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에 든 가방이 무겁다. 가방속에는 작은 냄비며 후라이팬이며 칼이며 칼판이며 종류를 따지자면 20가지도 넘는 물건들이 들어있다. 모두 한식조리사실기시험 비물들이다.나는 가방을 들고 공덕역을 빠져나왔다. 저기 산업인력공단의 올리막길이 나를기다리고 있었다.

몇달전부터 나는 한식조리사 자격증시험을 준비했다.

저녁 11시에 퇴근하면 필기시험준비로 책을 뒤적이며 오랜만에 공부라는걸 하다보니 대뇌는 항의를 했다. 리해와 기억을 반복하는 동안 필기시험을 치루었고 다행히 합격했다.

다음은 실기시험이다. 실기는 학원에서 배워야지 독학으로는 힘들다는 글들을 읽고 학원에 등록했다.

때마침 일하는 가게가 사정상 오후 3시부터 출근하게 되여서 기회다싶어 오전타임의 강의를 들었다.

7시반에 일어나 싰고 준비하고 우유 한잔 마시고 학원으로 향한다. 한시간은 강의 듣고 한시간은 배운대로 음식을 만든다.

1인분의 음식을 만드는거라 재료도 적게 나오고 완성품도 깜찍하다. 별거 아닌것 같지만 규격을 많이 따지는거라 2cm, 3cm 같은건 괜찮은데 0,2cm, 0,3cm는 정말 헷갈린다. 분명 0,2cm로 썰었다고 생각되는데 썰어놓고 보면 0,3cm로 돼 있기가 일쑤였다.

배우는 사람들을 보니 조선족들도 몇명 되는데 30, 40대로 보이고 한국사람들은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와 녀자들도 있었고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아줌마들도 있고 30, 40대 아줌마들이 많았다.

완성품이 잘 나오는 날에는 신이 난다. 이 나이에 성취감을 느끼며 학원에, 가게에 이리뛰고 저리 뛰는것이 행복했다.

학원에서 나오면 점심시간이 되는데 집에 갔다가 출근하기에는 시간이 애매하고 가게에 직접 가기는 너무 일러서 원치 않게 혼자 분식집에 가서 제육덮밥을 사먹을때도 있다.그 제육덮밥은 아침도 변변찮게 먹은 나에게 진수성찬이였다. 비록 혼자여서 눈치가 보이긴하지만.

어떨때는 파리바게트에 가서 빵 하나에 우유 한잔 먹고 교보문고에 가서 한쪽구석에 앉아 오늘 필기한 노트를 보며 머리속으로 료리할때도 있었다.

학원강의는 거이 다 들어가고 신청한 실기시험날짜도 다가왔는데 집에서 련습도 못해보고 레시피만 달달 외우고 시험장에 가게 되였다.

국가기술자격증을 받으면 h-2비자를 f-4비자로 바꿔준다고 해서 많은 조선족들이 자격증에 도전해 나섰다.
나도 h-2비자가 만기에 다달았지만 자격증에 도전하는것은 한국에 계속 체류하기 위한것이 아니였다. 내 손길이 필요한 아들애가 중학교에 올라갈때도 되였고 하여 이번 만기때 귀국하면 다시 한국에 안가고 아들곁에 있어줄거였다.

하지만 한국생활을 마무리지으며 도전이란걸 해보고 싶었다. 나도 뭔가 할수 있다는걸, 그 성취감을 느껴보고 싶었고 늦게나마 자기개발을 해보고 싶었다.

공덕동 한국산업인력공단에 가는 그 늘찬 올리막길을 가방을 메고 들고 줄레줄레 오르는 사람들, 도착하여 흰 위생복에 흰 모자 쓰고 긴장하게 시험장에 들어갈것이다.

보다 나은 생활을 위하여 달려온 , 그 늘찬 올리막길같은 길을 달려온 우리들은 오늘 마침표 하나 찍는다.

나도 그속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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