 경단녀가 되어 아이를 돌보는 게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단지 일을 계속 하고 싶었던 그녀의 꿈은 가족들에게 욕심으로 비치고, 남편이 아픈 아내를 위해 육아휴직을 쓴다고 하니 시어머니한테는 자신의 귀한 아들 미래나 말아먹는  못된 며느리인 것도 부족해서, 지나치면 안 볼 사이인 제삼자들에게조차 남편 돈으로 커피나 편하게 사 먹는 맘충이었다.

그런 삐딱한 시선들에 대한 분노는 그냥 우울증으로는 역부족이었나 보다. 지영이는 빙의를 하기 시작한다. 드라마틱한 부분이 없지 않아 있지만 그 분노를, 그 억울함을, 그 힘듬을  간과하고 싶지 않았나 보다. 내 새끼를 내가 키우는 건 당연한  일인데 지영이는 왜 그렇게 아팠을까? 지영이의 병은 도대체 누구의 탓일까?

어쩌면 그 누구의 탓이라기도 콕 집어 말하기도 힘들어서 더 힘든 건 아닐지도 모른다. 지영이 엄마 세대는 대개 가정주부였고 육아와 살림이 당연한 세대였다. 한세대 차이지만 지영이 시대는 달라져도 많이 달라졌다. 여자들도 똑같이 교육을 받고 취직을 하고 전문직인 여자들도 많은데 그와는 달리 육아와 살림은 여전히 오로지 여자 몫이라고 생각하는 옛날 관념과 냉정한 현실의 처절한 부딪힘이었을까. 그나마 대안이라고 하는 어린이집도 1년씩 대기를 해야 들어갈 가능성이 있고, 정부 지원 신생아 도우미도 아동학대를 했다는 뉴스가 터지는 세상이니, 엄마가 된다는 건 큰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세상이었다. 딱히 옵션이 없으니 말이다. 커리어는 꿈도 꾸지 말고 오로지 내가 맡아서 키우든지, 아니면 도우미를 수십 번이라도 바꾸면서 아이가 받을 상처 따윈 묻지 말고 그냥 맡기든지, 아님 출산을 안 하든지 말이다. 1도 미만인 출산율이 뭐가 놀라운가. 어찌 보면 그럴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 구조적인 문제는 해결이 안 되고 아동수당 좀 더 준다고 저출산율 문제가 해결될까?

인간은 힘들면 본능적으로 누군가를 탓하고 싶어 한다. 누구 탓이 아니고서야 내가 이렇게 힘들 수가 있나. 남편이 좀 더 잘했으면… 좀 더 배려해줬으면… 좀 더 같이 육아를 해줬으면… 여자로서의 지영이는 덜 힘들었을까?  <82년생 김지영>에서 남편 역할인 공유는 그래도 와이프를 나름 배려하려고 하는 편이다. 말로만 하는 경향이 좀 있긴 하지만 말이다.

딸아이가 만 4살 되고 나니 육아가 가장 힘들었던 순간도 이젠 지난 것 같다. 조리원에서 3주 지내고 딸아이가 50일 되어서부터 오로지 혼자 키운 나로서는 "독박 육아"가 나쁘지 않았다. 조리원에서 기저귀 갈줄도 몰라서 헤매고, 아이가 울면 당황해서 벨 누르기에 급급했지만 시간이 흐르니 익숙해졌고 나름 노하우도 생겼다. 적어도 3년이란 시간을 온전히 아이에게 집중하고 싶어서 한 선택이었고, 돌이켜보면 살면서 가장 잘한 결정이 아니었나 싶다.  좋았던 추억도, 벅찬 순간도 수없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힘들지 않았던 건 아니다. 하긴 뭐가 쉽겠는가. 

육아를 하면서 알지 모를 불안감이 엄습할 때면 내가 주문 외우듯이 나 자신에게 했던 말이 있었다.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자. 누군가는 이 순간에 경력을 쌓고 있고 누군가는 이 순간에 새로운 걸 도전하고 있다면 나도 이 순간만큼은 지나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을 내 아이의 성장을 옆에서 지켜보고 같이 하고 있지 않는가.

