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허헉! 그건 하늘땅이 맞붙는 고통이였다. 그리고 교만이 빚은 결과였다.
첫째를 낳을때 진통제 주사를 맞고 네시간만에 하도 쉽게 순산을 하고는 둘째는 더욱 쉬울거라는 자신감으로 진통제 주사를 거부하다니…
덩치가 나의 세배가 되는 의사 선생이 몇번씩이나 내앞에서 진통제 주사의 부작용이 미약하다며 설명을 해주실때  맞아야 했었는데… 제딴에 깨알같은 속구구를 굴리고 있느라고 그 권고를 무시한것이 잘못이였다.

첫째 딸을 낳고 나서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는 나한테 남편은 당신 이제 사회와 너무 많이 떨어져 있는것 같아서 걱정이 된다고 했던 그말이 나한테 심하게 상처를 줬고 자존심이 몹시 상했던것이다. 그래서 정신을 도사리고 막 취업준비를 하는데 실수로 덜컥 둘째가 생긴것이다. 그런데 진통제 주사를 맞으면 웬지 머리가 더 안 돌아가서 가뜩이나 신심이 없는 사회생활에 더 적응을 못할것 같고 남편한데 마구 업수임 당할것 같은 걱정이 앞섰다. 그래서 거부한 진통제 주사라고 할가… 그리고 외국에서 출산을 하다보니 내 딴에는 진통제 주사비용도 아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다. 남편이 “누가 당신 그런 돈 아껴라고 그래?” 이러면서 버럭 화를 냈다. 마음속으로는 솔직히 기뻤다. 그래도 내 걱정 많이 하는것은 맞구나 하는 생각에… 갑자기 병상에서도 이렇게 내 마음의 전부로 남편한테서 사랑을 갈망하고 확인하고 있는 자신이 약간 불쌍해진다.

두 팔부터 목까지 그물옷이라도 입은듯 문신을 가득 새긴 약간 불량해(?)보이는 녀간호사가 뭔가를 들고 들어왔다. 0부터 10까지 아픔의 정도를 표시하는 표정이 그려져 있는 도표를 나한테 보이면서 지금 어느 정도로 아픈가 손으로 짚어보라고 했다. 0, 1, 2, 3, 4, 5, 6, 7, 8, 9, 10 아픔의 정도를 이렇게 세밀하게 표식을 하다니…웬지 나는 여직껏 내가 불편한지 아픈지 어땠는지 크게 생각을 하지 않으며 남편과 딸애를 맞추어 주며 살고 있는것 같았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우리 딸 정말 좋아할것 같아요!” 혹은 “우리 남편도 넘 고마워하고 있어요!” 하는 말로 나의 마음을 전하곤 했다. 가정을 대표하는 표현이긴 했지만 정작 나 자신의 느낌은 중요하지 않다는 생각도 안받침 되여있었던것 같았다. 그렇게 나는 자신의 아픔에 대해, 기쁨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며 살아왔던것이다.

그런데 그 간호사가 아픔을 표시하는 도표를 쭉 펴며 여러가지 표정을 해석해주며 나의 아픔에 대해서 이렇게 주의깊게 물어봐주니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나는 언제부터 이렇게 살고 있었을가? 난감한 표정의 6을 가리켰다가 급기야 더 이상 참을수 없다는 거의 죽어가는 표정의 10을 가리켰다. 그랬다. 괜찮다고 생각했던 그 아픔은 사실 내 생각보다 훨씬 훨씬 거대한것이였다.

아아… 이 기막히는 내 고통을 멈추게 할수만 있다면…  “누가 저 좀 살려주세요! 제발 진통제 주사주세요” 그 순간만은 애를 낳는것이고 뭐고 할것없이 그냥 그 고통만 멈추고 싶다는 생각만 들었다. 한마디로 더없이 절망적인 고통이였다. 죽는다면 이 고통을 멈출수 있을가? 저기 창문이 보인다. 뛰여 내려볼가. 그냥 벽에 머리를 부딪쳐볼가. “땡큐”와 “쏘리”를 입에 달고 미소를 띠며 체신을 지키던 나 자신은 구중천에 내팽겨치고 “제발 진통제요” 하며 빌다싶이 고함을 질렀다. 그런데 그 문신을 한 간호사가 나를 바른 자세로 누우라고 하더니 이젠 진통제 주사를 할 필요도 없이 곧장 아기가 나올것이라고 한다. 간호사는 내 눈을 똑바로 내려다보면서 아주 엄숙한 표정으로 온몸의 힘을 소리 지르는데 쓸게 아니라 아이를 낳는데 집중하라고 한다. 그러면서  내 눈을 똑바로 보면서 기계로 측정하는 진통의 간격에 맞추어 함께 호흡을 해주며 자신의 호흡을 따라해라고 했다. 흡흡~후~ 흡흡~후~, 뭔가 정리가 되며 아랫배에 어마어마한 힘이 실려진다.