딸아이도 어린이집 다니기 시작하니 나에게도 나름 여유가 좀 찾아왔다. 한가한 시간이 그래도 생긴 것이다. 그때부터 운동도 열심히 하고, 데드라인 느긋한 책 번역도 찾아 하고, 글도 좀 쓰기 시작했던 것 같다. 욕심나는 통역 일도 있었지만 회의 통역이라도 하루 종일 해야 하는 일이었다. 아침에 아이를 보내고 3시면 픽업을 가야 하는데 통역일은 아무래도 무리였다. 아쉬운 마음은 접고 할 수 있는 것들에 집중을 하기로 했다.

기회는 늘 뜻하지 않게 찾아오나 보다. 어느 날 문득 날아온 찬스에 나는 망설이지 않고 예스 하기로 했다. 지인이 하던 롯데 문화 센터 왕초보 영어 수업을 해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다. 일주일에 하루만 하는 수업이었고 시간도 딱 오전 시간이었다. 페이를 떠나서, 육아와 병행하기에 맞춤형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 하는 수업이었지만 나름 준비할게 많았고, 이 상황 저 상황 겹치고 나니 갑자기 바빠졌다. 너무 정신없게 돌아쳤는지 감기도 한 달째 낫지를 않았다. 그래도 참 오랜만에 몸은 지쳐 피곤하지만 뭔가 내심 뿌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내가 원해서 시작한 일이니까.

영화로 돌아가서 얘기를 해보자면 영화 보는 내내 좀 답답한 느낌이 없지 않았다. 이야기 줄거리보다는 내가 느낀 지영이가 많이 답답했던 것 같다. 상황보다는 지영이라는 캐릭터랄까. 손주만큼 너도 소중한 손녀라고 말해주는 할머니가 없는 탓이었을까? 아들만큼 너도 귀한 딸이라고 말해주는 아빠가 없어서 일까. 포기하고 사는 엄마를 보고 자라서일까? 그녀는 어려서도, 커서도 힘든 걸 꾹꾹 누르고 참다가 결국에는 크게 병나는 스타일이었다. 

물론 사회적인 차원에서 해결 되어야 할 문제들도  있지만, 쉽게 바뀌지 않는 눈에도 보이지 않는 것들과 싸우면서 여자라는 이유로 힘들어진다면, 나라도 나 자신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 힘든 순간에 버팀목이 되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 있는 건 소중 하지만 누구보다도 내가 나를 더 끔찍이 챙겨야 하지 않을까. 딸아이한테 가끔 해주는 말이 있다. 놀이할 때는 네가 즐거운 게 제일 중요한 거야.인생도 놀이와 딱히 다르진 않으니까.

여자들이 살아가는 게 쉽지 않다고 남자들은 쉽다는 얘기가 아니다. 남편들도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다. 가족을 살려먹어야 한다는 부담감은 어마어마한 것이다. 누구나 살다가 때려치우고 싶을 때가 있다. 더 이상 감당이 안되어 그냥 좀 쉬고 싶은 그런 때 말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살다 보면 때려치우면 안 되는 순간이 온다.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니 말이다. 학생이면 까짓 거 휴학하고, 싱글이면 까짓 거 때려치우고 다른 직장 알아보지 뭐. 그러면 안 되는 때가 온다. 가끔 그런 생각도 해본다. 나도 하는 일이 있어야 남편도 언젠가 힘들면 한 번쯤은 때려치울 수 있지 않을까.

아마도 어른이 된다는 건 그런게 아닐까 싶다. 힘들어도 버티는 거. 쉽게 때려치우지 않는 거. 신기한 건 그러면서, 시간이 흐르면서 단단해지긴 한다. 누가 그랬나. 그냥 먹는 건 나이밖에 없다고. 참 짜증 나게 맞는 말이다. 또 새해다. 요즘 가장 좋아하는 에세이집 타이틀이 끌리는 이유를 알 것 같다. 허지웅의 <버티는 삶에 관하여>. 아마 내가 그 나이가 됐나 보다. 즐겁게 버티고 즐기면서 버티는 법을 더 알아가고 싶은 한 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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쭈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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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라도 하는 일이 있어야 남편도 일하다가 힘들면 한번쯤은 때려치울수 있지 않을까..뭔가 콱 가슴에 와 닿습니더…나도 허지웅 그 에세이 읽고 싶었는데 …언제 한국가면 언니 책장 한번 구경하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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