그런데 이건 또 뭐지? 간호사들이 커다란 거울을 들고 온다. 그 거울로 막 나오는 아기머리를 보며 힘을 쓰라고 한다… 순간, 서방문화와 우리 동방문화의 차이가 이렇게 거대함을 실감했다. 아이를 낳을때 남편이 옆에 있는것도 정말로 어쩔수 없는 현실이라 받아들이는것인데 이제 거울까지 보라니… 나는 절때 그 거울을 볼 용기가 없었다. 나는 손시늉으로 보지 않을것이니 거울을 가져가라고 했다.

그 와중에도 부끄럽다는 생각이 먼저인 어쩔수 없는 동방의 녀인이였다. 사실 생각하면 뭐가 부끄러운것일가? 가장 부끄러운것을 서로 보여주며 품어주는게 부부가 아니던가? 그런 사이를 나눈 남편은 이미 거울이 없이도 다 보고 있는데 뭐가 부끄러운것일가?

사실 나는 나 자신이 부끄러운것인걸가? 뭐가? 부모님이 대학원까지 다 보내주었는데 집에서 아이만 보고 있는 나 자신이, 그것도 모자라서 또 지금 둘째까지 낳고 있는 나 자신이…나는 아마 이렇게 아이 둘을 돌보다가 탈망살이에 빠져서 그냥 헐망한 아줌마가 되고 할머니가 되여 늙어갈것이다. 엄마, 아빠는 이런 나한테 얼마나 실망을 하실가? 남편도 점차 나한테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떠날지도 모른다. 내 인생 도대체 어떻게 되는거지? 정말 이젠 끝이다! 여자로서의 내 인생은… 정말 애를 낳고 끝나는 것일가? 난 왜 이리도 못난걸가?

아아아악! 혼미해가는 정신줄을 겨우 잡으며 전심의 힘을 주었다. 드디어 아이가 태여났다. 딸이였다. 아이는 태줄도 자르지 않은채 피 묻은 채로 먼저 내 가슴우에 놓여졌다. 그 촉촉하고 따뜻한 생명체… 뱃속에서 꼬물거리던 생명체가 내 가슴우에 놓여지는 그 순간의 목직한 꼬물거림…그 순간부터 아이는 머리를 돌리며 내 가슴에서 젖을 파헤쳐 먹고 있었다. 그 신비롭고 경이로운 생명의 생존 본능에 저도 모르게 감탄이 나갔다.

그 사이 간호사는 남편의 핸드폰을 들고 남편이 떨리는 손으로 아기의 탯줄을 자르는 모습을 동영상으로 찍어주고 있었다. 은밀한 즐거움을 나누는 남편과의 관계가 위대한 생명을 탄생시키는 작업이라는 깨달음이 남편의 그 떨리는 손에서 느껴졌다. 부부가 은밀하게 가지는 관계는 남녀의 부끄러운일이 아니고 너무나 성스러운 일이라는 새로운 깨달음이 왔다. 남편이 생명의 탄생에 이렇듯 완벽하게 잘 참여하고 있다는 사실에 나는 너무나 위로를 느껴지며 어딘가 든든한 안전감까지 들었다.

정신차려 남편의 얼굴을 올려다보니 남편은 울었는지 눈시울이 벌겋게 돼있었다. 내 이마를 쓰다듬어주며 수고했다고 위로를 해준다. 내 품에 놓여진 아이를 내려다보는 남편의 눈에는 한없는 부드러운 사랑의 빛이 가득 차있었다. 그러면서 내 귀속에 대고 아까 내가 너무 고통스러워하는데 진통제 주사가 오지 않자 마음이 급해서 하마트면 의사한테 큰소리 칠번했다고 한다. 그러던 참에 아이 머리가 막 보여서 겨우 참았다고 한다. 욱하는 성격을 용케 잘 참은 이 남자… 예전에 남편한테 섭섭했던 감정이 가뭇없이 사라지며 애틋한 감정이 차올랐다. 눈이 커다랗고 피부가 하얀 서양인들틈에서 눈이 가느스름하고 피부도 노르슴한 우리 남편과 우리 딸애를 번갈아 바라보니 “히야! 요 토실토실한 알감자같은 우리 민족 애기…” 하는 감탄이 저절로 나가며 자신의 인종에 대한 친근감 비슷한 감정이 느껴졌다.

내 출산의 고통도 거의 가라앉을 즈음, 문득 작년에 세상을 뜬 시어머니 생각이 났다. 시어머니는 유방암으로 반년동안 투병하시다 세상을 뜨셨다. 암은 말기가 되면 그렇게 아프다고 하는데 성격이 곧으신 어머니는 그 당시 나처럼 진통제를 거부하셨다. 정작 나도 진통제 주사를 거부하고 극심한 아픔을 겪고보니 웬지 시어머니가 꼭 많이 아프시다가 돌아가셨다는 생각에 너무 마음이 아프고 진통제를 억지라도 드렸을걸 하는 후회가 몰려왔다. 얼마나 아프셨을가? 내 아픔은 그래도 생명을 탄생시키는 아픔이지만 최후를 맞는 그 아픔은 어떤 아픔이였을가? 이 세상의 사랑하는 이들과 영영 단절이 되는것을 준비해야 하는 그 마음, 그 두렵고 두려운 죽음을 대면하는 절망의 고통은 오죽했을가! 그 아픔이 너무나 생생하게 그려지며 마음이 아려와서 너무 슬펐다. 이런 출산을 겪고 나서 나는 림종을 앞둔 사람이나 극심한 아픔을 경험하는 사람을 결코 그냥 지나칠수 없는 마음이 생기게 되였다.

밤잠도 제대로 잘수 없는 고단한 두 아이의 육아의 길은 멀고도 멀다. 남편은 어수선하게 가사로동에 참여하기 시작했지만 하도 자주 생색을 내면서 "당신 나 참 잘 만났어!" 이런 종류의 뉴앙스를 시시때때로 풍겨서 함께 일하다가도 얄밉고 유치하게 보여진다.  그럼에도 나의 마음에는 서서히 평화가 찾아왔다. 떨리던 손으로 아기의 태줄을 자르던 남편의 모습이 나의 마음에 깊이 각인되며 함께 생명을 탄생시켰고 함께 그 귀한 생명의 성장에 참여한다는 동지감과 함께 그에게 돈독한 믿음이 생기게 되였고 어지간한 생활의 모순은 더없이 기쁘게 포용할수 있는 마음의 힘이 생기게 된것이다. 그리고 그 무엇보다 그때 진통제 주사를 맞지 않고 극심한 고통을 이겨 내며 한 생명을 탄생시킨 나 자신이 너무 황홀하게 자랑스러워지며 육아를 하든 취직을 하든 무엇을 하든 모든 어려움도 다 감내할수 있다는 씩씩한 자신감이 생기게 되였다. 그렇게 되니 둘째가 생겨서 내 인생이 무너질것 같던 예전의 걱정거리는 더이상 나의 마음을 괴롭힐수 없었고 오히려 더욱 열심히 살아가야 할 리유가 되였다. 나는 더욱 깊은 감정으로 사람들을 사랑할수 있는 지혜로운 여인으로 성장해가고 있었다.

진통제를 맞지 않고 둘째를 출산하고 극심한 아픔을 경험하고 나서 예전보다 더욱 깊고 풍부한 감정을 소유하게 되였다.그러면서 나는 내 아픔 조차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더이상 나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게 되였고 자신의 아픔이나 혹은 부족함에 대해서 더 솔직하게 대면해도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괜찮은척 잘난척 하는 위장된 모습보다는 훨씬 진실하고 생명력이 넘치는 모습에 가까워진것이다.

아픔이 없이 살아가면 정말로 좋겠지만, 아픔이 있는곳에, 그리고 그 아픔을 딛고 일어선 곳에는 나만의 특별하고 아름다운 꽃이 피는것 같다. 자신의 아픔이든 남의 아픔이든, 그 생생한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용기를 가진 자는 생생한 기쁨의 꽃을 피우게 될것이 아닌가! 이런 소망은 내 삶을 참으로 살만하게 만드는듯하다. 오직 아픔을 겪고나서 얻을수 있는 이 생생한 깨달음, 오직 아픔이 줄수 있는 이 소중한 선물 참으로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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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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